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을 잡은 조각가들, 이유 있는 외도?

부산 대표 조각가 박진성·감성빈
맥화랑·아트 소향서 각각 개인전
독창적 조각 넘어 회화까지 선봬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2024-07-07 14:14:20

박진성과 감성빈. 부산의 40대 조각가인 두 사람은 치열한 작업으로 미술판에서 꽤 유명하다. 전업 작가라는 말 그대로 두 작가는 매일 아침 작업실로 출근해 저녁까지 작업만 하는 걸로 알려져 있다. 어떤 메시지를 담을지부터 어떤 형태로 발전시킬까에 대해 고민을 반복했고 당연히 작품에 그들의 노력이 고스란히 담겼다. 이젠 전국 아트페어를 비롯해 외국 페어에서조차 두 사람의 작품을 찾을 정도로 고정 팬도 많이 생겼다.

이름이 꽤 알려진 작가로 미술판에서 안정된 위치를 차지했지만, 두 작가는 멈추지 않았고 그 결실을 만날 수 있다. 부산의 두 화랑에서 펼쳐진 두 작가의 개인전에선 기존의 장점에 더해진 새로운 시도가 무척 반가웠다. 장기인 조각뿐만 아니라 회화까지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자신의 이야기를 좀 더 직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주말까지 열리는 두 작가의 개인전은 미술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꼭 챙겨보길 권한다.


박진성 작가의 새 시리즈 ‘나와나’. 맥화랑 제공 박진성 작가의 새 시리즈 ‘나와나’. 맥화랑 제공

■박진성, 눈물의 카타르시스

어른이 된다는 건 감정에 솔직해져서는 안 된다는 걸 배우는 과정이다. 특히 남자 어른의 눈물은 나약함을 드러내는 것이라 여겨 참아야 하는 것으로 인식된다. 박진성 작가의 작품은 눈물이 주는 긍정적 효과와 위로에서 시작됐다.

맥화랑에서 13일까지 열리는 박진성의 ‘미스터’전은 어린아이의 외향에 민머리, 거뭇거뭇한 수염과 깊은 주름을 가진 박 작가 특유의 인물을 만날 수 있다. 어린이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 외모, 한 방울의 눈물을 머금은 이 인물은 많은 이들의 웃기로 울렸다. 재미있는 상황에 웃다가 조각에 다가갈수록 느껴지는 고달프고 힘든 정서에 동질감을 느낀다. 본인 같아서 혹은 아버지 같아서 혹은 그리운 어떤 존재 같아서 많은 관객이 박 작가의 인물 조각을 집에 데리고 갔다. 울지 못했던 현대의 어른들은 자신을 대신해 울어주던 조각에서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박진성 ‘풍선’. 맥화랑 제공 박진성 ‘풍선’. 맥화랑 제공

박진성 ‘my story’. 맥화랑 제공 박진성 ‘my story’. 맥화랑 제공

이 시리즈로 큰 사랑을 받았던 박 작가는 계속 작업을 확장시켰다. 다양한 오브제를 등장시키며 위안을 받을 수 있는 것들을 적극적으로 찾기 시작했다. 작은 꽃을 들고 있거나 풍선 같기도 하고 큰 쿠션 같기도 한 핑크빛의 덩어리와 함께 한 인물도 있었고, 내면의 목소리에 집중해 보자는 의미로 자신의 이야기를 담을 책과 인물 시리즈도 선보였다. 파랑새 시리즈 역시 희망과 행복의 메시지를 좀 더 구체적으로 보여준 작품이었다.

베스트셀러처럼 미술 시장의 반응이 좋은 시리즈를 여러 개 가졌지만, 박 작가는 이번 개인전에서 새로운 시리즈를 탄생시켰다. 부조 형태로 만들어진 책 조각 위에 페인팅이 덧입혀진 액자 시리즈와 똑같이 생긴 두 인물이 손을 맞대거나 마주 보는 ‘나와나’ 시리즈가 그것이다.


