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차려진 미술 한 상 대접합니다”

‘모네에서 앤디워홀까지’전
거장 원화 직접 보는 감동
미술사 유명 작가들 총 출동
아프리카 작품 색다른 매력도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2024-07-04 14:01:35

도슨트가 앤디 워홀의 작품 ‘요제프 보이스’를 관객에게 설명하고 있다. 김종진 기자 kjj1761@ 도슨트가 앤디 워홀의 작품 ‘요제프 보이스’를 관객에게 설명하고 있다. 김종진 기자 kjj1761@

“잘 차려진 미술 한 상을 대접받은 기분이다. 그야말로 산해진미가 다 들어가 아쉬움이 없는 상이었다.”

지난 2일 부산문화회관 전시실에서 만난 젊은 커플은 굉장히 행복한 얼굴이었다. 이날 개막한 ‘서양미술 400년, 명화로 읽다-모네에서 앤디워홀까지’전을 보고 나오는 길이었다. 이 전시가 부산에서 열린다는 사실을 알고 개막을 기다렸단다. 비 오는 궂은 날씨에도 전시를 빨리 보겠다는 마음으로 첫날부터 전시장을 찾았다.

17세기 네덜란드 황금기 미술부터 빅토리아 시대 영국 라파엘 전파와 낭만주의, 인상파, 큐비즘, 컨템포러리 아트에 이르기까지 400년에 걸친 서양 미술사 걸작이 마침내 부산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거장의 원작을 실제로 볼 수 있는 기회가 드문 만큼, 첫날부터 전시는 관객이 꾸준히 이어졌다. 대부분 이 전시를 알고 기다린 미술 팬들이다.

도슨트 설명을 들으며 전시장을 크게 한 바퀴 돌고 다시 첫 전시실로 돌아와 한 작품씩 시간을 들여 다시 들여다보는 이들이 많았다. 요즘엔 한 방향으로 진행하고 다시 돌아오지 못하게 하는 전시들도 있어, 마스터피스 걸작 전시를 마음대로 돌아다니며 볼 수 있는 환경이 무척 좋았다. 또 작품의 질감까지 느낄 수 있도록 작품과 관람객의 거리가 굉장히 가까워 거장의 붓 터치를 직접 보는 감동은 보호 장비로 거리감을 둔 기존 전시들과 차별화되는 장점이었다.

9개로 구성된 전시관은 미술 연도별로 구성했고 내부 공간이 넓은 편이어서 쾌적하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국립미술관 요하네스버그 아트갤러리의 소장품 143점을 빌려온 이 전시의 첫 공간은 요하네스버그 아트갤러리의 탄생에 관한 이야기이다.

요하네스버그 아트갤러리의 설립자인 플로렌스 필립스 부인은 예술이 취약 계층을 위한 사회적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국제적 수준의 공공 미술관을 세워 자신이 그 역할을 하고자 했고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선택했다. 광산 거물인 남편을 비롯해 남아프리카공화국 재벌과 영국의 금융계 거물까지 설득해 보조금을 받았고 시의회와 협상해 미술관 설립 프로젝트를 마침내 승인받는다.

필립스 부인은 직접 발품을 팔아 미술관 안에 들어갈 그림을 한 점씩 구입했다. 19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광산 기술 학교의 갤러리로 설립했지만, 그녀의 열정 덕분에 1년 만에 현재 장소인 주베르 공원에 신고전주의 양식의 미술관이 정식 개관한다. 첫 번째 공간은 유명한 초상화가인 안토니오 만치니와 지오반니 볼디니가 그린 필립스 부인, 그의 남편, 이들의 미술품 수집 고문인 휴 레이 경의 초상화를 만날 수 있다.


이번 전시의 대표작으로 불리는 모네의 ‘봄’을 관람객들이 열심히 감상하고 있다. 김종진 기자 kjj1761@ 이번 전시의 대표작으로 불리는 모네의 ‘봄’을 관람객들이 열심히 감상하고 있다. 김종진 기자 kjj1761@

이번 전시에서 소개되는 143점 작품 모두 빼어난 수작이지만, 그중에도 하이라이트로 불리는 작품이 주는 감동은 더욱 특별했다. 대표적으로, 이번 전시회 포스터 작품이기도 한 클로드 모네의 ‘봄’은 생동감 넘치는 터치와 자연의 빛을 담아내려는 시도를 순간의 분위기로 포착했다. 아마도 관람객의 발길을 가장 붙잡는 작품일 것이며,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발랄해지는 작품이다. 에드가 드가의 ‘두 명의 무희들’은 오묘한 매력이 넘친다. 움직이는 몸의 역동성, 발레하는 동작을 순간 포착한 점을 보며 선을 다루는 드가의 실력을 확인할 수 있다.


