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희문 기자 moonsla@busan.com | 2025-04-24 20:00:00
부산 수영구 남천동 삼익비치아파트(이하 삼익비치)에 나흘간 대규모 정전이 발생한 사건(부산일보 4월 24일자 2면 보도)을 두고 재건축 연한이 도래한 노후 아파트의 부실한 관리 시스템이 부른 참사라는 비판이 나온다.
삼익비치를 비롯한 인근 노후 아파트 주민들은 “곧 재건축이 될 것이라는 명분으로 건물 관리를 등한시하며 장기수선충당금 등 유지·보수 예산을 아끼려는 관행이 이번 사태를 초래했다”고 지적한다.
24일 한국전력 부산울산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0시 45분께 삼익비치 응급 전기 복구 공사가 완료돼 전력 공급이 임시로 재개됐다. 삼익비치 관리사무소 측은 이번 주 내로 정전 당시 화재가 발생했던 보조변전실과 임시공사 구간 정리를 마무리한 뒤, 이르면 다음 주 초부터 본격적인 복구 공사에 돌입한다는 계획이다.
삼익비치 아파트의 경우 지난해에도 1개 동 대부분 세대에서 보일러 온수 파이프 부식으로 인한 고장을 겪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일대 재건축 연한이 도래한 단지들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삼익비치 주변으로는 준공 40년 차 안팎의 뉴비치, 남천파크 등 4개 단지 1400여 세대가 밀집해 있다. 이들 단지 역시 급수관·난방 설비 노후화 등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건축을 앞둔 아파트는 예산 절감 차원에서 최소한의 수리·보강 작업조차 뒤로 미뤄지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특히 이들 노후 단지의 경우 저렴한 전세를 찾아온 세입자들이 많아, 집주인에게 아파트 시설 문제를 크게 요구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남천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전세보증금이 낮은 대신 관리비나 유지·보수 책임에 민감하지 않은 세입자가 대부분이어서, 누수나 냉난방 고장 같은 문제가 발생해도 적극적으로 개선을 요구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노후 단지 유지·보수 체계의 가장 큰 허점은 예산 집행에 대한 통제와 책임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장기수선충당금이 마련돼 있다 해도, 예산 적립·사용 내역을 구청 등에 별도 신고할 의무가 없다. 입주자대표회의가 불필요하다는 결정을 내리면 예산 집행은 사실상 무기한 보류되는 셈이다.
관할 구청이나 소방서 등 공공기관 차원의 노후 아파트 시설 관리 시스템 부재도 문제로 지적된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이은형 연구위원은 “이번 정전 사태는 단순한 전력 사고를 넘어, 노후 아파트의 설비 인프라 투자 미흡과 공공 대응 체계의 빈틈이 동시에 드러난 사례”라며 “관청의 관여와 개입 등을 통해 정기 점검 체계를 마련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