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 2024-12-11 10:58:35
“박태원 조각가 전시는 꼭 가야 하는데….” “박태원 작가 전시 보고 왔어요?”
최근 부산 미술계를 취재하며 자주 듣는 말이다. 지역 미술계에 박 작가가 가진 대단한 존재감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박 작가는 작품적으로도, 인간적으로도 지역 미술인들이 많이 따르는 작가이다. 2019년 부산미술협회 이사장으로 당선되면서 4년간 부산 미술인과 현장을 위해 봉사를 많이 했고, 박 작가의 도움을 받은 지역 작가가 적지 않다. 미협의 행사와 수상 제도를 혁신하고 지역 작가를 위한 기부금도 확보해 미협 활동 폭도 넓혔다. 부산미협 이사장으로서 워낙 일을 잘한 터라 자신을 행정 일을 하는 사람으로 오해하는 이들도 있단다. 그러나 박 작가는 어릴 때부터 시작된 조각을 평생 잡고 온 전업 작가이다.
“미협 이사장을 하는 4년간은 개인 전시나 활동은 일절 하지 않았습니다. 미협에 봉사하기로 나섰으니 저 혼자 손해를 보더라도 제대로 하자고 마음먹었죠. 공공미술 분야에서도 제 조각을 활용하고 싶다는 제의도 많았고 전시에 대한 제안도 있었지만 다 거절했어요. 4년간 수익은 제로였습니다.”
도자기를 만들었던 부모님 덕분에 박 작가는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미술과 친해졌다. 부지런하고 성실한 성격은 타고났다. 학창 시절 내내 자신이 학교 문을 열 정도로 가장 먼저 등교했고, 예순 살이 넘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작업실에 아침 6시면 도착한다. 조용한 새벽, 맑은 정신으로 작업을 시작하는 게 좋았다. 작업실에 있어야 연필이라도 한 번 더 긋고 망치라도 더 두드려 본다고 생각했다. 치열하게 작업한 덕분에 그의 양산 작업실에는 지금도 200점이 넘는 작품이 있다. 공공미술 작가로도 인기 있고 아트페어나 전시를 열면 잘 팔리는 작가인데도 워낙 작업량이 많다 보니 누구보다 많은 작품을 가지고 있게 됐다.
부산 해운대구 갤러리 조이에서 진행 중인 박 작가의 ‘피어나다’ 전시는 5년 만에 여는 개인전이다. 4년의 미협 이사장을 끝내고 다시 작업에 몰두한 결과물이다. 원래도 진지하고 치열한 작가지만, 오랜만에 돌아온 현장에 대한 열정까지 더해져 박 작가 특유의 조형미에 재미있는 시도들도 만날 수 있다.
‘결실’ 시리즈는 만개한 꽃이 돌의 중간에 박혀있다. 말풍선 같은 형태를 지닌 대리석에도 브론즈 꽃이 피었고, 화강암이나 자연석에 핀 꽃 조각도 있다. 말풍선은 희망 혹은 긍정적인 생각을 뜻하고 꽃이 핀 것은 결실을 보거나 생각이 만개한 것을 의미한다. 작가는 꿈과 희망을 이루었을 때 결실을 조각한다고 설명했다.
‘사랑’ 시리즈는 입술의 실루엣을 곡선으로 표현했다. 두 손가락의 만남을 표현한 ‘대화’ 시리즈는 두 남녀의 입맞춤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랑, 대화, 염원 등 작가의 조각 작품은 실체가 없는 추상적인 개념을 구체적인 대상으로 보여준다. 추상적인 개념을 시각적이며 촉각적이고 3차원적 입체형상으로 선명하게 드러낸 박 작가의 조각 솜씨는 같은 미술판의 작가들이 인정한다.
“흙 나무 돌 브론즈 대리석 스테인리스스틸 등 소재를 다루는 건 그 어떤 조각가보다 잘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누구보다 많이 반복해서 실험했고 고집스럽게 작품에 매달리다 보니 재료를 보면 그 안에 어떤 게 숨어있는지 느껴지고 보일 정도가 됐죠. 모눈종이에 정밀하게 조각의 스케치를 할 정도로 자신 있습니다.”
박 작가의 손을 거쳐 보이지 않는 것들이 새로운 미학과 조형 언어로 변신하고 있다. 박태원 작가의 전시는 15일까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