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호 기자 rplkim@busan.com | 2025-02-23 18:00:56
은행권의 가계대출 빗장이 빠르게 풀리는 분위기다. 그간 제한됐던 다주택자에 대한 주택담보대출과 비대면 대출 신청 등이 다시 허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새해 들어 가계대출 총량이 재설정돼 여유가 생겼고, 예금과 대출 금리 차이가 너무 커 ‘이자 장사’에 몰두하고 있다는 비판을 의식한 조치로 풀이된다. 금융당국도 은행들을 압박하고 있어 앞으로도 대출 문턱은 더욱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지난 21일부터 유주택자의 수도권 추가 구입자금 대출을 재개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9월 가계대출 급등에 따른 당국 압박으로 제한 조치를 시행한 지 약 6개월 만의 일이다.
우리은행은 지난달에도 유주택자의 전세자금 대출 취급도 재개한 바 있다.
지난해 하반기 시중은행들은 가산 금리를 올려 대출 금리를 끌어올린 데 이어 각종 대출 규제책을 내놓으며 본격적으로 대출 옥죄기에 나섰다.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이른바 ‘갭투자’ 수요를 차단하기 위해서다. 40~50년 수준이었던 주담대 만기도 대부분 30년으로 축소했다.
하지만 새해 들어서는 시중은행들이 대출 규제를 잇달아 완화하고 있다. 가계대출 총량 한도가 초기화되며 공급 여력이 확대된 영향이다. 주요 시중은행은 제한했던 모기지신용보험(MCI)과 모기지신용보증(MCG) 가입을 허용했다. MCI·MCG는 주담대에 가입하는 보험으로 없을 경우 대출액 한도가 줄어들게 된다. 또 비대면 대출이나 모집인을 통한 대출도 재개한 상태다. 아울러 한도가 대부분 축소됐던 생활안정자금 목적의 주담대 한도도 늘어나거나 폐지됐다.
대출금리도 내려가는 추세다. 은행들이 가산금리를 낮추고 시장금리가 하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한은행은 지난달 14일부터 5년 고정형 주담대 금리를 0.1%포인트(P) 내렸고, 이달 들어 KB국민은행도 일부 비대면 주담대 금리를 0.1%P 내렸다. 우리은행 역시 주담대 우대금리의 최대한도를 0.1%P 확대했다.
은행권 주담대 변동금리의 기준인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도 4개월 연속 내렸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지난 1월 신규 취급액 기준 코픽스는 작년 12월(연 3.22%)보다 0.14%P 낮은 3.08%로 집계됐다. 지난해 10월부터 넉 달째 하락세다.
이에 따라 지난 18일 기준 KB국민은행에서는 주담대 신규 취급액 코픽스 기준 변동금리(6개월)가 4.60~6.00%에서 4.46~5.86%로 0.14%P 낮아졌다. 같은 기준의 전세자금대출(주택금융공사 보증) 금리도 4.37~5.77%에서 4.23~5.63%로 인하됐다. 우리은행의 주담대 신규 취급액 코픽스 기준 변동금리(6개월) 역시 4.88~6.08%에서 4.74~5.94%로 내렸다.
가계대출 증가세가 새해 들어 진정되는 분위기도 한몫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가계신용은 지난해 4분기 들어 증가 폭이 둔화됐다. 주담대 증가액은 작년 3분기 19조 4000억 원에서 4분기 11조 7000억 원으로 증가 폭이 둔화됐고, 신용대출과 마이너스 통장 등의 기타대출도 4분기 말 기준 증권사 신용공여액 감소 등에 영향으로 1조 2000억 원 감소했다.
금융위원회도 지난 1월 전 금융권의 가계 대출이 전달보다 9000억 원 줄며, 작년 3월 이후 10개월 만에 감소세로 전환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와 관련해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지난 19일 국회에서 은행 예대 금리 차가 너무 높다는 지적과 관련해 “올해 신규 대출 금리에서는 인하할 여력이 분명히 있다”고 답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도 “기준금리가 내렸음에도 작년 은행들의 대출 금리 인하 속도와 폭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측면이 분명히 있다”고 은행들을 압박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금융감독원은 지난 21일 은행 20곳에 공문을 보내 차주별·상품별로 준거·가산금리 변동내역과 근거, 우대금리 적용 현황 등의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금감원은 은행별 대출금리 변동내역 등에 관한 세부 데이터를 취합해 기준금리 인하가 가계대출에 미치는 효과의 합리성 등을 점검하는 데 사용할 예정이다. 이는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달 금융상황점검회의에서 “가계·기업이 종전 2차례 금리인하 효과를 체감할 수 있도록 대출 금리 전달 경로와 가산금리 추이를 면밀히 점검하라”고 지시한 데 따른 조치로 풀이된다.
한편 지난해 은행권은 시장금리 하락에도 이자이익이 늘어나면서 사상 최대 실적 기록을 새로 썼다. 4대 금융지주의 지난해 이자 이익은 총 41조 8760억 원으로 전년(40조 6212억 원)보다 3.1% 늘어나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작년 4대 금융 순이익 역시 모두 16조 4205억 원으로 사상 최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