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 , 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 | 2025-04-21 18:34:14
“한국보다 빈집이 6배 많은 일본에선 대도시에서 빈집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한국도 점차 일본과 비슷해지는 양상을 보일 수 있습니다. 빈집 문제를 해결하려면 지역 소멸을 막아야 하고, 지역 소멸을 막기 위해선 여성들이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21일 웨스틴 조선 부산 그랜드볼룸에서 개최된 ‘2025 부산인구 미래포럼’ 두 번째 기조 강연을 맡은 호사카 유지 세종대 일본정치학과 교수는 ‘일본의 사례로 살펴보는 부산 지역 빈집의 미래’라는 주제로 진행된 기조 강연에서 “빈집 문제를 한국보다 먼저 겪은 일본은 굉장히 심각한 상황까지 문제가 진행됐다”고 밝혔다.
■日 대도시까지 번진 빈집
2023년 일본의 빈집 수는 약 900만 호로 최대치를 기록했다. 빈집 비율도 13.8%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일본 빈집 조사는 5년마다 이뤄지는데 2018년 849만 호였던 것과 비교해 51만 호가 증가했다. 임대, 매각, 별장 등의 2차 이용을 제외한, 이용 목적이 없는 빈집은 385만 호로 2018년에 비해 37만 호 증가했다. 특히 와카야마, 도쿠시마, 야마나시, 가고시마, 고치, 나가노는 빈집 비율이 20%를 넘는다.
일본의 빈집 문제는 대도시까지 번졌다. 일본에서 빈집이 가장 많은 도시는 수도 도쿄인데, 약 90만 호의 빈집이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부산과 비슷한 일본 제2의 도시 오사카에도 약 70만 호의 빈집이 있는데, 이는 관서지방에서 가장 많은 수치다. 호사카 교수는 “일본에서 빈집 수가 많은 도시는 홋카이도를 제외하고 모두 대도시”라며 “집이 많은 도쿄 등 대도시에서 빈집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은 어떻게 대비해야 하나
부산에는 총 132만 9000호의 집이 있으며 그 중 빈집은 9%인 11만 4000호다. 전체 빈집 중 방치된 빈집은 4.4%로 5000호 이상이다. 아직 일본에 비해서는 빈집 비율이 낮은 편이지만 지금 제대로 대비하지 않으면 일본 대도시의 사례처럼 해운대 등 도심까지 빈집 문제가 퍼질 수 있다.
빈집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역 소멸 문제를 극복해야 한다는 게 호사카 교수 생각이다. 그는 “일본은 2040년까지 지자체의 50%가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10년 전부터 나온 만큼 지역 소멸 문제가 심각했으며, 이로 인해 빈집 문제도 커진 상황”이라며 “일본 지자체들은 빈집 등 지역 문제 해결을 위해 저마다 지역 소멸 극복에 사활을 걸고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호사카 교수는 저출생 문제를 극복해 소멸 지역에서 벗어난 일본 지자체의 사례를 예로 들었다.
그는 “일본의 몇몇 지자체는 20~39세까지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연령의 여성 인구를 늘리는 것에 주목했다”며 “여성들이 지역을 떠나지 않는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 소멸 지역에서 벗어났다”고 밝혔다. 이어 “먼저 여성들이 살고 싶은 도시가 되면 그들은 자연스레 이곳에서 아이를 낳고 살아가게 될 것이며 이를 통해 빈집 문제를 비롯한 지역 소멸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머물고 싶은 도시’의 조건
빈집과 지역 소멸 문제를 넘어설 열쇠는 결국 ‘행복한 도시’로 전환해야 한다는 분석도 나왔다.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는 앞선 기조 강연에서 “도시는 콘크리트가 아니라 사람의 욕구를 단계적으로 채워주는 공간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 교수는 먹고 살 수 있는 일자리, 안심할 수 있는 주거,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관계그리고 나답게 살아갈 수 있는 기회가 충족될 때, 시민은 도시를 ‘내가 머물 이유가 있는 곳’으로 인식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행복을 결정짓는 요인 중 절반은 사회적 관계”라며 “도시는 시민들이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맺고,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설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회적 관계(50.2%)는 소득(7.3%)이나 건강(19.3%)보다 훨씬 더 큰 비중으로 행복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 교수는 “관계가 단절된 삶은 경제적 풍요와 무관하게 사람을 불행하게 만든다”며 “도시가 지속 가능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은 결국 사람 사이를 연결하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네트워크를 마련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