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창훈 기자 jch@busan.com | 2024-11-24 17:14:40
모처럼 찾아온 정국 반전의 호기를 놓칠 수 있다는 당 안팎의 우려에도 ‘당원 게시판’ 논란을 둘러싼 국민의힘 내 계파 갈등이 악화일로다. 한동훈 대표를 향한 해명 요구에 가세한 친윤(친윤석열)계 의원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고, 이에 친한(친한동훈)계는 “당 내부에 ‘한동훈 죽이기’ 집단이 있다”고 거칠게 반발하는 등 양측이 정면충돌 양상까지 보이는 상황이다. 한 대표는 직접 언급을 피한 채 정책 행보를 이어가고 있지만, 당내 다수인 관망파 중에서도 한 대표의 태도에 비판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어 다른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친윤계는 전날 당 법률자문위원회가 한 대표와 가족들 이름으로 작성된 게시글 1068건을 전수 조사해 이 중 수위가 높은 욕설·비방글은 12건에 불과하다는 결과를 언론 등에 공개한 것에 격앙했다. 한 대표 측이 직접 해명 대신 당 조직을 동원해 사안을 ‘마사지’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김은혜 의원은 24일 페이스북에 이 결과를 거론하며 “그래서 가족이 썼다는 건가, 안 썼다는 건가”라며 “매사에 똑부러진 한동훈 대표는 대체 어디로 간 것인가”라고 한 대표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이어 “누가 당 대표와 대표 가족 이름을 빌어 차마 옮기기 민망한 글을 썼는지 손쉬운 확인을 회피하며 명색이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이 2주 넘게 갈팡질팡하고 있다”면서 “해결은 간명하다. ‘가족이 아니라면 도용을 조치하겠다’, ‘(맞다면)당 대표로서 사과하고 책임질 일이 있으면 책임지면 되는 것’”이라고 했다. 김 의원은 윤석열 당선인 대변인, 대통령실 국정홍보수석을 거친 윤 대통령의 최측근이다. 김 의원이 당내 계파 논쟁에 가세한 건 이례적인 모습이다.
며칠 전 한 대표에게 당무감사를 요구한 김기현 의원 역시 재차 페이스북 글을 통해 “(한 대표가)많은 당원들과 국민들이 의아해하고 있는 당원 게시판 사안에 관해 당당하게 밝히고 숨김없이 당원과 국민께 알려드리는 것이 ‘오천만의 언어’”라며 “그 게시판 내용에 문제가 없다면, 당당하지 못할 이유가 더더욱 없지 않냐”고 지적했다.
친윤계의 공세가 거세지자 친한계는 “‘당게(당원게시판) 소동’은 ‘제2의 읽씹’(읽고 답하지 않음) 논란”이라며 친윤계의 고의적인 ‘한동훈 죽이기’라고 맞섰다. 지난 전당대회 당시 김건희 여사의 문자에 한 대표가 응답하지 않은 사실을 친윤계가 쟁점화 일을 거론한 것이다.
신지호 전략기획부총장은 이날 페이스북 글에서 당게 논란에 대해 ‘외부 인사의 문제 제기→한동훈의 침묵→당내 논란 확산→한동훈의 최소 대응’이라는 전당대회 읽씹 논란과 패턴이 똑같다면서 “‘영부인이 문자 보냈는데 어떻게 씹을 수 있느냐’, ‘어떻게 가족들까지 동원해 대통령 부부 비방 글을 올리느냐’라는 감성팔이 접근도 똑같다”고 비판했다. 신 부총장은 특히 “읽씹이든 당게든 물불 가리지 않고 한동훈 죽이기에 혈안이 돼 있는 일군의 집단이 실재한다”며 “당 밖 사이비 보수집단의 정치적 분탕질에 부화뇌동하는 당내 인사가 있다”고 일부 친윤계를 겨냥했다.
이와 관련, 당게 논란에서 한 발 떨어져 있는 한 대표는 이달 말 이후 다시 한번 여권의 ‘쇄신 드라이브’를 걸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7일 윤석열 대통령의 담화 이후 윤 대통령 부부를 향한 촉구성 발언을 자제해 온 한 대표는 최근 대통령실과 내각의 인적 개편 상황을 예의주시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정치적 쇄신과 함께 민생 정책 행보를 강화해 이재명 대표 사법리스크에 따른 반사이익을 극대화하고, 김 여사 특검법 반대로 비롯되는 부정적 여론을 최소화하겠다는 게 한 대표의 복안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쇄신 행보가 탄력을 받으려면 한 대표가 이번 당게 논란을 깔끔하게 매듭지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여권 관계자는 “소모적이지만 이번 갈등이 장기화할 경우 한 대표의 쇄신·민생 행보 동력도 떨어질 수 있다”며 “친윤계의 ‘의도’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적지 않지만, 이전과 다른 한 대표의 대응에 대한 불만도 늘어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