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규환 부산닷컴 기자 bastion@busan.com | 2020-06-23 16:10:05
과거 '음주 운전 뺑소니'로 물의를 일으킨 뒤 최근 국내 프로야구 복귀를 추진해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는 전 메이저리거 강정호(33)가 "야구할 기회를 달라"고 호소하며 고개를 숙였다.
강정호는 23일 오후 2시 서울 상암동 스탠포드호텔 그랜드 볼룸에서 사과 기자회견을 열고 "내 잘못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있다. 어떤 말로도 죄를 씻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라며 "내가 한국에서 야구할 자격이 있는지 여러 번 생각했다. 그래도 정말 반성하는 모습을 야구팬들께 보여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일으킨 3차례 음주운전 사고로 메이저리그 커리어를 스스로 망친 강정호는 KBO리그 복귀 의사를 밝히며 지난 5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한국에 들어왔다. 코로나19 감염 대비 조치에 따라 별도의 인터뷰 없이 귀국 즉시 2주 자가격리에 들어간 그는 19일 자가격리에서 해제됐고, 음주운전 사고 후 처음으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기자회견장에 들어선 강정호는 허리를 90도로 숙여 인사한 뒤 "말주변이 없어서 사과문을 미리 준비했다"고 취재진에 양해를 먼저 구했다. 그는 사과문을 통해 "내 잘못을 진심으로 반성하고 사과한다. 어떤 사과도 부족하다는 걸 알지만 정말 죄송하다"며 "2009년과 2011년 음주운전을 하다 적발돼 벌금형을 받고 면허가 취소됐을 때 무지하게도 '밖에 알려지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해 구단에도 알리지 않았다. 2016년 12월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숙소로 바로 간 행동을 보였다.정말 나쁜 행동이었고 해서는 안 될 행동으로 변명의 여지가 없는 큰 잘못이다"라고 과거의 잘못을 떠올렸다.
이어 "제 잘못된 행동을 보고 실망한 팬들, 특히 야구를 좋아하는 청소년들께 엎드려 사과한다. 나 때문에 음주운전 사고 기억을 떠올려야 하는 음주운전 피해자들께도 사과드린다. 야구 팬 및 국민들의 기대를 저버렸다. 이 자리에 서서 사과하는 시점도 늦었다.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늘 빚을 진 마음이 있었다. 자신에게도 가족에게도 떳떳하지 못했다.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하고도 '야구장에서 실력으로 보여드리면 된다'고 잘못 생각한 적도 있었다"고 사과했다. 또한 그는 "공인으로서의 삶을 인지하지 못하고, 제 자신만 생각하고 살아온 모습을 후회한다"며 "지난 몇 년간 스스로와 주변 사람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고 부연했다.
강정호는 "2018년부터 나는 미국 메이저리그 음주 프로그램을 이행했고, 4년째 금주 중이다. 앞으로도 금주를 이어가는 게 목표다"라고 고백하며 "지난 잘못을 용서받기에 부족하지만 KBO 관계자들과 팬들에게 속죄하고 싶다"고 호소했다. 이어 그는 "제 모든 것을 포기하고 바칠 각오가 돼 있다. 쏟아질 비난은 감수해야 한다"며 "구단이 나를 받아주시면, 첫해 연봉 전액을 음주운전 피해자에게 기부하겠다. 음주운전 캠페인에 꾸준히 참석할 것이며 기부 활동도 지속해서 하겠다. 은퇴할 때까지 유소년 야구를 위해 재능 기부를 할 것이다. 음주운전을 하면 피해자는 물론이고, 운전자 자신도 어떻게 되는지 알리며 살겠다"고 거듭 약속했다.
지난 2006년 히어로즈 유니폼을 입고 KBO리그에 데뷔한 강정호는 2014년까지 한 팀에서만 뛰었다. 2015년 포스팅시스템(비공개 경쟁입찰)을 거쳐 미국프로야구 피츠버그 파이리츠로 이적한 강정호는 2016년 12월 서울에서 음주운전 뺑소니 사고를 일으켰다. 여기에 2009년과 2011년 두 차례나 더 음주운전을 한 사실이 추가로 드러났다. 강정호에게 '삼진 아웃제'가 적용됐고, 법원은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그 탓에 미국 취업비자 취득을 거부당한 강정호는 거의 2년의 공백기를 가져야 했다. 강정호는 지난해 피츠버그와 재계약을 맺고 메이저리그에 복귀했지만, 예전 기량을 회복하지 못하고 시즌 도중 방출됐다.
메이저리그 재진입마저 여의치 않게 된 강정호는 KBO로 시선을 돌려 지난달 20일 임의탈퇴 복귀 신청서를 제출했다. 이에 KBO는 같은달 25일 상벌위원회를 열고 강정호에게 1년 유기실격 및 봉사활동 300시간의 징계를 내렸다. 규정상으로는 음주운전 3회 적발 선수에게는 3년간 자격정지의 징계를 내려야 하지만 강정호의 3차례 음주운전이 모두 규정이 강화되기 전이라 소급 적용이 어렵다고 상벌위는 판단했다. 예상보다 낮은 징계에 야구팬들은 강한 성토와 비판을 쏟아냈고, 강정호의 국내 복귀 시 보류권을 보유한 키움 히어로즈도 "기자회견 이후 무언가를 논의할 수 있다"는 신중한 입장만 밝힌 채 여론의 추이를 지켜보는 상황이다.
성규환 부산닷컴 기자 bastio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