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갈비 맛이 다른 건 저마다 추억이 다르기 때문이다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2025-09-12 07:00:00

충무동 골목시장 고갈비 특화 거리. 충무동 골목시장 고갈비 특화 거리.

부산의 시어(市魚)는 고등어다. 2011년 시민들의 여론을 수렴하고 시의회의 의결을 거쳐 결정됐다. 부산처럼 도시를 대표하는 물고기를 시어로 공식 지정한 도시는 거의 없다. 전국 고등어 유통량의 80%를 담당하는 부산공동어시장을 보유한 부산다운 결정이었다. 고등어의 푸른 등과 은빛 배는 역동성과 청정함, 굵고 강한 지느러미는 활력과 영민함, 유선형의 몸체는 빠른 전진과 창조 도시의 이미지를 상징한다.

사실 부산은 고등어와 인연이 깊다. 부산 중구 광복동에는 ‘고갈비 골목’도 있었다. 부산 역사의 상징과도 같은 용두산공원의 입구이자, 부산 최고의 거리였던 미화당백화점을 끼고 있는 곳이었다. 낮에는 사람들로 인산인해였고, 밤에는 고갈비와 막걸리를 시켜 먹으며 시끌벅적한 골목이었다. 1960~90년대 이곳에는 한때 10곳이 넘는 고갈비집이 성업했다. 고등어 굽는 연기와 냄새가 가득한 골목이었다.

세월이 흐르며 이제는 부산 사람 중에도 고등어를 고갈비라고 부르는 이유를 모르는 사람이 늘어났다. <부산역사문화대전>에는 고갈비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전한다. ‘1960년대 돈이 궁하던 서민과 대학생들이 저렴한 안주인 고등어구이를 즐겨 먹었고, 고등어의 기름기 때문에 구울 때 연기가 많이 나는 것이 마치 돼지갈비를 연상시킨다고 하여 고갈비라고 불렀다는 설이 유력하다. 또한, 고등어를 갈비처럼 구워서 먹는다고 하여 붙여졌다고도 하고, 고갈비집 주인들은 주로 학생들이 먹는다고 하여 ‘높을 고(高)’ 자를 붙여 고갈비라 부르기도 하였다.’

음식 칼럼니스트 최원준 시인은 “고갈비 골목을 찾던 청춘들의 호연지기는 차고 넘쳤다. 당시 생선 취급도 못 받던 고등어를 먹으면서도 갈비를 뜯는다고 하고, 소주를 ‘이순신 코냑’, 막걸리는 ‘야쿠르트’, 무로 담근 물김치는 ‘파인애플’, 깍두기는 없으면 섭섭하기에 ‘못 잊어’, 마시는 물은 ‘오리방석(오리가 타는 방석)’으로 부르며 호기를 부렸다”라고 부연했다. 현재 광복동 고갈비 골목의 가게들은 대부분 사라지고 ‘남마담’ 한 곳만 남아서 영업하고 있다. 게다가 남마담도 고갈비 가격이 1만 8000원으로 너무 올라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고갈비 특화 거리를 알리는 표지판이 낡고 색이 바랬다. 고갈비 특화 거리를 알리는 표지판이 낡고 색이 바랬다.

‘어디로든 갈 수 있는/튼튼한 지느러미로/나를 원하는 곳으로 헤엄치네//돈이 없는 사람들도/배불리 먹을 수 있게/나는 또다시 바다를 가르네//몇 만원이 넘는다는/서울의 꽃등심보다/맛도 없고 비린지는 몰라도//그래도 나는 안다네/그동안 내가 지켜온/수많은 가족들의 저녁 밥상….’ 2009년 싱어송라이터 루시드 폴은 고등어를 이렇게 노래했다. 어쩌면 이렇게 고등어를 잘 알고 묘사했을까, 역시나 부산 출신이었다. 이처럼 서민들 추억의 음식인 고갈비를 맘 편하게 먹을 곳이 어디 없을까. 그렇게 찾은 곳이 충무동 골목시장이다.

충무동 골목시장은 고갈비 이전에 파전 골목이 유명했다. 전(煎)을 파는 음식점이 골목에 자연스럽게 모이기 시작하면서 1965년 골목시장이 개설된 것으로 전한다. 골목시장은 전집으로 이름이 높았지만, 해산물 유통이 쉬운 지리적 이점으로 생선구이를 파는 음식점 또한 많았다. 인근에는 부산공동어시장을 비롯해 자갈치시장, 충무동 새벽시장, 충무동 해안 시장 등 재래시장 상권이 잘 형성되어 있다.

이에 착안한 부산 서구가 충무동 골목시장 사거리의 파전 골목을 고갈비 특화 거리로 조성한 게 지난 2017년이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서구는 간판에 부산을 대표하는 마스코트로 선정한 ‘꼬등어’ 캐릭터를 접목하고, 점포 앞쪽에 테이블과 의자, 파라솔을 설치해 노천카페와 같은 분위기를 만들었다. 최근에 찾은 충무동 골목시장 고갈비 특화 거리는 여전히 성업 중이어서 반가운 마음이 앞섰다. 탐라왕족발, 금강파전, 진주집, 영동상회, 충무고갈비, 거제집, 진주파전, 세명빈대떡, 등대파전, 영진빈대떡 등이 여전히 고갈비의 맥을 잇고 있었다.

