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영 기자 key66@busan.com | 2025-09-08 10:57:25
“서울이 글로벌 아트 캘린더에서 핵심적인 만남의 장으로 자리 잡았음을 다시 한 번 보여주었습니다.”(패트릭 리 프리즈 서울 디렉터)
국내 최대 아트페어인 ‘프리즈 서울’(프리즈)과 ‘키아프 서울’(키아프)이 6일과 7일 각각 막을 내렸다.
올해 관람 인원은 프리즈가 3~6일 나흘 동안 48개국에서 7만 명으로 집계됐다. 지난해(46개국 7만여 명)와 비슷한 수준이다. 프리즈보다 하루 더 열린 3~7일 키아프에는 첫날 9600명 관람을 시작으로 총관람객 8만 2000여 명을 기록했다. 지난해보다 약간 늘어난 수치다.
‘키아프리즈’’(키아프+프리즈) 주요 참석자로는 이재명 대통령 부인 김혜경 여사를 비롯해, 오세훈 서울시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정용진 신세계 회장 등 정관계 인사는 물론 방탄소년단(BTS) RM·뷔(V)·제이홉, 블랙핑크 리사, 마크(NCT), 배우 배두나·소지섭·이종석·이정재·임수정, 이효리, ‘피겨 여왕’ 김연아 등 연예·문화계 유명인들도 대거 찾았다. 함께 자리한 작가로는 마크 브래드포드, 무라카미 다카시, 조엘 메슬러, 데이비드 살레 등이 포함됐다. 특히 올해는 미국 뉴욕현대미술관(MoMA)과 시카고 미술관, 샌프란시스코 아시아 미술관, 영국 테이트 모던, 일본 모리 미술관, 구겐하임 아부다비 등 전 세계 160개 이상의 세계 유수 미술관과 기관 관계자들이 행사장을 찾아 한국 미술 시장에 관심을 보였다. 부산시립미술관도 명단에 올랐다.
■프리즈, 수십억 원대 작품 줄줄이 팔려
28개국 121개의 갤러리가 참여한 프리즈에서는 개막과 동시에, 눈에 띄는 판매 성과와 활발한 참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최근 미술 시장의 불황을 고려하면 예상을 뛰어넘는 성적이다.
하우저&워스 리신 차이 시니어 디렉터는 “올해는 서울에서 우리 아티스트들에게 있어 중요한 전환점이었다”며 “기존 고객뿐 아니라 새로운 세대의 지적이고 세련된 컬렉터를 만나 신뢰를 더욱 심화시켰다”고 밝혔다. 하우저 & 워스는 미국 추상 작가 마크 브래드포드의 회화 3부작 ‘오케이, 덴 아이 어폴로자이즈’(Okay Then I apologize)를 450만 달러(약 62억 6000만 원)에 판매했다. 이는 공식 판매 실적 기준으로 프리즈 서울에서 역대 최고 단일 작품 판매가이다.
또 타데우스 로팍과 화이트큐브는 게오르그 바젤리츠의 2019년과 2014년 작품을 각각 180만 유로(약 29억 2000만 원), 130만 유로(약 21억 1000만 원)에 거래했다. 스프루스 마거스는 조지 콘도의 ‘Thinking and Smiling’(2025)을 180만 달러(약 25억 원)에 판매했다.
레이철 리만 리만머핀 창립자는 “최근의 도전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4년 차에 접어든 우리 팀에겐 큰 성공이었다”며 “이번 주간은 서울이 강력한 컬렉터, 기관, 작가, 갤러리 생태계를 기반으로 계속 성장하는 세계 주요 미술 중심지임을 보여줬다”고 전했다.
