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돈 기자 happyi@busan.com | 2024-12-10 11:20:18
“자, 통통 튀는 느낌으로 하나둘, 하나둘, 신발 끄는 소리 들리면 안 됩니다.”
일요일이었던 지난 8일 이른 아침. 부산 사상구 삼락체육공원 시계탑 인근에 모인 10여 명이 발맞춰 뛰기 시작했다. 뛴다고 표현했지만, 흔히 생각하는 뜀박질과는 달리 속도가 꽤 느렸다. 뜀과 걷기의 중간쯤 속도로 가볍게 달리는 그들과 나란히 발을 맞췄다.
뛰는 내내 속도를 늦추라는 주문이 반복됐다. 이날 대열을 이끈 이는 슬로우조깅코리아(한국슬로우조깅협회) 정라혜 대표. 강서구에서 피트니스센터를 운영하는 정 대표는 일본에서 시작된 슬로조깅(slow jogging)을 국내에 도입, 9년째 보급을 위해 뛰고 있다.
“흔히 운동은 강하게 해야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무리하다 탈이 나기도 하지요. 하지만 선수가 아닌 일반인에게 필요한 건 승부를 내야 하는 스포츠가 아니잖아요. 자기 몸 상태에 맞게 정확한 자세로 꾸준히 하는 운동, 슬로조깅 같은 저강도 운동으로도 충분히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정 대표는 특히 급격히 고령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현시점의 우리나라에서 가장 필요한 운동이 슬로조깅이라고 강조한다. 고령자라도 신체에 전혀 부담을 느끼지 않으면서 유산소 운동과 근력 운동 효과를 동시에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슬로조깅은 우리나라보다 앞서 고령사회를 경험한 일본에서 시작됐다. 정 대표는 1년간 일본을 오가며 슬로조깅을 창안하고 보급한 고 다나카 히로아키 후쿠오카대 명예교수를 통해 원리와 방법 등을 전수받았다.
'달팽이 달리기'라고 표현할 정도로 느리게 뛴다는 슬로조깅의 속도는 시속 3~6km 정도. 무작정 느리게 뛰기만 하면 되는 걸까? “발은 꼭 앞꿈치부터 내딛습니다. 뒤꿈치는 바닥에 가볍게 닿는다는 느낌으로 하고요. 고개는 들어 앞쪽을 주시해 가슴이 활짝 열리도록 합니다.” 뛰는 내내 주문과 조언이 이어졌다. 이날 체육공원 일대 5km를 도는 데 걸린 시간은 1시간 남짓.
부산에서 협회를 만들고 지도자를 양성하는 등 슬로조깅 보급에 앞장선 정 대표의 노력은 최근 한 공중파 방송의 건강 프로그램에 소개되며 전국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지도자 과정 참여 문의가 늘고, 병원 의사의 협업 요청에 새해 아침 방송 출연 일정까지 잡혔다.
이날도 경북 경주시에서 새벽 공기를 가르고 부산으로 달려온 이가 있었다. TV를 보고 “딱, 내게 필요한 운동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김재원(69) 씨. 인터넷 검색으로 정 대표를 알게 됐고, 2주째 함께 달리고 있다. 평소 1~2분 뛰는 것도 힘들었다는 김 씨는 이날 5km 조깅을 끝내고도 인터뷰 내내 미소를 잃지 않았다.
“슬로조깅은 근력 보충과 체중 감량이 필요한 중장년부터 스트레스 해소 장이 필요한 청소년까지 즐길 수 있다”고 강조한 정 대표는 언젠가 슬로조깅 마라톤 대회를 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5km, 10km, 하프, 풀코스가 아니라 1km부터 5km까지 5개 코스로 나눠 전 세대가 참여하는 건강축제의 장으로 만든다는 구상이다.
삼락체육공원 시계탑에서 열리는 ‘일요 슬로조깅 교실’은 건강에 관심 있는 누구나 무료로 참여할 수 있다. 매주 일요일 오전 8시 30분 시작된다. 정 대표와 함께 조예섬, 조유나 지도자가 이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