골목, 시장, 고갈비를 만나자 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추억이 슬며시 올라왔다. 충무고갈비를 자주 찾는다는 한 단골은 “추억의 맛이 좋다. 옛날 추억을 만나기 위해 이 곳에 자주 온다. 서민들이 막걸리와 고갈비를 먹는 이 골목이 없어지면 안 된다”라고 말했다. 이분처럼 고갈비와 파전을 찾아 골목시장에 오는 단골들은 대부분 서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골목시장에선 어느 가게든 1만 원이 넘는 안주가 드물었다. 둘이서 술과 안주를 먹고도 2만 원이 나오지 않다니…. 큰길 건너 남포동 쪽으로 가면 이 가격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상호는 전집이어도 기본적으로 고갈비를 팔고 있어서 대충 아무집이나 가면 된다. 날씨가 선선해지면서 밖에서 먹기에 좋은 계절이 되었다. 다 가보고 싶었던 열 집 중에 무작위로 들어간 세 집을 간략하게 소개한다. 집집마다 반찬 뿐만이아니라 나오는 고갈비 모양까지 다르다.


충무고갈비. 충무고갈비.

첫 번째로 ‘충무고갈비’에 들어갔다. 상호에 당당하게 들어 있는 ‘고갈비’ 때문이었다. 경범주 대표는 16년 전에 이 자리의 파전집을 인수해 고갈비란 간판을 내걸었다고 했다. 처음에는 “가게도 협소하고 너무 ‘후지니’ 큰 데 가서 취재하라”라고 거절했다. 재래식 화장실뿐이라 여자 손님은 오기 힘들다는 이야기였다. 그 말도 틀리지 않지만 고갈비는 옛날 느낌이 나는 이런 곳이 더 제격이지 않을까 싶었다.

가게 환경을 고려한 덕분인지 가격이 제일 싸다. 계란말이 4000원부터 시작해 파전, 부추전 등 전 종류가 7000원, 고갈비를 비롯해 돼지두루치기, 조기매운탕 등 가장 비싼 안주가 1만 원이다. 고갈비는 노릇노릇하게 구워 돌판 위에 낸다. 경 대표는 “고갈비는 ‘맛봬기’로 반반만 해주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고등어를 반쪽으로 쪼개 뼈 없는 쪽으로 ‘땡초’ 든 양념을 발라 준다는 것이다. ‘반반치킨’은 먹어 봤지만, ‘반반 고갈비’가 있다는 이야기는 이날 처음 들었다.


영진빈대떡의 바삭한 고갈비. 영진빈대떡의 바삭한 고갈비.

두 번째 집이 ‘영진빈대떡’이다. 깔끔하고 넓고 테이블도 많다. 이 동네에서 가장 럭셔리한(?) 집이라고 할까. 단체로 가기에 적당한 집이란 생각이 든다. 고갈비를 굽던 이모님이 “스물대여섯명 와서 먹어봐야 30만 원이 안 나온다”며 “우리 집이 제일 넓은데 넓은 만큼 손님이 없는데 어떻게 생각해?”라고 물었다. 꿈 많던 학창 시절 용두산 공원 아래 고갈비 골목에 많이 먹으러 다녔는데, 지금 여기서 고갈비를 굽고 있다는 푸념도 이어졌다.

밀가루를 살짝 묻혀 고갈비를 굽는 방식이 달라 보였다. 이렇게 하면 생선살이 부서지는 것을 방지하고, 겉은 바삭하게, 살은 부드럽게 만들 수 있다. 비린내 제거에도 도움이 된다는 설명이다. 그 덕분인지 바삭한 고등어에서 프라이드 치킨 같은 느낌이 난다. 민락동에서 포장마차를 오래한 경력에서 나온 한치물회, 대구뽈찜, 병어무침 같은 메뉴도 있다. 1만 3000원하는 황태탕은 5만 원짜리보다 더 맛있다고 자랑한다. 다른 집보다 메뉴당 1000원 정도 비싸지만, 그래도 싸다.



금강파전 실내에 각국 관광객이 남긴 글이 붙어 있다. 금강파전 실내에 각국 관광객이 남긴 글이 붙어 있다.

세 번째로 찾아간 집이 ‘금강파전’이다. ‘특고갈비’라고 입구에 크게 쓴 문구를 보고 들어왔다. 가게 벽면에는 영어, 불어, 일본어 등 외국인 손님들이 남기고 간 글이 빼곡하다. 부산 사람들도 잘 모르는데 외국 관광객들은 용케도 알고 찾아온다. 유튜브 영상을 보고 일본 관광객들이 많이 오는데, 고갈비와 파전뿐만 아니라 알탕도 꼭 시킨단다.

사장님 부부의 포스가 여기서 제일 오래 된 터줏대감 같은데, 알고 보니 지난 3월부터 시작한 신참이다. 이전에는 사하구에서 구내식당을 했다니 음식 솜씨 하나는 믿고 먹어도 좋겠다. 전날 들은 ‘반반 고갈비’가 되느냐고 물으니, 아예 양념장을 줄 테니 발라 잡수라고 대답한다. 그런데 이 집 양념장이 예술이다. 취재에 동행한 지인은 이 집 고갈비를 최고로 쳤다. 이날 손님이 없던 덕분에 메뉴에도 없는 비빔국수를 얻어먹었는데 과연 일품이었다. 사람마다 입맛과 취향은 다른 법이다. 충무동 골목시장에서 자기 입맛에 맞는 고갈비집을 찾는 재미가 꽤 쏠쏠하겠다. 오는 가을이 기다려진다. 글·사진=박종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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