에드가 드가 ‘두 명의 무희들’. 요하네스버그 아트 갤러리 제공 에드가 드가 ‘두 명의 무희들’. 요하네스버그 아트 갤러리 제공

빈센트 반 고흐 ‘늙은 남자의 초상’. 요하네스버그 아트 갤러리 제공 빈센트 반 고흐 ‘늙은 남자의 초상’. 요하네스버그 아트 갤러리 제공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로 꼽히는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도 뺄 수 없다. 이번에는 초기 작품으로 추정되는 목탄 드로잉 ‘늙은 남자의 초상’이 왔다. 사실 고흐는 흑백 드로잉의 확고한 지지자로, ‘화가의 기초가 드로잉’이라고 믿었다. 빠르게 포착해 순간적으로 그린 작품이지만, 대가 고흐의 미학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남자의 인상과 분위기까지 담고 있어 자꾸만 돌아보게 된다.

20세기 아방가르드 미술의 상징인 파블로 피카소의 작품도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이다. 4점의 판화와 1점의 파스텔화가 전시돼 있는데 말기에 그렸다는 파스텔화는 피카소의 경륜이 담겨 파스텔로도 깊이감을 드러낸 거장의 능력이 놀랍다. 조각의 거장, 로댕 작품 이브도 전시장 한 가운데 존재감을 강력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외에도 프란시스 베이컨, 로이 리히텐슈타인, 앤디 워홀 등 꼭 챙겨봐야 할 20세기 거장의 작품은 이어졌다. 작품을 직접 보니 이들이 왜 대가의 반열에 올랐는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로뎅의 조각 ‘이브’가 전시장 중간에서 빛나고 있다. 김종진 기자 kjj1761@ 로뎅의 조각 ‘이브’가 전시장 중간에서 빛나고 있다. 김종진 기자 kjj1761@
피카소의 파스텔화 ‘어릿광대의 두상Ⅱ’를 관람객이 보고 있다. 김종진 기자 kjj1761@ 피카소의 파스텔화 ‘어릿광대의 두상Ⅱ’를 관람객이 보고 있다. 김종진 기자 kjj1761@

이번 전시의 마지막 공간인 아프리카 미술 섹션. 서양 회화와 다른 매력이 있다. 김종진 기자 kjj1761@ 이번 전시의 마지막 공간인 아프리카 미술 섹션. 서양 회화와 다른 매력이 있다. 김종진 기자 kjj1761@

마지막 공간인 남아프리카 예술 섹션은 예상치 못한 의외의 발견이었다. 서양 중심으로 이루어진 명화 전시에서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아프리카 미술의 놀라운 감각을 느낄 수 있다. 아프리카 전통과 유럽 미술 사이에서 그들 특유의 창의성이 돋보이는 작품은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자리 잡은 갤러리의 가치와 예술의 영향력을 믿은 필립스 부인의 신념이 현실에 구현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입장권을 구입하면, 한국에서 전업 도슨트라는 직업을 확립했다고 알려진 스타 도슨트 김찬용 씨의 음성 가이드 앱을 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다. 명화 작품을 잘 모른다고 해도 음성 가이드를 들으며 작품의 감동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이를 위해 이어폰은 따로 준비해 가는 것이 좋다. 공간 배치도와 작가, 작품명을 담은 가이드 팸플릿이 준비돼 있으니 입장 전에 꼭 챙길 것을 권한다.

전시는 10월 27일까지 부산문화회관 전시실에서 열리며, 월요일은 휴관한다. 카카오와 네이버, 티켓링크, 부산문화회관 홈페이지 등 온라인으로 입장권을 판매 중이며 현장 구매도 가능하다. 성인 2만 원, 중고생 1만 6000원, 어린이(3세 이상) 1만 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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