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경륜 기자 takk@busan.com | 2026-09-15 17:07:56
행양수도부산발전협의회 등 부산지역 시민단체들이 지난 7일 부산시의회 브리핑룸에서 부산항만공사, 울산항만공사, 여수광양항만공사, 인천항만공사의 통합 추진 철회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대현 기자 jhyun@
정부가 부산·울산·인천·여수광양 등 4개 항만공사 통합을 밀어붙이면서 지역 시민사회와 정치권의 반발이 확산(부산일보 9월 15일 자 1면 등 보도)하는 가운데, 통합 명분으로 내세운 ‘기능 중복 해소’와 ‘과당경쟁 완화’가 14년 전 정부가 직접 실시한 연구용역에서도 이미 실효성이 낮은 것으로 결론 난 사실이 확인됐다. 당시 보고서는 오히려 효율성이 높은 부산·울산항의 경쟁력이 통합으로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부가 새로운 효과 분석이나 근거를 제시하지 않은 채 과거 결론을 뒤집고 통합을 재추진하면서 ‘졸속 통합’이라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15일 <부산일보>가 국민의힘 조승환 의원(부산 중·영도)을 통해 해양수산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1년 국토해양부가 실시한 ‘항만공사 운영 개선대책 마련을 위한 연구’는 4개 항만공사 통합의 실효성이 낮다고 평가했다. 이 연구는 2010년 이명박 정부 당시 감사원이 기능 중복과 과당경쟁을 이유로 조직 통합을 권고하자 국토해양부가 중앙대 연구진에 용역을 맡겨 통합 가능성을 검토한 것이다.
보고서는 4개 항만공사를 물리적으로 통합할 경우 인력비용 30억 7000만 원, 행정비용 15억 7000만 원, 업무공간 비용 4억 원 등 연간 50억 4000만 원을 절감할 수 있지만, 통합에 필요한 행정력과 제반 비용을 고려하면 “통합 효과가 매우 미미하다”고 결론 내렸다. 연구진은 물리적 통합 대신 정보·교육훈련·마케팅 분야 협력과 정부·항만공사·지자체·전문가가 참여하는 ‘항만공사 조정 협의회’ 운영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특히 부산·울산항은 통합이 오히려 독이 된다고 분석했다. 4개 항만공사를 합친 ‘가상 통합PA’의 효율성은 0.635로 비교 대상 공공기관 평균 0.756에 못 미쳤지만, 부산항만공사와 울산항만공사의 효율성은 각각 1.0으로 기관 평균 0.694를 크게 웃돌았다.
연구진은 “통합이 이뤄지면 오히려 효율성이 높은 PA의 효율성을 하향평준화 시키는 것으로 분석됐다”며 “PA통합 시 부산, 울산의 효율성이 크게 낮아져 부산, 울산항의 항만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고 명시했다. 효율성이 높은 부산·울산항이 다른 항만의 비효율을 떠안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지방분권 측면에서도 부정적인 전망을 내놨다. 보고서는 4개 항만공사를 통합하는 것이 지방화·지역화라는 국가 목표에 역행하고 특화된 항만의 효율성을 저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방정부와의 갈등과 인력 감축에 따른 내부 반발도 통합의 장애요인으로 꼽았다. 이명박 정부는 연구 결과 등을 토대로 통합 정책을 사실상 백지화했다.
그런데도 정부는 14년 전 감사원 지적과 같은 ‘기능 중복 해소·과당경쟁 완화·조직 효율화’를 통합 명분으로 다시 내세우고 있다. 정부가 과거 연구 결과를 뒤집을 새로운 경제성·효율성 분석이나 항만경쟁력 제고 효과를 제시하지 않은 채 통합을 밀어붙이면서 논란을 자초하고 있다. 특히 북극항로 시대를 맞아 국가 항만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정부 기조와도 배치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산·울산·인천 지역 의원들은 전날 기자회견을 열고 통합 철회를 촉구하면서 “통합의 경제성·효율성·항만경쟁력 효과와 지역경제·고용 영향을 투명하게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지역 시민단체와 항만공사 노조에 이어 정치권까지 공동 대응에 나서면서 통합 논란이 지역사회 전반으로 확산하는 양상이다.
조 의원은 “10여 년 전과 지금의 항만 여건이 달라졌다거나 통합으로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근거가 전혀 제시되지 않았다”며 “근거 없는 통합 추진을 명백히 반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