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호 기자 rplkim@busan.com | 2024-11-24 18:10:53
한국 증시가 연일 몸살을 앓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연일 ‘셀(SELL)코리아’를 외치며 떠나고, 그나마 증시를 뒷받침했던 개인투자자들마저 이제는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재선 이후 뜨거워진 가상화폐 시장도 한국 증시의 활력을 빼놓는 요인으로 급부상했다.
24일 금융투자업권에 따르면 올해 초만 해도 하루 평균 22조~23조 원대에 달했던 주식 거래대금이 최근 15조~16조 원대까지 추락했다. 주식 거래 대금이 감소했다는 것은 시장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이 약해졌다는 것을 뜻한다.
증시 약세의 가장 주된 원인은 ‘큰 손’인 외국인 투자자들의 외면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외국인 주식투자자금은 지난 8월부터 10월까지 석달 연속 순유출됐다. 석 달간 순유출 금액은 약 115억 9000만 달러로, 10월 말 원·달러 환율(1379.9원) 기준 약 15조 9930억 원에 달한다.
외국인 증권투자자금이 빠져나간 데는 글로벌 인공지능(AI) 산업 성장 불확실성, 국내 반도체 기업 전망 우려 등이 작용했다.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당선 이후 ‘트럼프 트레이드’가 계속된 영향도 크다. 트럼프가 관세 장벽 강화와 대규모 감세 정책을 예상한 강달러 현상에 외국인 자금이 국내증시에서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 이달 들어 18일까지 1조 9300억 원을 순매도했다.
반면 국내 증시에 실망한 이른바 ‘서학개미’(미국주식에 투자하는 국내 투자자)의 해외증권투자는 날로 급증하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 21일 기준 미국 주식 보관금액은 1037억 4900만 달러로 지난 1월(646억 9300만 달러) 대비 60.37% 급증했다. 트럼프 당선으로 미국 우선주의가 더욱 강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며 국내 투자자들은 꾸준히 미국 증시로 향하고 있다.
국내 증시에 대한 개인 투자자들의 외면은 신용융자 잔고로도 확인할 수 있다. 신용 융자 잔고는 통상 개인 투자자가 향후 주가가 오를 것이라고 예상하고, 증권사에서 돈을 빌려 주식을 매수한 금액을 말한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20일 기준 신용 융자 잔고는 16조 6921억 원으로 올해 들어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주목을 받고 있는 가상화폐 시장의 열풍도 국내 증시의 매력을 떨어뜨리는 요인 중 하나다. 국내 5대 가상화폐 거래소의 24시간 총 거래대금은 이미 코스피와 코스닥을 합친 금액을 훌쩍 뛰어넘을 정도로 커진 상태다.
특히 이른바 ‘밈 코인’으로 불리는 도지코인의 시가총액은 국내 대표 기업 중 하나인 현대자동차의 두 배가 넘는 수준까지 치솟은 상태다.
상태가 이렇다 보니 우리나라 증시의 성적표는 암울한 수준이다. 코스피는 작년 말 2655.28(종가 기준)에서 지난 22일 기준 2501.24로 5.8% 떨어졌다. 특히 코스닥의 하락률은 21.87%(866.57→677.01)에 이른다. 주요국 주가지수 가운데 올해 뒷걸음친 경우는 우리나라를 빼고는 찾기 어렵다. 미국 3대 주가지수 중 나스닥종합지수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은 모두 20% 넘게 뛰었고,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도 상승률이 두 자릿수다. 우리나라와 경쟁 관계인 중국·대만권의 상하이종합지수·홍콩항셍지수·대만가권지수 역시 모두 두 자릿수 상승률을 나타냈다.
하나증권 이경수 연구원은 “한국 증시는 시장 내 비중이 큰 IT업종의 모멘텀이 좋지 않고 펀더멜털에 대한 우려가 계속 반영이 되고 있다”며 “업종 비중의 불균형과 편중이 심했던 만큼 타격이 더 큰 상황”이라고 말했다. 흥국증권 이영원 연구원도 “주력 산업인 수출업종들이 보호무역주의로 입을 피해에 대한 우려가 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