집안 땅 팔아 남자들만 돈 나눠… 종중 대표 등 ‘징역형 집행유예’ [사건의 재구성]

부산지법, 60대 남성 3명에 판결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 선고
종중 임야 판 돈 남자 종원만 분배
여성 종원들 총회에 소집도 안 해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 2025-05-29 16:10:15

취재 기자가 기사 내용을 기반으로 ChatGPT DALL-E를 통해 만든 이미지. 취재 기자가 기사 내용을 기반으로 ChatGPT DALL-E를 통해 만든 이미지.

“남자끼리만 돈을 나눕시다. 대구 달성군에 있는 땅을 팝시다.”

경남이 뿌리인 한 종중회 대표 A 씨는 종원인 B 씨, C 씨와 은밀한 대화에 나섰다. 60대 남성인 3명은 여성 종원들은 빼고 돈을 나누기로 했다. 종중 소유인 대구 달성군 임야 1만 719㎡를 종원인 B 씨에게 팔고, 종중회 소속 남성 6명이 매각 대금을 나눠 갖기로 공모했다.

A 씨는 2021년 2월 26일 부산 동구 본인 집에서 종중회 총회를 열었다. 대구 달성군 임야를 ‘B 씨에게 2억 7557만 원에 매각한다’고 의결했다. 여성 종원들에겐 총회 소집을 통보하지 않았다. 종중회 소속은 총 14명이지만, 남자들만 은밀히 총회를 열었다. 종중은 공동 선조의 후손들이 제사를 지내고, 묘소와 문중 재산 등을 관리하는 자연 발생적 집단을 뜻한다.

A 씨는 매각 대금을 보관하다가 같은 해 4월 17일 돈을 나누기로 했다. 세금을 제외하면 약 2억 3475만 원이 남았기에 이틀 뒤 B 씨와 C 씨 등 남성 5명에게 약 3909만 원씩 이체했다. A 씨도 같은 금액을 자신의 계좌에 남겼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돈을 나누기로 공모한 3명은 결국 업무상 횡령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 씨와 B 씨, C 씨는 매각 대금을 받긴 했어도 불법으로 횡령할 의사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 판단은 달랐다. 우선 규약에 따라 종중 재산은 총회 의결로 관리하거나 처분해야 하지만, 당시 총회나 이후 회의록에도 ‘매각 대금을 남성 종원들에게 분배한다’는 안건은 언급되지 않았다고 했다. 또 종원들 개인이 사용하는 계좌로 종중 자금을 분배한 사례를 찾을 수 없었던 점도 고려했다.

특히 남성 종원들은 지급받은 돈을 개인적 목적으로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A 씨는 자녀 결혼 자금, C 씨는 개인 적금과 주택청약저축 가입에 돈을 썼다. D 씨는 개인 사업에 쓸 소를 샀고, E 씨는 아들에게 증여하거나 며느리가 차를 사는 데 보탰다. 수사 기관에서 E 씨는 “돈을 어디에 쓰라는 말이 없었고, 사용하지 말고 갖고 있으란 말도 들은 적 없다”고 진술했다. F 씨도 “돈을 보관하란 말을 들은 적 없고, 돈을 준다고 해서 좋은 일이라 생각해서 받았다”고 말했다.

부산지법 형사7단독 심학식 부장판사는 업무상 횡령 혐의로 기소된 A 씨, B 씨, C 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각각 선고했다고 29일 밝혔다. 재판부는 “동등한 법적 권리가 있는 여성 종원들을 배제한 채 종중 토지를 매도했다”며 “매매 대금을 함부로 나눠 갖는 등 죄질이 좋지 않다”고 밝혔다.

다만 “(A, B, C 씨가) 여성 종원들을 대신해 수십 년 동안 업무를 전담하면서 종중 존속과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며 “사건 이후 종중 계좌로 돈을 반환해 피해를 복구한 점 등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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