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 2024-12-26 14:00:01
“조각이라는 장르 안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실험을 보여주는 작가인 것 같아요. 이것도 조각이라고 부를 수 있냐는 생각이 들 겁니다. 그래서 창의적이고 재미있죠. 부산에 꼭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부산 OKNP 이보성 큐레이터는 황혜선 작가의 개인전을 앞두고 미리 아주 중요하고 재미있는 전시를 준비했으니 개막 당일 얼른 보러 오라고 말했다. 심할 정도로 자신감 넘치는 그의 말에 “별로면 어떻게 하실 건데요?”라며 장난치기도 했다. 부산 해운대구 OKNP에서 진행 중인 ‘상즉(相卽)-해석된 풍경’전은 한국의 미술관과 대형 갤러리를 비롯해 뉴욕, 프랑스에서도 개인전을 열며 큰 관심을 받는 황혜선 작가의 신작 전시이다.
서울대 미술대학을 졸업한 후 미국 뉴욕대에서 석사 과정을 마친 작가는 1995년 귀국 전시부터 주목받기 시작했다. 소통을 주제로 실리콘 귀마개 조각, 풍선껌으로 만든 귀 조각을 선보여 화제가 됐고, 이후 리본 테이프에 평론가의 글을 금실 자수로 넣은 작품, 지우개 찌꺼기를 붙여 작품을 완성한 작품도 신선하다는 반응을 얻었다.
황혜선이라는 이름이 미술판에 확실히 각인된 건 ‘정물 조각’ 시리즈이다. 캔버스 천으로 컵 병 바구니 등 정물을 조각으로 만든 것으로, 회화의 재료라고 여겨지는 캔버스 천을 조각으로 만듦으로써 작가는 조각과 회화의 경계에 관해 물었다. 작가는 우리 삶 속 소소한 일상을 작품화해서 예술인 것과 아닌 것, 예술과 삶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한다. 정물 조각은 세계 최고의 아트페어로 꼽히는 바젤 페어까지 진출하기도 했다. 그렇게 유명한 정물 조각 시리즈는 2002년 과감히 정리했다.
유명한 조각 시리즈를 왜 더 이상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황 작가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개념 미술을 하는 작가, 공간을 변형하는 설치미술가, 조각을 하는 조각가, 다양한 형태의 미술을 하는 작가라고 생각한다.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하며 머무르지 않는 작가로 불리고 싶습니다.” 황 작가는 이후에도 유리에 일상의 모습을 새기거나 크리스탈 구슬에 “그래, 괜찮아”라는 글귀를 새기는 등 사람들과 소통하고 예술로 위로할 수 있는 작업을 이어간다.
2000년대 후반 황 작가의 또 다른 대표 시리즈, ‘드로잉 조각’이 시작된다. 마치 하얀 종이 위에 검은 연필로 드로잉을 한 것 같이, 전시장 벽면에 도장 된 얇은 선의 스테인리스로 일상의 풍경을 표현한다. 마치 종이에 그려진 드로잉 선들이 종이에서 탈출해 공간을 떠다니는 것 같다. 친구, 가족, 반려견, 산책 등 일상에서 마주치는 사람과 풍경을 드로잉 조각으로 표현했다.
이번 전시는 드로잉 조각 대표 시리즈와 함께 황 작가의 또 다른 시도까지 만날 수 있다. 작가는 드로잉 조각을 확장했다고 설명했다. 기존의 드로잉 조각이 떨어져 나가 흔적만 남은 음각 상태의 작품인 ‘사라지는 조각’이다. 전시 장소인 해운대 바다의 바람·소리·빛·시간을 풀어낸 작품도 장소를 조각의 언어로 변화시키는 시도이다. 드로잉 조각의 일부를 떼 그 자체가 완성된 조각이라고 전시한 것도 인상적이다.
황 작가는 “전시 제목은 서로가 서로를 포함하고 있다는 뜻이다.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말하고 싶었다. 서로가 서로를 마주하고 있고 서로가 서로를 기대고 있음을 생각했으면 좋겠다”라고 설명한다. 자기 작품이 공존의 언어로 다가가길 바란다는 말도 덧붙인다. 지금 우리 현실과 맞닿아 있는 메시지로 느껴진다. 황혜선 개인전은 OKNP에서 2025년 1월 5일까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