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보적이고 상징적인 액션 영화 캐릭터들이 있습니다. ‘007’ 시리즈의 ‘제임스 본드’(다니엘 크레이그),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의 ‘에단 헌트’(톰 크루즈), ‘본’ 시리즈의 ‘제이슨 본’(맷 데이먼) 그리고 ‘존 윅’ 시리즈의 ‘존 윅’(키아누 리브스)입니다.
네 캐릭터는 혼자서도 수많은 악당을 무찌를 수 있는 일당백 능력자의 대표 격입니다. 해외 영화팬 사이에선 이들 네 명이 싸우면 누가 이길지를 두고 진지한 토론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이 가운데 세 시리즈는 끝을 맞이했습니다. ‘본’은 ‘제이슨 본’(2016)으로, ‘007’은 ‘노 타임 투 다이’(2021)로 시리즈를 매듭지었고, ‘미션 임파서블’도 올해 개봉한 ‘파이널 레코닝’으로 작별 인사를 건넸습니다.
그러나 ‘존 윅’은 건재합니다. 2023년 개봉한 4편에서 키아누 리브스는 58세 나이에도 화려한 액션을 선보였고, 속편도 예정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난 6일 개봉한 ‘발레리나’는 존 윅 세계관의 스핀오프(파생작)로, 제작이 확정된 5편과는 별개의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주인공 캐릭터가 비교적 왜소한 여성이고, 감독도 기존 시리즈와 다릅니다. 시리즈 팬 사이에선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었던 이 작품, 실제 완성도는 어떨까요. 극장에서 관람했습니다.
‘발레리나’의 시간적 배경은 ‘존 윅’ 3편과 4편 사이입니다. 도입부에서 보여주는 주인공 이브(아나 데 아르마스)의 서사는 이렇습니다. 이브는 어렸을 때 의문의 암살 조직의 습격으로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오갈 데 없어진 이브는 발레와 레슬링을 기본으로 아이들을 암살자로 양성하는 조직인 ‘루스카 로마’에 들어갑니다. 이브는 복수심과 고통을 원동력으로 피나는 훈련을 견디지만, 얼마 못 가 한계에 다다릅니다. 체격이 크지 않으니 남자들과의 맨몸 격투에선 늘 지는 겁니다. 그러자 그의 스승은 이 영화의 테마와 같은 조언을 합니다. ‘여자처럼 싸우라’(Fight like a girl)고 말입니다. 결국 이브는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 ‘깡다구’를 갖춘 킬러로 거듭납니다.
이브는 어느 날 작전을 수행하다가 아버지를 살해한 조직을 찾을 수 있는 단서를 발견합니다. 루스카 로마를 지휘하는 ‘디렉터’는 득이 될 게 없다며 조직을 찾아내려 하지 말라고 명령하지만, ‘상여자’ 이브는 이를 거부하고 복수를 위해 떠납니다.
‘발레리나’는 사랑하는 존재를 잃은 냉혹한 킬러가 복수극을 펼친다는 점에서 기존 시리즈와 비슷합니다. 세계관을 유지하는 스핀오프 작품인 만큼 전작에서 본 인물들과 장소도 등장합니다.
메인 요리에서도 익숙한 맛이 납니다. 대사를 내뱉는 장면보다 액션 신이 많다는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시종일관 액션이 휘몰아칩니다. 다양한 화기로 화려한 액션을 펼치고, 격한 맨몸 격투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전작들과의 차별점은 주인공이 여성이라는 겁니다. 탄탄한 몸매에 장신인 키아누 리브스는 몇 대 맞아도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것 같은데, 작은 체격의 아나 데 아르마스가 맞을 때는 아무래도 조마조마하고, 덕분에 긴장감을 배가하는 효과도 있습니다.
영화엔 여성 간 사투 장면도 수차례 나오는데, 액션의 강도는 결코 만만하지 않습니다. 기존의 양산형 액션 영화에서 볼 수 있는 것과는 수준이 다릅니다.
시리즈 특유의 스타일리시한 편집과 촬영도 그대로입니다. 주변 사물을 창의적으로 활용해 상대를 무찌르는 것도 존 윅과 닮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익숙하고 기시감이 드는 장면에서 변주를 주기도 했습니다.
아버지를 살해한 조직이 있는 마을을 찾아가 끊임없이 액션을 펼치는 장면은 압권입니다. 특히 예고편에도 나온 화염방사기를 활용하는 액션이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말 그대로 불꽃 튀는 화끈한 액션이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예고편에는 시리즈 주인공인 존 윅과 한국 무술감독 정두홍도 나옵니다. 존 윅의 존재감과 비중이 작지 않아 신작을 기다리던 시리즈 팬 입장에선 갈증이 해소되겠습니다. 정두홍은 그룹 소녀시대 멤버이자 배우인 최수영과 함께 출연해 짧지만 강한 임팩트를 안겼습니다.
주연 아나 데 아르마스의 열연도 대단합니다. 톰 크루즈와 열애 중인 그는 화려한 필모그래피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007 노 타임 투 다이’(2017), ‘블레이드 러너 2049’(2017), ‘나이브스 아웃’(2019), ‘블론드’(2022), ‘그레이 맨’(2022) 등 수작들에 출연해 매번 호연을 선보였는데, 이번 작품에서도 결코 쉽지 않았을 액션 연기와 감정 연기를 훌륭하게 소화했습니다.
영화 스토리는 단순하지만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갖췄으며, 주인공의 감정에 이입할 수 있는 인물 서사도 나쁘지 않습니다. 현실성은 떨어지는 편이지만, 애초 존 윅 시리즈에서 현실성을 따지려는 관객은 많지 않을 겁니다.
다만 기존 시리즈 특유의 재미는 일부 제거됐습니다. 강박에 가까웠던 탄약 장전 장면 등 실제적인 고증은 살짝 덜하고, 클라이맥스에 어김 없이 사용한 롱테이크 신도 없습니다.
물론 감독이 달라졌으니 기존 포맷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도 무리이긴 합니다. 기존 시리즈 감독은 채드 스타헬스키이고, ‘발레리나’ 감독은 렌 와이즈먼입니다. 와이즈먼 감독도 ‘언더월드’ 시리즈와 ‘다이 하드 4.0’(2007), ‘토탈 리콜’(2012) 등 액션 연출 경험이 풍부한데, 이번 작품에서도 역량을 고스란히 드러냈습니다.
제 점수는요~: 80/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