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 2025-06-22 09:00:00
출판계에서 이슬아 작가는 독특한 존재감이 있다. 제도권의 그 어떤 청탁도, 초대도 없이 스스로 독자와 직거래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한 달 구독료 만 원을 받고 독자에게 매일 이메일로 새 글을 배달하는 <일간 이슬아>는 작가로 살기 위한 방법이었다. 현재 30대 초반이지만, 웹툰 작가, 라디오 DJ, 잡지사 기자, 프리랜서 노동자(강연/글쓰기), 문학 교사, 출판사 사장, 주식회사 대표 등 이미 다양한 영역에서 일을 했다.
여러 분야에서 두루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 작가는 ‘이메일을 잘 쓰는 능력’을 꼽았다. 온갖 기술이 판치는 시대지만, 이메일은 여전히 내밀한 업무를 주고받고 중대한 결정을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메일 쓰기에 대한 작가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작가는 “내 섭외는 실패로 끝난 적이 없다” “돈 벌기 위한 일에서는 무조건 최대 금액을 끌어낸다” “미지근한 상대의 가슴에 투명하고 뜨끈한 펀치를 꽂을 수 있다”라고 말할 정도로 이메일의 성과를 자랑한다.
저자의 이메일 쓰기 방법은 이미 유명한 편이다. 쉬었던 <일간 이슬아>가 2025년 3월 돌아왔고, ‘인생을 바꾸는 이메일 쓰기’라는 프로젝트로 진행됐다. 수많은 구독자가 “지금까지 연재 중 최고이자 레전드’라는 찬사를 보냈고, 작가의 방법대로 이메일을 작성해 성공한 인증 사례도 많이 올라왔다.
단행본으로 출간된 <인생을 바꾸는 이메일 쓰기>는 연재 당시 공개하지 않았던 미공개 원고와 이메일 잘 쓰는 18개의 비기를 담고 있다. 저자는 자신의 우상이던 노희경 작가를 만나기 위해 고등학교 시절 노 작가에게 보낸 이메일을 원문 그대로 공개하며 무엇이 부족하고 잘못되었는지 설명한다. 반대로 자신이 받은 최고의 이메일과 최고의 성과를 거둔 본인의 이메일들을 분석해 어떤 점에서 상대방의 마음을 훔쳤는지 소개한다.
18개의 비기 중 가장 먼저 언급한 건 이메일의 특징이다. 이메일은 카톡, 문자, DM보다 느린 매체이다. 채팅보다 덜 즉각적이라는 점이 이메일의 핵심이다. 상대에게 시간을 벌어주는 예의 바른 매체이며, 아무리 짧은 메시지라도 최소한의 격식을 갖추게 한다는 점에서 발신자의 태도를 조금 더 신중하게 만든다.
저자는 15년간 여러 사람과 수천 통의 이메일을 주고받았고, 이메일을 쓸 때 가장 많이 고민하는 지점이 있었다. ‘내 실속은 챙기면서도 무례하지 않을 수 있을까’ ‘상냥하면서도 얕보이지 않을 수 있을까’ ‘돈 더 달라는 말을 어떻게 해야 비굴하지 않을까’ ‘거절하면서도 상처 주지 않을 수 있을까’ ‘싸우지 않고 원하는 것을 얻을 수는 없을까’ 등이다. 물론 작가도 처음부터 잘 쓰지는 못했고, 후회하고 고생하고 다시 고쳐 쓰면서 요령을 터득했다.
책에 소개된 18개의 비기 중 ‘내마금지’와 ‘빠고노더’는 작가가 직접 만든 사자성어로, 메일을 쓸 때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내(내용과 분량), 마(마감 기한), 금(금액), 지(지급일)’을 줄인 ‘내마금지’는 어떤 사람을 섭외하거나 업무 청탁을 할 때 이메일에 꼭 들어가야 할 내용이다. 특히 돈 이야기는 첫 메일에서 얼마인지, 언제 지급되는지 꼭 밝혀야 한다. 수신자가 돈에 관해 묻게 하는 건 큰 실례이며, 섭외 조건을 모르는 상태에선 수락도 거절도 결정하기 어렵다.
‘빠고노더’는 제안이나 요청을 거절할 때 꼭 들어가야 할 내용이다. ‘빠(빠르게), 고(고맙다고 인사한 뒤), 노(노라고 대답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더(더 좋은 기회로 만나 뵙기를 희망한다)’를 뜻한다.
거절 메일은 내용만큼이나 속도도 매우 중요하다. 거절할 거라면 시간을 끌어서는 안 된다. 섭외 담당자가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얼른 구할 수 있도록 거절 의사를 빠르게 전달해야 하며 이 같은 태도는 미덕을 갖춘 사람으로 인식하게 한다.
이슬아 작가는 이메일(일간 이슬아)로 학자금 대출 빚을 갚았고 집도 사고 작가로도 성공했다. 이메일로 인생 최고의 프러포즈를 받으며 남편마저 찾아냈다. ‘인생을 바꾸고 천냥 빚도 갚는 이메일’은 작가의 실제 사례인 것이다.
보통 기술이나 방법을 소개하는 책은 실용서로 분류된다. 그러나 이 책은 이슬아 작가가 타인과 소통하며 남긴 아름다운 글을 고스란히 담았다는 점에서 문학서로 불러야 할 것 같다. 이슬아 지음/이야기장수/280쪽/1만 7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