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3-02-27 09:14:31
"우리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해 좋지 않은 기억이 있다. 너희는 어때?(한국 학생)
"우리는 그런 게 없는데…."(호주 학생)
이는 지난 20일 오전 10시부터 40여 분 남짓 부산 연제고 4층 영어전용실에서 '스마트러닝을 통한 청소년 문화교류' 강좌를 받는 고등학교 1, 2학년생 20명이 호주 현지 고등학교 학생들과 원격 화상학습을 하면서 나눈 대화내용이다.
고교생 20명 호주 고교와 화상 연결
음식·언어·역사 등 다양한 주제
원격시스템 이용 실시간 학습 토론
또래 외국학생 곁에 있는 듯 '실감'
처음엔 쭈뼛쭈뼛하다가
시간 흐를수록 자신감 있게 참여
영어 소통 능력 자연스레 향상
상대 문화에 대한 이해폭도 넓혀
화상을 통해 이루어진 이번 강좌는 부산시교육청이 마련한 것으로, 창의·융합교육을 통한 고교생의 창의성 계발 프로그램인 고교 '윈터스쿨'의 일환이다. 이번 강좌엔 고교생들의 영어 사용 능력과 글로벌 인재로서의 역량 강화를 위해 호주 학생과의 실시간 원격 화상대화 방식이 전격 도입됐다.
이날 대화는 '한국 역사'가 주제였다. 한국 학생들이 직접 제작한 영어 자막과 사진이 들어있는 파워포인트 자료가 사전에 미리 호주 측에 전달되었고, 이 자료를 같이 보면서 2명의 한국 학생이 한국의 역사에 대해 영어로 설명하면, 이걸 듣고 호주 학생들이 중간 중간 질문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센텀고 곽민기 군은 단군신화와 일제강점기, 그리고 한국 근·현대사 부분을 설명했고, 학산여고 김정표 양은 삼국시대와 고려, 조선 시대 역사를 개괄적으로 설명했다.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에 대한 간단한 소개도 곁들었다. 곽 군은 단군신화를 발표하고 나서 "우리는 이런 신화가 있는데, 너희 호주에는 이런 유사한 신화가 있는가", 일제 강점기 때 사진을 보여주곤 "어떻게 느꼈느냐"는 질문을 잇달아 던지기도 했다. 뒤이어 김 양이 경주에서 나온 유물을 보여주며 호주 학생들에게 "이게 무엇인지 아느냐"고 질문을 던졌지만, 호주 학생들은 생소한 물건이라 그런지 묵묵부답이었다. 호주 학생들은 "언제 한국 전쟁이 발발했는지" "왜 한국 전쟁이 일어났는지"와 같은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원격 화상이다 보니 '소리 지연'(이야기한 내용이 2~3초 후 들리는 현상)이 가끔씩 있었지만, 영상과 소리의 전달은 전반적으로 아주 매끄러웠다.
이날의 화상 학습은 29인치 크기의 TV화면을 통해 호주-한국 간 원격으로 이루어졌다. 여러 장의 사진과 그에 대한 설명을 통해 한국 역사가 소개되었고, 두 나라 학생들은 화면을 통해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의견을 교환하는 쌍방향 화상학습을 체험했다. 학생들이 중간 중간 말문이 막힐 때는 화상학습을 이끌고 있는 윤혜영 교사와 피터 보너(Peter Bonner) 교사가 조언을 해 줘 대화를 매끄럽게 이어주기도 했다.
곽 군은 "호주 학생들과 이야기를 해보니, 그들이 우리 문화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실제 우리 역사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 같아 아쉬웠다"고 했다. 김 양은 "영어로 말하는 것과 단순히 문제를 푸는 게 다르다는 것을 이번 화상 대화를 통해 깨달았다. 또 직접 호주 학생들과 교류해 보니 여러모로 새로운 자극이 되었고, 영어에 대한 흥미도 생겼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이번 화상학습이 더없는 소중한 경험이었다고 했다.
화상학습은 이날만 이루어진 게 아니었다. 학교장의 추천을 받은 20명의 학생들은 지난 18일부터 22일까지 5일간 연제고에서 '스마트러닝을 통한 청소년 문화교류'라는 제목으로 이루어진 실시간 원격화상시스템을 활용한 강좌에 참여했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한국의 전통음식, 음악, 축제, 언어, 역사, 영화, 의복, 인물 등 우리 문화의 다양한 측면을 호주 중·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소개하면서 학생 상호 간 활발한 문화교류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또한 호주박물관, 미술관, 대학 교수들과 실시간 원격화상시스템을 활용해 강의, 실습, 토론 등의 수업을 들었고, 특히 19일부터 22일까지 4일간 오전에는 미국 휴스턴 미항공우주국(NASA) 교육담당 관계자와의 화상수업도 이뤄졌다.
이번 수업을 위해 학생들과 윤 교사는 한 달 전부터 만나 준비했다. 윤 교사는 "4명씩 5팀을 구성해 조끼리 파워포인트를 만들고 발표 준비를 했다. 심지어 화상학습에 대비, 외국(인)의 시각에서 본 한국 문화 자료까지 학생들이 일일이 번역해 공부했다"고 말했다. 이런 준비과정을 통해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영어 의사소통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었고, 대화와 소통을 통해 서로 이해의 장을 넓힌 셈이다.
호주 학생, 호주 박물관 등과 연결된 화상학습은 호주 UNE 대학(University of New England) 오명숙 교수의 도움이 컸다. 부산시교육청과 오 교수가 연결돼 호주-한국 간 화상학습 -일명 AKC(Australia-Korea Connection)프로그램- 이 이뤄지게 됐기 때문이다. 호주는 광활한 대륙에 띄엄띄엄 있는 학교들의 교육격차를 해소하는 데 온라인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화상회의에 필요한 장비는 글로벌 통신장비업체인 시스코(CISCO)의 도움을 받았다.
이번 화상학습에 참가했던 한 학생은 "외국인과 만난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했는데, 막상 해보니까 실감이 났다. 비슷한 또래 외국 학생과 접촉해, 이야기하며 웃고 서로 반응한다는 게 너무 좋았다"고 했다.
윤 교사는 "처음엔 다소 소극적이었던 학생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영어에 대해 자신감을 갖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이 좋았다"고 전했다.
스마트교육과 국제교육을 효과적으로 연계한 이번 프로그램은 학생들에게 영어 구사능력에 대한 자신감과 발표 능력의 함양뿐만 아니라, 해외현지 문화에 대한 생생한 이해를 통해 교실이라는 작은 공간 속에서도 세계를 향한 글로벌 마인드를 얼마든지 키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가 됐다.
한편, 부산시교육청에서는 이번 프로그램을 계기로 원격화상시스템이 확대되면 호주뿐만 아니라, 일본, 싱가포르, 중국과의 교육과정 교류 프로그램 운영과 해외 현지학교와의 자매결연을 활성화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외국뿐만 아니라 국내의 학교 및 다양한 교육기관과의 다자간 화상학습도 추진해 나갈 방침이다.
정달식 기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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