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 | 2025-05-19 18:00:38
“부산외국어대학교는 국내를 넘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외국어를 가르치는 대학이 되겠습니다.”
장순흥 부산외국어대학교 총장은 〈부산일보〉와의 인터뷰에서 2030년까지 외국어 전공과목을 50개로 확대하겠다는 청사진을 밝혔다. 외국어 특성화를 통해 지역 대학의 한계를 극복하겠다는 전략이다. 장 총장은 “외국어는 단순한 학문이 아니라, 인공지능 시대의 핵심 역량”이라고 단언했다.
■외국어 강의 개설로 차별화
현재 부산외대가 개설한 외국어는 23개다. 올해 1학기부터는 히브리어, 스와힐리어, 타갈로그어가 새롭게 강의에 포함됐다. 이 외에도 학교는 중앙아시아, 동남아, 아프리카, 중동, 동유럽 언어 등 전략·희소 언어 중심의 전공 확대를 단계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페르시아어, 파슈토어, 타지크어, 캄보디아어, 라오어, 조지아어, 베르베르어 등이 있다.
이는 국내 다수 대학이 외국어 교육을 축소하는 흐름과는 정반대다. 장 총장은 “한국외대가 45개 외국어 전공을 운영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넘어서는 게 목표”라며 “단순히 숫자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산업 수요와 외교 전략에 맞는 언어 중심으로 구성하겠다”고 말했다.
장 총장은 최근 전 세계적으로 화제인 인공지능(AI)에도 언어가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했다. 그는 “언어는 인간의 사고와 문화를 이해하는 기초이며, AI 기술의 핵심인 대규모 언어모델(LLM) 개발에도 필요한 기반”이라며 “부산외대는 글로벌 언어 인재 양성을 위한 플랫폼이자, AI 시대 선도하는 데이터 인프라 역할까지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학생이 듣고 싶은 수업을 듣는다
장 총장은 부산외대에 부임한 뒤 가장 역점을 둔 제도로 ‘통합전공제’를 꼽았다. 2024학년도부터 모든 신입생을 자유전공으로 선발해, 1학년 동안 전공 없이 다양한 수업을 수강하게 한 뒤 2학년 진급 시 자신이 원하는 전공을 자율적으로 선택하도록 하고 있다. 일부 인기 전공에 지원자가 몰리더라도, 성적순이 아닌 ‘희망 100% 반영’ 방식이다.
장 총장은 “기존 학과 제도는 입시 때 선택한 전공이 맞지 않더라도 억지로 적응해야 한다. 하지만 부산외대는 1년간 다양한 수업과 경험을 통해 진짜 하고 싶은 전공을 찾을 수 있다. 진로에 대한 자기 확신이 생겨야 공부도 즐거워지고, 자존감도 높아진다”고 밝혔다.
이 같은 구조가 가능한 것은 부산외대가 ‘학과 중심’이 아닌 ‘학점 기반 전공 인증제’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33학점을 이수하면 주전공, 30학점은 부전공, 9학점은 마이크로전공으로 인정된다. 학생들은 이를 바탕으로 복수전공, 융합 전공 등 자신만의 커리큘럼을 자유롭게 설계할 수 있다.
장 총장은 “AI 시대에는 언어 하나와 IT 하나, 언어 하나와 문화·콘텐츠 하나를 결합할 수 있는 융합형 인재가 필요하다”며 “부산외대는 복수전공을 필수에 가깝게 권장한다”고 설명했다.
■가장 글로벌한 대학으로
부산외대는 언어 특화 전략을 통해 지역 대학이라는 한계를 뛰어넘고 있다. 현재 재학생 중 부산 출신은 전체의 30% 미만이며, 수도권과 전국 각지에서 온 학생이 다수를 차지한다. 외국인 유학생 비중도 15%에 이른다.
장 총장은 “우리 학교는 지역 인재만 보는 것이 아니라, 전국과 전 세계에서 인재를 끌어온다. 지역 대학의 생존 전략은 결국 ‘글로벌화’에 있다”고 말했다.
외국인 유학생 정착을 위한 지원도 눈에 띈다. 학교 내부에 클리닉을 설치해 의료 접근성을 높였고, 여권만으로 바로 계좌를 개설할 수 있도록 부산은행과 협력해 캠퍼스 내 전용 창구도 운영 중이다. 장 총장은 “외국인 학생들이 가장 불편해하는 게 병원과 은행인데, 우리는 그 벽을 낮췄다. 지금은 하루 만에도 계좌를 열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부산외대의 캐치프레이즈는 ‘가장 글로벌한 대학, 가장 행복한 대학’이다. 장 총장은 “언어는 세계를 연결하는 열쇠이고, 학생이 자신의 진로를 주도적으로 설계할 수 있어야 진짜 행복하다”며 “부산외대는 그 두 가지를 모두 실현하는 대학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글·사진=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