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신춘문예-평론 당선 소감] 나의 일부는 문학, 끊임없이 쓸 것

이채원

2024-12-31 17:26:35

이채원 이채원

타자기 앞으로 나를 이끌었던 허연 시인의 시를 생각한다. 많은 문장을 뒤로하고 달아나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면 목요일을 떠올린다. 나의 문장이 누구에게도 수신될 수 없을 거라는 허무가 밀려올 때마다 고양이의 앞발을 만져본다. 장 자끄 베넥스의 영화, ‘베티 블루 37.2’의 결말을 곱씹는다. 붉은 수프를 얼굴에 끼얹던 조르그를 생각하며, 사랑의 잉여로부터 비롯되는 내밀한 기록과 문장을 적어본다. 나는 여전히 베티와 조르그를 아우르는 게 사랑인지, 몰락인지 모르겠다. 그건 아득한 미래에도 알 수 없을 것이다. “사랑을 모르면서 사랑한다고 말하고 이별을 모르면서 이별했다고 말하고 살아 있으면서 지난 새벽에 죽었다고 말하는”(<육체쇼와 전집>) 존재이기에 늘 겁이 난다. 그런 순간마다 이해하지 못한 채로 스쳐 지나갔던 무수한 언어들을 생각한다. 다시 한번 문학에 대해 생각한다. 질문 너머에 질문하는 방식으로, 내가 가닿지 못한 언어에 가닿을 수 있도록. 이 모든 순간 덕분에 실패의 선언을 함으로써, 물음에 끝없이 호응할 수 있던 건 아무래도 나였던 듯싶다.

그리하여, 오늘날 나에게 닿은 다정한 이름들을 말할 수 있어 기쁘다. 먼저 부족한 제 글에서 가능성을 발견해 주신 송종원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문학을 열렬히 사랑할 수 있도록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주신 전승민 선생님, 김유인 선생님, 나의 문장으로부터 비겁하게 도망치지 않고 견디는 법을 가르쳐주신 김경후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제가 계속 쓰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부산일보 심사위원분들께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함께한다는 게 얼마나 힘이 되는지 알게 해준 나의 오랜 친구 K와 예엘 문우들. 나는 지금도 서로의 이름을 백지 위에 적는 미래를 그리며, 너희와 애정을 주고받던 밤을 떠올릴 수 있어서 크나큰 행복을 느껴. 여기 담지 못한 모든 이들과 아직도 얼떨떨하기만 한 당선 소식을 듣고 떠올렸던 수많은 이름, 영원을 실현하기 위해 함께 삶을 분투하는 당신에게도 감사를 전한다. 끝으로, 나의 수신어를 늘 포착하고 지지해 주는 가족들과 밤낮없이 곁을 지켜주는 고양이들에게 사랑을 말하고 싶다. 나의 일부는 오로지 문학에 불과하다는 결론에 이르기 위해 끊임없이 쓰겠다.

약력: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2학년 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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