책 모양의 조각에 회화를 직접 그린 박진성의 ‘파랑새-여행’. 맥화랑 제공 책 모양의 조각에 회화를 직접 그린 박진성의 ‘파랑새-여행’. 맥화랑 제공

우선 액자 시리즈에선 박 작가의 단단한 페인팅 실력에 놀라게 된다. 조각에서 드러난 채색 솜씨를 미리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놀라운 수준의 회화 작품을 선보일 정도일 줄 몰랐다. 전시장에서 만난 한 회화 작가는 “조각에 페인팅까지 잘하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냐”는 푸념을 잔뜩 할 정도였다.

나와나 시리즈는 박 작가의 고민이 특히 많이 담긴 작품이다. “제 작업을 관통하는 주제가 위로인데 문득 나를 가장 잘 알고 잘 위로해줄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자신이더군요. 너무 힘들거나 슬플 땐 옆에서 누가 뭐라고 해도 들리지 않더군요. 결국 스스로 마음을 잡고 일어나야 한다는 걸 느꼈죠. 그래서 쌍둥이처럼 같은 두 사람이 서로를 보며 위로하는 나와나 시리즈가 탄생했어요.”

슬픔이 아니라 행복해지기 위한 눈물, 진정한 위로를 전하는 내면의 나. 전시를 보고 나면 뭔가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가벼워진 자신을 마주할 수 있다.




감성빈 ‘황혼’. 아트 소향 제공 감성빈 ‘황혼’. 아트 소향 제공

■감성빈, 슬픔은 삶의 강력한 의지

2021년 이후 3년 만에 아트 소향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는 감성빈 작가의 전시 제목은 ‘순순히 어두운 밤을 받아들이지 마오(Do not gentle into that good night)’이다. 시의 한 구절 같은 이 제목은 실제로 영국 웨일스 시인 딜런 토머스의 시에서 가져온 문구이다. 밤은 삶의 황혼을 의미하며 인간은 어떤 나이에도 꺾일 수 없는 삶의 의지를 가진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고 한다.

감 작가는 중국의 미술 천재들이 간다는 북경 중앙미술학원 출신으로 인간의 감정 중 슬픔에 주목해 그 감정을 작품에 드러낸다. 사람의 감정이 오롯이 담겨 있는 조각으로 시작해 회화로도 그 영역을 넓혔고 이젠 회화와 조각의 구분이 더 이상 의미가 없을 정도로 두 영역 모두 톱 클래스 실력을 보여준다.


감성빈 ‘배회’. 아트 소향 제공 감성빈 ‘배회’. 아트 소향 제공

감성빈 ‘그날’. 아트 소향 제공 감성빈 ‘그날’. 아트 소향 제공

이번 전시에선 인간의 다양한 군상을 액자에 조각하고 캔버스에는 슬픔이 진하게 느껴지는 인물을 유화로 그렸다. 두껍지 않은 액자 프레임에 일일이 조각을 새기고 대담하게 붓으로 표현한 작품은 극적인 감정을 고스란히 전한다. 작가가 이번 개인전을 준비하며 들었던 이탈리아 작곡가 프란체스코 디 안드레아의 ‘문 왈츠’가 전시장에 은은히 흐르고 있다. 마치 한 편의 종합예술이 펼쳐지는 기분이다. 공교롭게도 붉게 물들어 가는 석양을 배경으로 무표정한 모습으로 연주하는 사람들을 담은 200호 대형 크기의 그림 제목 역시 ‘문 왈츠’이다. 쇠약해지는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찬란하게 비추는 석양을 보며은 삶에서 느끼는 상실과 감격을 떠올리게 한다.


감성빈 ‘문 왈츠’. 아트 소향 제공 감성빈 ‘문 왈츠’. 아트 소향 제공

모든 그림 속에 슬픔의 정서가 흐르지만 감 작가의 작품은 마냥 슬프게 울고만 있으라는 의미가 아니다. 슬픔을 마주하고 그걸 극복해 가는 인간의 의지가 느껴진다. 거실이나 안방에는 화사한 작품을 선호한다는 기존 분위기를 깨고 감 작가의 작품이 안방과 거실을 차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는 온라인 전시 플랫폼인 ‘코리안 아티스트’를 통해 무료로 작품을 관람하고 구매까지 가능하다. 전시는 13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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