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빠지면 헤어나기 힘든 ‘골동의 세계’

SNS 활동하는 젊은 수집가
골동의 매력 쉽고 재밌게 소개
수리와 전용의 미덕까지 함께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2024-10-24 10:11:18

우리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말총 갓에 철릭 복장을 하고 한옥에 모여 ‘대모계’를 하고 있다. 김정준 제공 우리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말총 갓에 철릭 복장을 하고 한옥에 모여 ‘대모계’를 하고 있다. 김정준 제공

■골동골동한 나날/박영빈

자신을 ‘골동 오타쿠’ 혹은 ‘프로 골동러’라고 해서 나이가 꽤 지긋할 걸로 생각했다. 뜻밖에도 글이 통통 튀고 주 활동무대도 SNS다. ‘당장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책상엔 원나라 때의 백자 향로, 민국(중화민국) 시기의 대나무 필통, 조선 말기에 제기로 만들어진 나무 향합이 노트북 옆으로 놓여 있다.’ 어떤 분인가 갑자기 궁금해 다시 책 표지로 돌아가 저자의 프로필을 살폈다. 영화 ‘음란서생’에 나옴 직한 젊은 선비가 말총으로 만든 방건을 쓰고 있다. 방건은 조선말~일제강점기 유물이고, 탕건과 망건은 현대에 천으로 만든 것이라는 설명은 뒤에 저자로부터 전해 들었다.

<골동골동한 나날>의 저자는 평소에도 한복을 즐겨 입는다. 유유상종이라고 비슷한 분들끼리 말총 갓에 철릭을 입고 한옥에 모여 사진을 찍고 놀기도 하는 모양이다. 글을 쓰거나 음악을 듣다가 문득 방 여기저기에 놓인 골동품을 집어 들고 ‘골동멍’을 때린다. 아는 골동집에 귀한 물건이 들어왔다는 소식을 들으면 득달같이 달려간다. 골동에 진심이었다.

골동이란 무엇인가? 저자의 기준으로 100년 이상은 골동, 30년에서 50년 이상은 빈티지다. 그 이하는 그냥 다 ‘신작’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알고 보니 골동품 수집과 감상은 역사가 꽤나 깊은 취미 장르였다. 이미 당이나 송대에 고미술에 관한 감정론이나 감상법을 설명하는 글이 나온다.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에는 어떻게 가짜 골동품을 만드는지 상세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그 당시에도 심지어 한쪽 귀를 떼고, 일부러 흠집을 내기도 했다.


<골동골동한 나날>의 저자 박영빈 씨. 김정준 제공 <골동골동한 나날>의 저자 박영빈 씨. 김정준 제공

박제가는 <백화보서>라는 글에서 ‘사람이 벽(癖)이 없으면 쓸모없는 사람이다’라고 말했지만, 골동품 수집벽은 자칫 파산으로 몰고 갈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생활 속에서 실사용할 수 없으면 들이지 않는다’는 저자의 철학은 실용적이다. 조선을 사랑한 일본인 아사카와 다쿠미는 ‘사용자는 어떤 의미에서는 미의 완성자라고 할 수 있다’라고 멋진 말을 했다. 골동의 취미는 옛것을 이어서 사용하는 매력, 아름다운 것을 곁에 두는 삶으로 이어진다.

골동을 하다 보면 진위를 가리는 눈이 생기고, 또 어쩌다 도난품도 만나게 된다. 책에는 흥미로운 일화가 하나 소개되어 있다. 오래전에 사찰에서 도난당한 탱화가 미술품 경매에 올라오는 일이 있었다. 사찰에서도 알고 있었지만 CCTV도 없던 시절이라 도난 사실을 입증하기도 어려웠다. 저자가 SNS 펀딩을 해서 마련한 750만 원에 탱화를 낙찰받았다고 한다. 탱화 뒷면에 환수하게 된 내력과 기부한 사람의 이름들을 붙여서, 원래 있던 사찰로 돌려줬다. 그야말로 ‘골동 덕후 만세!’다.

그렇다고 무작정 진품, 옛것만을 고집하지는 않는다. 보기 드문 부채인 죽피선(竹皮扇)을 구하자 부분 수리를 감행한다. 어떤 이들은 불완전한 것은 불완전한 대로의 맛이 있으니 그냥 두어도 좋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본래의 옛 모습과 새롭게 수리된 부분이 어우러지는 조화의 미가 또 새로운 작품으로 다가온다.

본래가 아닌 다른 용도로 쓰는 ‘전용(轉用)’의 자세 또한 눈여겨볼 만하다. 별로 쓸 일이 없는 벼루를 찻주전자 받침인 ‘호승(壺承)’으로 사용하는 것이 그 예다. 겉으로 보이는 아름다움보다는 그 물건에 깃든 의미와 진리를 추구하면 그만이다.

어려운 골동 이야기를 쉽고 재미있게 쓰는 글솜씨가 돋보이는 책이다. 저자가 부산 출신이고 지금도 부산에도 자주 오는 덕분에 부산에서 믿고 갈만한 골동집 이야기도 나와서 더 요긴하다. 이제 골동집 순례를 하면 그동안 무심하게 봤던 것들이 말을 걸어올 것만 같다. 그래서 알게 되면 참으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면 참되게 보게 된다고 말을 하는 모양이다.

우리의 갓은 영화 ‘킹덤’ 등을 통해 알려지며 외국에서도 인기 아이템이 되었다. 하지만 갓은 몇 년 사이에 값이 두세 배는 뛰었다고 한다. 갓을 만드는 무형문화재 선생이 전국에 두 분밖에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동글동글 굴러서 쏙 안기는 느낌. ‘골동’이라는 단어의 울림까지 좋아지진다. 이러다 빠지면 안 되는데…. 박영빈 지음/문학수첩/352쪽/1만 7000원.



<골동골동한 나날> 표지. <골동골동한 나날>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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