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인 기자 si2020@busan.com | 2025-05-22 14:12:16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바이오시밀러 사업을 떼어내 ‘삼성에피스홀딩스’를 신설한다. 회사는 사업 전문성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시장에선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중심으로 한 그룹 지배력 강화 조치라는 해석이 나온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최대주주가 삼성물산인 만큼 분할을 통한 기업가치 제고로 삼성물산 자산가치도 덩달아 상승할 것이기 때문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바이오 의약품 위탁개발생산과 바이오시밀러 사업을 완전히 분리한다고 22일 공시했다. 이번 분할을 통해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순수 CDMO(위탁생산·개발) 회사가 되고, 순수 지주회사로 신설되는 삼성에피스홀딩스는 향후 바이오시밀러 기업인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완전 자회사로 편입할 예정이다.
회사 측은 이번 분할을 독립 의사결정 체계를 더 공고히 함으로써 각각 사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시장에선 이번 분할을 삼성물산을 정점으로 한 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일환 아니냐는 목소리가 높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최대주주는 삼성물산(지분 43.1%)이다. 삼성물산은 이재용 회장이 19.76% 지분을 보유한 사실상 그룹 지주사다. 기존에는 삼성물산이 삼성바이오로직스를 통해 삼성바이오에피스를 간접 지배하는 1단계 구조였다면, 이번 인적분할로 삼성물산→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에피스홀딩스→삼성바이오에피스라는 이중 통제 구조가 완성됐다.
삼성에피스홀딩스가 지주회사 형태로 신설됨에 따라 향후 상장 여부나 내부 지분 정리 등을 통해 이재용 회장의 통제력 보완 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다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분할을 통해 기업가치가 재평가 되면 삼성물산의 자산 가치 상승은 당연한 수순”이라며 “이 경우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인 이재용 회장의 자산가치도 같이 오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이는 이재용 회장의 그룹 장악력 강화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삼성바이오로직스나 삼성에피스홀딩스 등에서 흘러간 자금이 지배구조 개편의 실탄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분할은 단순한 사업 구조 재편을 넘어 그룹의 미래 권력 지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평가다.
아울러 최근 주식시장에서 저PBR(주가순자산비율) 종목이 증시 디스카운트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만큼 삼성물산의 주가 제고를 고려한 조치라는 해석도 나온다. 이날 기준 삼성물산의 PBR은 0.76배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인적분할 소식으로 이틀간 13% 급등했지만 여전히 1배 이하를 기록 중이다.
다만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이번 인적분할과 그룹 지배구조는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자체적 발의’에 의한 것이라며 그룹 차원 구조 개편과는 관련이 없다고 선을 긋고 있다. 유승호 삼성바이오로직스 경영지원센터장은 이날 기자 간담회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와 바이오에피스가 서로 윈윈하는 구조로 가야겠다는 배경 아래 (인적분할을) 시행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수년간 삼성의 계열사 분할·합병 과정에서 ‘무관하다’는 해명은 사실과 달랐던 경우가 많았던 만큼 시장의 의구심은 여전히 크다. 특히 분할이 이뤄지는 시점도 미묘한데, 이재용 회장은 현재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관련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단을 앞두고 있는 상태다.
김수현 DS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번 인적분할이)삼성물산 입장에서는 삼성에피스홀딩스를 지배하면서 동시에 삼성전자의 지배력을 높일 수 있는 옵션”이라면서 “장기적으로는 저평가된 지주회사 주가를 활용해 삼성전자로부터 삼성에피스홀딩스 지분을 추가 매입하는 전략도 가능하다”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