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사람일까, 작품으로 답을 찾다

뮤지엄 원 ‘신화: 시작하는…’전
5개국 18개 팀·개인 100점 선봬
내면 살피고 정체성 고민 담아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2025-02-20 14:16:09

구지은 ‘견인된 땅’. 뮤지엄 원 제공 구지은 ‘견인된 땅’. 뮤지엄 원 제공

현대 사회는 치열한 경쟁을 바탕으로 발전한다. 개인은 끊임없이 가치를 증명하기를 요구받는다. 경쟁 속에서 승리하고 인정받기 위해서 자신이 얼마나 열심히 해왔는지를 드러내야 하는 강박과 조급을 종용한다. 그 결과 시스템이 만들어 낸 괴물 같은 영웅들과의 괴리를 극복하지 못하고 대중은 자신을 낙오자로 인식하게 되었다. 젊은 세대는 인생이라는 마라톤의 출발선에 서는 걸 두려워하게 한다.

부산 해운대구 뮤지엄 원에서 진행 중인 ‘신화: 시작하는 이야기’ 전시는 이 고민에서 시작됐다. 전시를 기획한 윤상훈 부관장은 “신화는 실체가 없으면서도 대중을 선동하고 자유의지를 침해하는 반면에 그것의 진위를 동시대에 확인할 수 없다는 특성을 지녔다. 현대에선 집단에서 설정한 개인의 가치 규정, 계급 등이 신화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윤 부관장은 이어 “사회나 집단이 만들어 낸 허상의 굴레를 벗어나 삶의 본질과 주체성을 회복하자는 취지가 이 전시의 목적이다. 관람객이 내면을 마주하고 자신의 삶에 대해 질문을 던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기획자의 설명은 심각하지만, 전시는 유쾌하고 아름답다. 각 개인의 삶은 그 자체로 가치 있는 서사이며 개인의 삶이 신화가 되고 역사가 된다고 말해주고 있다. 지친 현대인에 대한 따뜻한 응원과 위로가 가득해 즐거워서 웃거나 감동으로 울컥해지는 순간이 있다.

1층과 2층 뮤지엄 원을 모두 사용한 전시는 부산시립미술관, 현대미술관 등 대규모 공공미술관급 규모로 크다. 5개국 18명(팀) 작가가 참여했으며 회화, 사진, 설치, 영상, 미디어 아트 등 다양한 장르 100점의 작품이 준비됐다. 자기 분야에서 자리 잡은 중견급 작가들로 작품성과 완성도가 돋보인다. 원래 뮤지엄 원은 미디어 아트 작품을 주로 보여주었으나 지난해부터 미술의 모든 장르를 수용하고 있다.


이태수 ‘스로잉 스톤’. 뮤지엄 원 제공 이태수 ‘스로잉 스톤’. 뮤지엄 원 제공



신미경 ‘신화:시작하는 이야기’. 뮤지엄 원 제공 신미경 ‘신화:시작하는 이야기’. 뮤지엄 원 제공

1층은 이태수 작가의 파격적인 설치 작품으로 시작된다. 망가진 그랜드 피아노 위에 놓인 큰 바위를 통해 이 작가는 무게가 있는 사물을 가벼운 소재로 만들어 무게에 대한 고정관념에 대해 반문하며 우리가 가치 있다고 믿는 것에 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옆에는 서양 조각상 여러 점이 멋지게 배치돼 있다. 대부분 브론즈, 대리석 혹은 돌로 만들지만, 신미경 작가는 특이하게도 일상에서 쓰는 비누로 만들었다. 설명을 보기 전까지 비누로 만든 조각이라는 걸 전혀 모를 정도로 완성도가 높다. 매일 사용하며 소모되는 비누로 역사성을 가진 유물(조각)을 만든 작가의 관점이 새롭게 다가온다.

콜라주한 사진을 회전 조각에 붙인 구지은 작가, 4개국 여성의 삶이 국가의 규정에 따라 어떻게 변모하는지 보여주는 안유리 작가의 영상 작품은 이미지와 메시지, 음악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이 작품은 리움미술관 아트스펙트럼에 선정되기도 했다.


시나 ‘아직 오지 않은 서사’. 뮤지엄 원 제공 시나 ‘아직 오지 않은 서사’. 뮤지엄 원 제공

윤종석 작가의 작품들 전경. 주사기에 물감을 넣어 그림을 그린다. 뮤지엄 원 제공 윤종석 작가의 작품들 전경. 주사기에 물감을 넣어 그림을 그린다. 뮤지엄 원 제공

최정은 ‘기쁜 소식’. 뮤지엄 원 제공 최정은 ‘기쁜 소식’. 뮤지엄 원 제공
뮤지엄 원 중앙홀에서 펼쳐지는 김용민 작가의 미디어 아트. 김효정 기자 뮤지엄 원 중앙홀에서 펼쳐지는 김용민 작가의 미디어 아트. 김효정 기자

중국의 시나 작가는 신비롭고 아름다운 버섯 벽화로 작은 공간을 가득 채웠다. 벽화가 주는 흑백의 강렬함에 설치 작품까지 더했다. 중앙홀은 뮤지엄 원의 전속 작가인 김용민 작가의 미디어 아트 작품이다. 13편의 미디어 아트가 거대한 4면의 벽에 펼쳐지며 아름다운 영상에 빠져 의자에 앉아 한참을 감상하게 된다.

주사기에 물감을 넣어 캔버스에 짜는 방식으로 그림을 그리는 윤종석 작가, 연구원이자 미디어 아티스트인 홍콩의 카치 찬은 음악을 시각적으로 변화시키는 작업을 구현했다. 고우정 작가의 도자 작품, 미술그룹 308 아트 크루의 재기 발랄한 작품, 멍게신이라는 허구의 존재를 통해 종교에 대한 허상을 비판한 최정은 작가, 특정한 색상을 선호하는 소녀와 소년의 방을 비교해서 촬영하며 고정 관념에 대한 의미를 묻는 윤정미 작가의 작품도 인상적이다.

전시는 8월 31일까지 열리며, 유료 전시로 성인 1만 8000원, 청소년 1만 5000원, 어린이 1만 3000원의 입장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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