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채식주의자’ 연출가 "책 읽자마자 무대 올릴 결심해"

한강 소설 원작의 이탈리아 작품
부산국제연극제 폐막 무대 장식
두 차례 공연 전 좌석 매진 인기

연출 맡은 다리아 데플로리안
"집단의 폭력과 충돌하는 개인
고전 문학의 공통 주제와 닿아"

김희돈 기자 happyi@busan.com 2025-06-02 09:00:00


제22회 부산국제연극제 폐막작으로 초청돼 부산을 찾은 이탈리아 연극 '채식주의자'의 연출가 다리아 데플로리안이 지난달 30일 영화의전당에 설치된 배너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김희돈 기자 제22회 부산국제연극제 폐막작으로 초청돼 부산을 찾은 이탈리아 연극 '채식주의자'의 연출가 다리아 데플로리안이 지난달 30일 영화의전당에 설치된 배너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김희돈 기자

“소설 <채식주의자>는 단순히 육식을 거부하는 영혜의 이야기에 그치는 게 아닙니다. 폭력에 맞서 자신의 꿈을 추구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두에게 질문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탈리아 연극 ‘채식주의자’를 폐막작으로 한 제22회 부산국제연극제가 지난 1일 막을 내렸다. 연극 ‘채식주의자’는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 소설을 유럽 극단이 연극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내에서도 많은 관심을 받았다. 부산 공연을 위해 한국에 처음 왔다는 연출가 다리아 데플로리안(Daria Deflorian)을 지난달 30일 영화의전당에서 만났다. 데플로리안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연출가이자 배우,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이번 작품에는 주인공 영혜의 언니 인혜 역을 맡아 직접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친구의 권유로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를 읽은 후 곧바로 주인공에게 푹 빠졌다고 회상한 데플로리안은 “주로 간접 방식으로 영혜의 상황이 많이 표현됐는데, 그게 오히려 굉장히 깊은 내면을 담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고 이유를 밝혔다. 이어 “이건 한국에 한정된 폭력이 아니라,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 자신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며 연극으로 만든 계기를 소개했다.

제22회 부산국제연극제 폐막작으로 선보인 이탈리아 연극 '채식주의자'의 공연 모습. 연출을 맡은 다리아 데플로리안(맨 오른쪽)은 주인공 영혜의 언니 인혜 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부산국제연극제 조직위 제공 제22회 부산국제연극제 폐막작으로 선보인 이탈리아 연극 '채식주의자'의 공연 모습. 연출을 맡은 다리아 데플로리안(맨 오른쪽)은 주인공 영혜의 언니 인혜 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부산국제연극제 조직위 제공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어떤 꿈을 꾼 뒤부터 육식을 거부하며 가족과 갈등을 빚는 ‘영혜’를 주인공으로 한 장편소설이다. 소설은 영혜를 둘러싼 남편과 언니, 형부의 시선을 중심으로 서술된다. 주도적인 화자가 되지 못한 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에 맞선 영혜의 선택이 큰 울림을 남긴다는 평가를 받는 작품이다.

데플로리안은 “개인의 욕구가 가족이나 사회와 충돌하며 겪는 갈등과 그걸 해결하려는 과정은 시공을 뛰어넘는 문학의 주제”라고 말했다. 그녀는 이어 "한강의 작품 또한 그런 면에서 맞닿아 있다"며 "연극 '채식주의자'도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대할 때처럼 고전적인 시각으로 연출했다"고 밝혔다.

영혜의 미묘한 심리를 무대에서 표현하는 게 어렵지 않았냐는 질문엔 의외로 간단한 답을 내놓았다. 데플로리안은 “음악이나 오브제, 무대 장치 등 모든 게 다 중요했다"고 말하면서도 “무엇보다 배우의 몸짓과 대사가 모든 걸 말해 줬다”고 강조했다. 데플로리안은 영혜 역을 맡은 배우 모니카 피세두에 대해 “처음 만났을 때부터 ‘너는 딱 영혜다’라고 느꼈다”며 “마침 둘 다 원작 소설을 읽은 터라 영혜에 대해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지난달 30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연극 '채식주의자'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연출가 다리아 데플로리안. 김희돈 기자 지난달 30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연극 '채식주의자'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연출가 다리아 데플로리안. 김희돈 기자

연출가로서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도 궁금했다. 데플로리안은 이 질문에 “연극을 완성하는 건 관객의 몫”이라고 답했다. 이어 “나는 예술가로서 작품성을 보장하기 위한 노력을 책임감 있게 할 뿐”이라며 “관객의 영역까지 요구하거나 판단하지는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연극 ‘채식주의자’는 지난해 10월 볼로냐를 시작으로 이탈리아 주요 도시와 프랑스 파리에서 순회공연을 펼쳐 큰 관심을 받았다. 이번 부산 공연은 아시아 최초이자 현재까지 유일한 무대이기도 하다. 지난달 31일과 6월 1일 이틀간 열려 두 차례 모두 전 좌석이 매진됐다. 공연팀은 제주도와 서울에서 며칠 머문 뒤 한국 일정을 마무리하고 귀국할 예정이다. 이어 7월 그리스를 시작으로 스페인과 스위스 등 내년까지 유럽 국가 공연 계획이 잡혀 있다.

데플로리안은 지난해 12월 노벨상 시상식이 열린 스웨덴 스톡홀름을 직접 찾아 한강 작가와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데플로리안은 “한강 작가가 우리 연극을 꼭 보고 싶다고 말했다”며 그날이 빨리 오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방한 땐 일정이 맞지 않아 만나지 못할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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