국내 갤러리들도 만족을 표시했다. 이현숙 국제갤러리 설립자 겸 대표는 “글로벌 경기 침체와 불안정성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아시아·미국·유럽의 컬렉터와 큐레이터, 미술 관계자와 애호가들은 물론 한국의 다양한 방문객들이 페어와 갤러리, 미술관을 찾으며 도시 전체를 예술의 축제로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우찬규 학고재 회장은 “거센 파도 속에서도 흔들림 없는 바위처럼, 프리즈 서울이 확고히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고, 안혜령 리안 갤러리 대표는 “작년에 비해 신규 컬렉터들의 방문이 늘어나 판매가 증가했고, 새로운 고객층도 확대됐다”고 피력했다. 학고재는 첫날 김환기의 유화 ‘구름과 달, 1962’를 국내 최고가인 20억 원에 거래했다.
■키아프, 거장·신진 고른 판매…“시장 회복” 기대
올해로 24회째를 맞은 키아프는 해외 갤러리 50곳을 포함해 20여 개국 175개 갤러리가 참여했다. 부산 맥화랑 장영호 대표는 “키아프·프리즈 동시 개최가 4년째 진행되면서 키아프의 전시 퀄리티와 관람 환경이 프리즈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향상되었다는 것을 체감했다”고 평가했다. 기혜경(전 부산시립미술관장) 홍익대 교수 역시 달라진 모습의 키아프에 후한 점수를 주며 알찬 구성을 칭찬했다.
판매 성과도 나쁘지 않았다. 경기 침체 여파로 미술 시장의 불황에 대한 우려가 깊은 가운데 개최됐지만, 거장의 작품부터 신진 작가의 작품까지 고른 판매로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했다. 특히 프라이머리 마켓으로서 동시대 미술의 최전선을 소개하는 장의 역할이 강화됐다. 박그림, 박노완, 이동훈 등 ‘2025 키아프 하이라이트’ 선정 작가들이 주목받아 신진 작가 발굴 플랫폼 역할에 기대감을 높였다.
무엇보다 올해는 관람객들의 페어와 현대미술에 대한 관심과 이해도가 한층 높아지며 작품과 작가를 진지하게 감상하는 분위기가 자리 잡은 게 인상적이었다. 아시아 컬렉터, 20~30대의 참여가 두드러지며 현대미술 시장 저변 확대와 새로운 컬렉터층 형성이 확인돼 “불황 속에서도 미술 시장의 저변이 더욱 넓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긍정적인 신호”라고 해석했다.
갤러리별 판매 성과를 보면 국제갤러리가 박서보의 묘법을 4억 원대에 판매했고, 한 점에 4만 5000∼5만 4000달러(약 6300만∼7500만 원)에 달하는 스위스 작가 우고 론디노네의 조각 연작 ‘컬러 마운틴’ 10점을 모두 팔았다.
갤러리 제이원은 바바라 크루거의 작품을 5억 원대에 거래했고, 가나아트는 시오타 치하루 작품을 약 3억 2000만 원에 판매했다. 갤러리현대는 김창열 작품은 2억 원대에, 김보희 작품을 1억 4천만 원대에 팔았으며, 김성윤의 작품 역시 완판을 기록했다.
리안 갤러리는 이진우 작품 3점과 윤종숙, 박대성의 작품을 포함해 총 2억 5000만 원대의 성과를 올렸다. 학고재는 엄정순 대형작(약 6000만 원)과 김재용의 도넛 시리즈 약 30점을 판매하며 사실상 완판을 기록했다. 맥화랑은 강혜은 작품 15점을 완판해 약 1억 1000만 원, 이두원 4점 완판 약 1억 5000만 원, 그 외 김은주, 허문희, 박영환 작품 등을 판매했다.
한편 ‘키아프리즈’는 현재대로라면 내년까지 공동 진행할 예정이다. 아트 바젤과 함께 세계 양대 아트페어 프랜차이즈로 꼽히는 프리즈는 2022년부터 5년간 키아프와 공동으로 서울에서 행사를 진행하기로 했으며 2026년 행사로 계약이 끝난다. 공동 진행 계약 종료 시점이 다가오면서 두 단체가 2027년에도 행사를 함께 열 것인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두 단체 모두 계약 연장에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공식 결정은 내려지지 않은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