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최초의 콘서트 굿판, K팝 애니 만나 GOOD판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2025-08-08 09:17:30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가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케데헌’은 공개 이후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스페인 등 41개국에서 넷플릭스 영화 부문 1위를 차지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영화 중 역대 가장 많이 본 작품이자, 넷플릭스 역대 영화 톱10 진입도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영화 주제가 ‘골든(GOLDEN)’은 영국 오피셜 싱글 차트 ‘톱 100’에서 1위에 올랐다. OST 수록곡 8곡이 3주 연속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 100’에 동시 진입하고, ‘골든’은 최고 순위 2위를 기록했다. 이 OST 앨범은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인 ‘빌보드 200’에서 최고 2위를 기록했다. 극 중 보이 그룹 ‘사자보이즈’가 부른 ‘유어 아이돌(Your Idol)’은 세계 최대 스트리밍 플랫폼인 스포티파이 미국 ‘데일리 톱 송’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 K팝 곡으로 이 차트 최초 1위였다.

솔직히 기자는 가상의 K팝 걸 그룹 ‘헌트릭스’가 악귀를 쫓는 퇴마사로 나오는 이 영화가 왜 그렇게 대단한지 지금도 잘 이해를 못 하고 있다. K팝 문화와 흔히 ‘무속(巫俗)’으로 불리는 한국 토속신앙을 융합한 이 영화에 세계가 열광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그래서 동해안별신굿 전승교육사 겸 보존회 사무국장 정연락 씨를 만나 ‘케데헌’과 무속에 관해 물어보기로 했다. 정 씨는 5대째 세습무(世襲巫)이자, 스스로를 학습무(學習巫)로 불렀다. 정 씨의 할아버지는 ‘샤먼 킹’으로 불리는 동해안별신굿 예능 보유자 김석출 명인이었고, 어머니 김동연 씨 역시 전승교육사로 활동하고 있다.


정연락 씨가 꽹과리를 치면서 공연하고 있다. 동해안별신굿 보존회 제공 정연락 씨가 꽹과리를 치면서 공연하고 있다. 동해안별신굿 보존회 제공

-무당은 굿이 직업인 사람으로 아는데, 무당에도 종류가 있나.

“무당은 크게 강신무, 세습무, 학습무로 구분된다. 강신무는 신내림을 통해 무당이 된 경우를 말한다. 세습무는 부모로부터 신분과 직능을 물려받은 무당, 학습무는 무속을 배우고 익혀 무당이 된 경우다. 세습무는 동해안, 남해안, 진도까지 해서 전국에 3곳에만 남아 있다. 세습무는 집안에 내려온 소리, 춤, 몸짓 그리고 풍습을 배워서 각 지역에 맞게 예술 행위를 한다. 우리 세습무는 점을 치지 않는다. 1970~80년대만 하더라도 무당은 천대받은 게 사실이다. 무당이 국가무형문화재가 되는 시대가 되자 무당에 대한 대우도 달라졌다. 어르신들이 ‘이렇게 대우받을 줄 알았으면 애들 무당 시켰을 텐데…’라고 말씀하시더라. 나도 자식이 있으면 시키고 싶은데 아쉽게도 없다. 이제는 학습무로 갈 수밖에 없다.”

-동해안별신굿에 관해서 소개해 달라. 별신굿은 무슨 뜻인가.

“별신(別神)은 신을 특별히 모신다는 의미다. 별신굿은 오늘날의 풍어제라고 보면 되겠다. 동네의 안녕과 태평, 그리고 풍어를 비는 것이다. 부모가 되어서 잘살고, 자손 발복(發福)하고, 잘되게 해 달라고 비는 행위다. 동해안별신굿은 부산에서부터 강원도 고성까지 이르는 동해안 일대의 어촌에서 마을의 안녕, 풍어(豊魚)와 풍농(豊農)을 기원하며 지내는 대규모 마을굿이다. 국가무형유산(구 중요무형문화재) 제82-1호로 지정되어 있다. 짧게는 2~3년, 길게는 10년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열린다. 부산 기장군에 있는 우리 동해안별신굿 보존회가 굿의 전승과 보존에 힘쓰고 있다. 세습무들이 주관하는 굿이기에 무속 예능 종합 예술제의 성격도 가진다.”

- ‘케데헌’이 글로벌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무속인으로서 어떻게 봤는지 궁금하다.

“이 영화는 콘서트장에서 공연하는 장면으로 시작하지 않는가. 노래하는 헌트릭스, 음악, 형형색색의 조명, 장식, 그리고 많은 사람…. 그게 굿으로 보였다. 조명은 언어와 율동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보조 장치다. 굿도 옛날에는 어둠 속에서 횃불을 켜고,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북을 치고 소리를 내고 춤도 추면서 했다. 과거 굿을 하던 신단(神壇)이 오늘날 무대가 된 것이다. 헌트릭스가 선대 퇴마사를 만나는 장소에는 큰 나무에 천이 내려져 있는데, 거기가 바로 성황당이다. 성황당은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인 성황신, 즉 골매기신이 있는 곳이다. 골매기신은 마을을 지키는 신이자, 넓게 보면 우리나라를 지킨다. 헌트릭스는 성황당에서 출발해 나쁜 것들을 물리친다. 굿의 포맷 그대로이다.”


