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 도시’ 부산, 미쉐린 끌고 택슐랭 밀고

미쉐린 가이드, 부산 관심 높였자만
지역 특성 이해 및 반영엔 아쉬움
혜성처럼 등장 택슐랭 역할 큰 기대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2025-05-23 07:00:00

올해로 2회째를 맞은 택슐랭 포스터. 부산축제조직위원회 제공 올해로 2회째를 맞은 택슐랭 포스터. 부산축제조직위원회 제공

미쉐린 가이드에 부산이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2024년이다. 2017년 미쉐린 가이드 서울 편이 나온 이후 7년 만으로 지역에서 최초였다. 당시 미쉐린 가이드 부산에는 총 43곳의 레스토랑이 등재됐다.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 3곳, 빕 구르망 레스토랑 15곳, 셀렉티드 레스토랑 25곳이었다. 2025년 미쉐린 가이드 부산에는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 3곳과 빕 구르망 레스토랑 19곳이 선정되었다. 미쉐린 가이드 덕분에 부산의 음식, 더 나아가 부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게 사실이다.

하지만 비슷한 경로를 먼저 겪은 일본과 비교해 보고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일본의 수도 도쿄는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2007년에 미쉐린 가이드가 발간된 도시다. 부산과 자매도시인 일본 후쿠오카가 미쉐린 가이드에 처음 등재된 것은 도쿄 편이 나온 지 7년 뒤인 2014년이었다. 서울이 도쿄보다 10년, 부산은 후쿠오카보다 10년 늦었다. 우연의 일치이겠지만 한·일 간의 간격이 정확하게 들어맞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2014년에 발행된 미쉐린 가이드 후쿠오카·사가 특별판에는 후쿠오카현 111곳, 사가현 20곳의 식당이 이름을 올렸다. 인구 차이를 고려해도 후쿠오카에 비해 부산에서 선정된 식당이 너무 적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미쉐린 가이드의 기준에 맞는 곳이 부족했다면 빕그루망(합리적인 가격에 음식을 제공하는 식당)이라도 더 선정하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미쉐린 측이 부산 지역의 특성을 얼마나 이해하고 리스트에 반영했는지도 궁금하다. 현재 부산을 대표하는 향토 음식으로는 돼지국밥과 밀면이 꼽히지만 미쉐린 가이드는 이들 음식에 상당히 인색한 편이다. 부산은 ‘밀면 천국 냉면 지옥’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밀면이 유명하지만, 2024년 미쉐린 가이드 부산은 밀면집 대신 평양냉면집 두 곳만 빕 구르망에 올려놓았다.

한 음식 전문가는 “일본에 미쉐린 가이드가 처음 들어왔을 때 일본 정부는 지역의 다양성을 외국인들에게 알리기 위해 미쉐린과 치열하게 협상했다. 하지만 미쉐린 가이드 부산에는 충분히 가치가 있어서 리스트에 오를 수 있는 식당들이 너무 제외돼 버린 것 같다”라고 아쉬움을 표시했다. 그는 또 “미식 관광을 위해 산업적 측면에서 드러나야 할 공간들이 제대로 소개되지 못 한 지금의 상황은 부산시가 미쉐린 가이드 유치에만 급급해서 미온적으로 대처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택시와 미슐랭의 합성어인 ‘택슐랭’은 지난해 혜성처럼 등장했다. 부산원도심활성화축제의 일환으로 시작된 택슐랭 축제는 ‘택슐랭 가이드북’을 활용한 방송, 유튜브 영상, 블로그 후기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크게 늘며 화제를 모았다. 지금처럼 급속도로 정보가 공유되기 이전에는 기동력과 입소문을 겸비한 택시 기사들의 추천 맛집이 신뢰가 높았다. 과거부터 쌓인 택시 기사의 신뢰를 맛집 가이드북으로 연결한 아이디어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것이다.


30년 경력의 베테랑 이형도 택시 기사. 부산축제조직위원회 제공 30년 경력의 베테랑 이형도 택시 기사. 부산축제조직위원회 제공

올해로 2회째를 맞은 택슐랭은 부산개인택시운송조합과 부산시 택시운송사업조합 소속 기사 248명의 경험과 정보를 모았다. 30년 경력의 베테랑 이형도 택시 기사는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명을 태우고 부산 골목골목을 다니면서 진짜 살아 있는 정보를 접하는 사람들이다. 택슐랭으로 방송도 출연하고 있는데 이건 진짜 잘 만든 콘텐츠라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2024 미쉐린 셀렉티드 레스토랑 램지의 이규진 셰프도 “미쉐린 가이드가 들어오고 나서 미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파인다이닝에 대한 관심만 집중적으로 늘어나서 아쉬웠다. 저렴하고 대중성 있는 음식들이 뒷받침되어야만 미식이 발전할 수 있다. 미식 도시들은 대부분 각자 지역의 로컬 가이드북이 있는데 택슐랭이 그런 역할을 해 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미식가 또는 미식을 뜻하는 구루메에 B급이란 단어를 결합해 ‘B급 구루메’라는 용어가 1985년부터 사용되고 있다. 처음에는 저렴한 음식을 뜻했지만, 지금은 가성비 좋은 음식과 지방의 특색 있는 재료를 사용한 요리라는 의미로 바뀌었다. 일본에는 B급 요리만으로 겨루는 B-1 그랑프리라는 대회가 인기리에 열리고 있다. 파인다이닝만 있다고 미식 도시가 되지는 않는다. 미쉐린과 택슐랭이 이인삼각으로 ‘미식 도시 부산’이라는 목표를 향해 달려주기를 기대한다.


2015 택슐랭 가이드북. 2015 택슐랭 가이드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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