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경륜 기자 takk@busan.com | 2024-10-05 10:24:09
영화 ‘너는 내 운명’(2005), ‘신세계’(2013) 등의 작품에서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주며 팬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는 배우 황정민이 부산국제영화제(BIFF)‘ 액터스 하우스’에서 관객과 만났다. 그는 “연기할 때 비로소 살아있음을 느낀다”며 배우라는 직업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4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신세계백화점센텀시티점 문화홀에서 열린 ‘액터스 하우스’에 참석한 배우 황정민이 관객을 향해 박수를 치며 등장하자 객석을 가득 채운 관객들은 큰 환호로 보답했다. 그는 “영화나 연극의 캐릭터로서 관객과 만나는 자리는 익숙하지만 인간 황정민으로서 무대에 서는 자리는 부끄럽다”며 말문을 열었다. ‘서울의 봄’(1312만 명)과 ‘베테랑’(1341만 명)으로 천만 영화 두 편에 출연한 그는 최근 영화 ‘베테랑2’에서 서도철 역을 맡아 관객과 만나는 중이다.
황정민은 최근 출연한 작품인 ‘베테랑2’에 대한 이야기를 가장 먼저 꺼냈다. 그는 영화 ‘베테랑’이 탄생한 배경에 대해 설명하며 작품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황정민은 “영화 ‘신세계’에서 드럼통이 등장하는 창고 장면을 찍고 있을 때 ‘베를린’을 찍고 있던 류승완 감독이 현장에 찾아왔다. 류 감독의 얼굴을 보니 살이 다 빠지고 너무 힘들어 보였다”며 “우리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일을 왜 이렇게 괴롭게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어 우리끼리 재밌게 낄낄대며 할 수 있는 작품을 하나 해보자고 말한 게 ‘베테랑’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배우가 시리즈물을 갖는다는 건 필모그래피에서는 큰 영광이다. 1편에서 이야기와 인물이 매력적이라는 반응이 있었으니까 2편도 만들 수 있는 것”이라며 “베테랑2는 제 인생에 있어서는 활력을 더해주는 영양제 같은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1990년대 데뷔해 연기 인생을 30년 이상 이어오고 있는 그에게 연기는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의미 있는 일이었다. 황정민은 연기를 할 때 비로소 살아있음을 느낀다고 털어놨다. 황정민은 “사람들이 나에 대해 잘 모를 때는 해외여행 때 쓰는 직업란에 배우라고 적기 창피했다. 배우인데 무대와 스크린에서 등장하지 않으면 사람들에게 배우라고 말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며 “그게 연기를 계속하게 한 원동력이고, 무대에서 연기할 때 내가 배우구나, 살아있구나 하는 것을 느낀다. 살아 있음을 느끼려고 계속 작품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영화 ‘서울의 봄’에서 전두광 역을 맡아 내공 깊은 연기를 보여준 그는 작품이 자칫 정치적으로 비칠까 봐 그동안 ‘서울의 봄’에 대한 언급을 자제해왔다고 밝혔다. 실제 역사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기 때문에 자칫 불필요한 오해를 남길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인터뷰도 모두 거절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황정민은 “전두광이라는 인물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인물이고 그 사람이 했던 말도 안 되는 행동이나 그 뒤에 발생한 광주사태 등을 보고 듣고 자라 내 세포 속에 쌓여 있다”며 “이 이야기는 정치적인 영화가 아니지만 나의 말 한마디로, 괜히 정치적으로 엮일까 봐 걱정됐다. 관객들이 영화를 잘 이해해 주셔서 감사하고 영화 시장이 너무 어려워 관객이 많이 모일까 속으로 의문을 품었지만 이 작품이 이렇게 잘 될 줄 몰랐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날 행사에서는 황정민을 향한 팬들의 애정어린 질문이 이어졌다. 황정민은 정해진 일정을 마쳤는데도 직접 행사를 조금만 더 하자고 제안하며 관객의 질문에 성심성의껏 대답했다.
한 관객은 그에게 “영화 ‘공작’에서 대사 대신 표정으로 캐릭터의 상황을 전달하는 경우가 많은데 어떤 식으로 연습했느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황정민은 “대사를 하지 않을 때의 전달할 수 있는 에너지와 깊이감을 스스로 늘 공부한다. 이걸 ‘무언의 미학’이라 표현하고 싶다”며 “‘부당거래’ 때부터 이러한 방식을 연구해 ‘공작’에서 비슷한 방식을 사용했다. ‘부당거래’보다는 조금 더 정제된 연기가 나왔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황정민은 영화 ‘국제시장’에서 보여준 마지막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 장면이라고 회상했다. 그는 “영화 후반부에 초라한 노인이 돌아가신 아버지의 사진에 대고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다”며 “아버지 나 잘살았지예, 내 진짜 힘들었거든예라고 말하는 부분을 생각하면 지금도 울컥한다”고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