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우 기자 kjongwoo@busan.com | 2025-06-16 18:15:58
‘주말 대란이 지나갔다.’
16일 휴대전화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이다. 지난 주말 KT와 LG유플러스가 ‘번호이동 지원금’을 일시적으로 대폭 상향하면서 발생한 ‘대란’의 후기다. 이 기간에 이른바 ‘성지’로 불리는 일부 온·오프라인 매장에서는 100만 원이 넘는 지원금을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단통법(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 폐지와 SK텔레콤 완전 영업 재개가 다가오면서 이동통신 시장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모습이다.
■얼마나 싸게 파나
지난 주말 일부 휴대전화 판매점에서는 삼성전자 최신 단말기인 갤럭시 S25 기준 100만 원 이상의 번호이동 지원금이 지급된 것으로 전해졌다. S25 256GB 단말기의 출고가가 115만 원대인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공짜폰’에 가까운 가격으로 판매된 셈이다.
100만 원이 넘는 지원금은 각 통신사가 공식적으로 밝힌 ‘공시지원금’의 두 배가 넘는 수준이다. 16일 통신 3사의 홈페이지에 따르면 S25 관련 최근 공시된 지원금은 50만 원이다. 유통점의 추가 지원금(공시지원금의 15%)을 포함한다고 해도 100만 원대의 지원금은 단통법 규제를 벗어난 규모다.
실제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대란’을 경험한 후기가 속속 올라오고 있다. “부산에서 KT S25 선약(선택약정) 대란 막차 탑승”에 성공했다는 글에는 “일요일 저녁 8시에 갔는데 (계약) 진행해 주셨다”면서 “110 요금제, 부가서비스, 보험” 등의 조건으로 “신사임당 1장”이었다는 후기가 있다. “창원에서 선약으로 LG유플러스 S25 개통”에 성공했다는 글에서는 “99요금제 3개월 유지, 6개월 이후 해지 가능, 부가서비스 1만 원 초반대 3개월 유지” 조건으로 “9만 원”에 구매했다는 후기도 있다.
지원금 대란이 발생하면서 지난 14일 하루 통신 3사의 번호이동이 2만 건을 넘겨 지난 13일에 비해 두 배 정도 늘어난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단말기의 경우 일시적으로 재고가 바닥나 ‘유심 개통 후 기기 배송’으로 판매되기도 했다.
■대란, 왜 발생했나
이번 보조금 대란은 SK텔레콤의 영업 재개에 대한 KT와 LG유플러스의 ‘대응’으로 발생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SK텔레콤은 해킹 사태로 지난달부터 대리점을 통한 신규 가입자 유치가 불가능한 상태였다. 그러나 유심 재고가 확보되고 유심 교체자가 800만 명을 넘기면서 e심(e-SIM)을 시작으로 신규 영업이 재개됐다.
SK텔레콤은 16일 공지를 통해 “금일부터 전국 2600여 개 T월드 매장에서 e심을 이용한 신규 가입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e심은 물리적으로 단말기에 끼우는 유심과 달리 스마트폰에 내장된 가입자 식별 모듈이다. 유심 교체에 영향을 주지 않는 e심부터 영업을 재개하는 SK텔레콤은 물리적 유심도 재고가 충분하다고 밝혀 이번 주 중으로 전체 영업 재개가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SK텔레콤의 영업 재개가 임박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지난 주말 KT와 LG유플러스가 ‘공격적’ 영업에 나서 번호이동 지원금 대란이 벌어졌다. SK텔레콤의 영업 재개 이전에 보조금 확대 정책을 실시해 일시적으로 많은 가입자를 끌어온 셈이다. 불법 보조금 논란이 계속되면서 방통위가 오는 30일까지 ‘실태 점검’에 나선다고 밝혔지만 통신사들의 ‘가입자 빼 오기’를 막기는 역부족이다.
■앞으로 어떻게 되나
보조금 경쟁은 앞으로 더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보조금을 엄격하게 규제한 단통법이 다음 달 22일 폐지되기 때문이다. 2014년 시행된 단통법은 ‘소비자 차별’을 막기 위해 통신사가 지원금을 공시하고 유통점 지원금은 공시지원금의 최대 15%를 넘길 수 없도록 했다. 그러나 단통법이 되자 통신 3사는 마케팅비를 줄였고 번호이동자 수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경쟁’이 사라졌다.
결국 국회가 경쟁 회복을 위해 단통법 폐지안을 통과시키면서 다음 달 22일 단통법이 폐지된다. 공시지원금 제도와 유통점 지원금 상한이 사라질 예정이다. 정부는 단통법이 폐지되더라도 ‘동일한 가입유형·요금제·단말기 조건에서 가입자 주소, 나이, 장애 등을 이유로 서로 다른 지원금을 지급하는 행위는 금지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지원금 경쟁을 허용한다는 것이 단통법 폐지 취지여서 경쟁 확대는 불가피하다.
이 때문에 버스요금 정도에 판매되는 이른바 ‘버스폰’을 넘어 공짜폰이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공짜 단말기에 현금까지 주는 ‘마이너스폰’도 등장할 수 있다. 공짜폰과 마이너스폰은 단통법 규제 하에서도 일부 등장했다.
SK텔레콤 해킹 사태에 따른 가입자 이탈도 번호이동 지원금 경쟁을 부채질하는 요인이다. 당초 증권가에선 단통법이 폐지되더라도 통신 3사가 가입자 지키기 수준에서 마케팅비 확대 경쟁을 자제할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다.
그러나 SK텔레콤 해킹 사태 이후 시장 분위기가 바뀌었다. SK텔레콤에서 이미 40만 명 이상의 가입자가 이탈했고 ‘위약금 면제’ 여부에 따라 수백만 명 단위의 가입자 이탈 가능성이 남아 있다. SK텔레콤 해킹 후폭풍이 고착된 통신 3사의 시장점유율을 흔들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수십 년 만에 시장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기회를 만난 KT, LG유플러스는 공격적인 마케팅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특히 하반기 최신 단말기 출시까지 더해지면 지원금 폭탄을 쏟아낼 최적의 환경이 만들어진다. 신한투자증권은 “통신 3사가 마케팅보다는 디레버리징, 주주환원에 힘쓸 것이라고 전망하나 SK텔레콤 가입자 이탈 추이와 8~10월 플래그십 단말기 출시 시점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단발성 지원금 확대로 일부 소비자들에게 혜택이 집중될 경우 당국에서 가입자 차별 금지를 위한 조치에 나설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