정연락 씨가 지화(종이꽃)를 만들고 있다. 동해안별신굿 보존회 제공 정연락 씨가 지화(종이꽃)를 만들고 있다. 동해안별신굿 보존회 제공

-영화 공동 연출자 매기 강 감독도 ‘굿이 최초의 콘서트가 아닐까’라고 말했는데….

“판소리, 살풀이, 승무가 그냥 나온 게 아니다. 종교 음악, 예전으로 돌아가면 무속 음악이 그 근본이었다. 무속 음악은 우리나라 전통문화 예술의 근간이다. 헌트릭스가 춤추면서 노래 부를 때 사람들도 같이 따라서 흥얼거리지 않는가. 굿을 들을 때도 우리가 원하는 것을 소리를 내면서 같이 한다. 무속은 종교관을 넘어 세계관으로만 봤을 때 종합적인 예술의 큰 틀에 속해 있다. 공연은 마구 북을 치고 노래 부른다고 되는 게 아니라 방향성을 잡고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그 기초가 되는 게 우리가 바라는 기원(祈願)이다.”

-세계인들은 왜 낯선 우리의 전통 이야기에 열광한다고 생각하는가.

“이 영화에는 외국 귀신이 아니라 전부 한국 귀신이 등장한다. 호랑이와 까치 같은 우리의 전통적인 영물도 등장한다. 외국인들이 우리 문화를 자세히 이해는 못 하지만 권선징악이라는 인류 공통의 서사는 여러 종교에 내재해 있어 낯설지 않다. 한번은 말레이시아의 아트 페스티벌에 동해안별신굿 공연을 하러 간 적이 있었다. 공연 중에 아내(홍효진)가 ‘이 공연은 당신, 자식, 부모님을 위한 것이니 같이 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러자 8000명이 자리에서 일어나 떼창을 하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홍익인간이라는 우리의 전통 서사가 통한 것이다. 요즘엔 굿할 때 쓰는 색감까지도 핫하게 여기는 것 같다.”

-최근 무속에 관한 관심이 높아졌다. 동해안별신굿의 경우는 어떤가.

“사람들이 무속에 대해 가지는 인식 자체가 정말 많이 바뀌었다. 수백 년 이상 쌓아온 탄탄한 서사를 바탕으로 ‘파묘’ 같은 무속 관련 영화나 드라마가 많이 제작되고 있다. 지난해 8월 서울의 남산국악당에서 ‘대신(집안의 신)’이란 이름으로 동해안별신굿 공연을 했는데 매진이 되었다. 이처럼 휴가철 극성수기에 전통 공연의 매진 현상은 대단한 일이다. 지난 6월 남산국악당에서 열린 ‘국악의 날’ 공연에도 하루에 200명씩 관객이 몰려왔고 반응도 좋았다. 동해안별신굿은 한국예술종합학교, 한양대, 중앙대, 단국대. 경북대 국악과에 정식 커리큘럼으로 들어가 있다. 일년에 전수생을 최대 4명만 뽑는데, 석박사 출신이 매년 10명 이상씩 지원해 치열한 경쟁을 치러야 한다. ‘범 내려온다’를 부른 이날치 밴드와 악단광칠의 보컬도 우리 제자다.”


정 씨의 할아버지 김석출 명인과 김영희, 김동연, 김동언 씨 세 자매. 동해안별신굿 전수회 제공 정 씨의 할아버지 김석출 명인과 김영희, 김동연, 김동언 씨 세 자매. 동해안별신굿 전수회 제공

-동해안별신굿 보존회가 포항 이전을 추진하다 부산에 남기로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보존회는 40년 세월을 부산 기장에 있었다. 회원이 40명이 넘는데 30평도 안 되는 지금의 연습 공간은 너무 비좁은 상태다. 자가 건물이 아니어서 2년마다 이사를 다니는 떠돌이 생활을 했다. 국가무형유산 동해안별신굿이 전수관 하나 없다는 게 말이 안 된다. 포항시가 보존회에 전수교육관 건립을 약속하면서 전승 소재지 이전을 검토한 게 사실이다. 최근 부산시가 전향적으로 임시 교육관을 제공하고, 전수교육관은 국비 확보로 건립 추진을 약속해 부산에 남기로 결정했다. 우리는 영국 왕립극장이나 프랑스 대사관 초청 공연도 했지만, 부산의 해외 교류 행사에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수준 높은 우리 전통문화를 세상에 알릴 기회가 더 많았으면 좋겠다.”

-무속에는 여전히 부정적인 이미지가 따라붙는다. 무속을 어떻게 바라보면 좋겠는가.

“몇몇 분들 때문에 무속이 이상하게 꼬여 큰 충격이 또 한 번 와서 안타깝다. 무속은 우리 생활의 일부분이었다. 단골은 무당을 뜻하는 ‘당골’에서 유래했다. 특정 무당을 정해 놓고 찾는 풍습에서 비롯되었다. 할머니가 자손 잘되라고 장독대에 물을 올려놓고 빌거나, ‘고수레’하고 던지는 것도 다 무속의 일종이다.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한 미국의 영화 제작사가 왜 한국의 무속을 발견해 냈을까 한번 생각해 보면 좋겠다. 무속을 너무 종교적으로 재단하지 말고, 이 시대에도 흐르는 문화유산으로 보면 좋겠다.” 글·사진=박종호 기자


정연락 씨는 “무속을 문화유산으로 봐달라”라고 말했다. 정연락 씨는 “무속을 문화유산으로 봐달라”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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