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현수 기자 songh@busan.com | 2025-09-08 14:07:09
미국 정부의 불법 체류자 단속으로 300명이 넘는 한국인 근로자가 구금된 사태가 벌어진 가운데 정부가 단속 대상이 된 현대차그룹, LG에너지솔루션을 포함한 대미(對美) 투자 기업들과 긴급 간담회를 열고 비자 체계 점검에 나섰다.
산업통상자원부는 8일 오존 서울 여의도 FKI타워에서 박종원 통상차관보 주재로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와 공동으로 대미 투자기업 간담회를 열고 미국 투자 프로젝트 현장 운영과 관련해 비자 문제를 포함한 각 기업의 인력 운용 현황을 점검했다. 기업들로부터 현지 인력 운영을 위한 미국 비자 확보에 관한 건의 사항도 들었다.
간담회에는 현대차그룹,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화학, HD현대, 환화솔루션, LS 등 대미 투자를 진행 중인 기업들이 대부분 참석했다.
이에 앞서 지난 4일(현지시간) 미 이민 당국은 조지아주 엘러벨의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 대한 이민 단속 작전을 벌여 한국인 300여 명을 포함해 475명을 체포·구금했다.
간담회에서 여러 기업 관계자들은 안정적 대미 투자를 뒷받침하는 차원에서 우리 정부가 미국 정부와 다양한 채널의 양자협의 과정에서 비자 발급 제도 개선 성과를 끌어내는 데 역점을 둘 것을 희망한다는 뜻을 전달했다.
정부는 대미 투자 기업들로부터 수렴한 의견을 바탕으로 대미 투자 사업 진행을 위해 단기 파견에 필요한 비자 카테고리 신설이나 비자 제도의 유연한 운영 등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미국 측과 협의를 이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여한구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이날 서울 중구 대한상의에서 열린 제50차 통상추진위원회 회의에서 조지아주 사태와 관련, “미국 조지아주 공장 건설 관련 이민 단속으로 인해 우리의 대미 투자 관련 여러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는 점을 깊이 인식하고 있다”면서 “우리 기업, 국민이 부당하게 권익을 침해받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여 본부장은 “관련 현황을 파악하고 업계 의견을 수렴할 것이며, 향후 외교부 등 관계 부처와 협조해서 제도 개선 방안을 모색하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재계에서는 그동안의 편법적 출장 관행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와 함께, 한미 비자 관련 논의가 장기간 공전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우리 정부는 그간 외교부를 중심으로 안정적 대미 투자 뒷받침 차원에서 한국 기업 관계자들에 비자를 확대 발급해야 한다고 미국에 꾸준히 요구해 왔지만, 구체적인 성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외교부는 최대 1만 5000개의 한국인 전문인력 취업비자 E-4 신설을 위해 미국 내 입법에 힘써 왔지만 법안은 의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기업 근로자들이 미국에서 일하기 위해 회의 참석이나 계약 목적의 B1 비자나, 무비자인 전자여행허가(ESTA)를 소지한 채로 미국으로 출장을 가는 상황이 벌어지던 와중에 이번 대규모 단속 사태가 벌어졌다.
산업부 고위 관계자는 "비자 문제는 한국 기업의 대미 투자와 관련해서 오래전부터 얘기가 나왔던 것으로, 진행 중인 프로세스"라며 "이민과 관련된 이슈이고, 의회가 관련되다 보니 (정부 차원의) 통상 문제로만은 풀기는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