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 위 예술가’ 국가대표 서핑팀 감독이 갤러리 연 사연은…

■유니온 갤러리 송민 디렉터
기장 내리 마을에서 갤러리 열고
서핑 아티스트 토마스 캠벨 전시
“서핑에 대한 인식 달라졌으면”

김은영 기자 key66@busan.com 2025-06-10 09:00:00

최근 부산 기장군 기장읍 내리에서 문을 연 유니온 갤러리 디렉터인 송민 국가대표 서핑팀 감독이 토마스 캠벨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김은영 기자 최근 부산 기장군 기장읍 내리에서 문을 연 유니온 갤러리 디렉터인 송민 국가대표 서핑팀 감독이 토마스 캠벨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김은영 기자
토마스 캠벨-Kook in, Kook out 전시 포스터. 유니온 갤러리 제공 토마스 캠벨-Kook in, Kook out 전시 포스터. 유니온 갤러리 제공

“우리는 서퍼이지만, 동시에 파도 위에서 춤추는, 감정을 그리는 예술가이기도 합니다. 이 전시가 우리 세대, 그리고 다음 세대 서퍼들에게도 ‘파도를 타는 삶’이 예술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로 남기를 바랍니다.”

부산 기장군 기장읍 내리1길의 옛 카센터를 개조해 문을 연 ‘유니온 갤러리’에서 만난 송민 디렉터는 뜻밖에도 서핑 예찬론을 폈다. 게다가 그는 국가대표 서핑팀 감독을 맡고 있다고 밝혔다. 서핑팀 감독 직함 외에도 2020·2024 도쿄·파리 올림픽 KBS 해설위원, 명지대 미래교육원 지도교수, 연세대 스포츠응용산업학과 석사과정 학생, 케이에스에스엘(주) 대표, ‘서핑 읽어주는 남자’를 운영하는 유튜버이기도 하다. 여기다 갤러리 운영자를 추가했다. 직함은 여러 개이지만, 알고 보면 대부분 서핑과 연관된 일이다. 그가 부산에 둥지를 튼 사연도 궁금했다.

“서핑이 좋아서 부산을 선택했어요. 2008년 호주 시드니에서 귀국해서 17년째 살고 있는데, 태어난 도시보다 더 사랑하게 됐죠.”

그는 서울에서 태어나 대학에 다니다 1년이 채 안 돼 군대를 갔고, 제대 후엔 대학에 복학하지 않고 곧장 유학길에 오른다. 바다가 있는 도시에 살고 싶어서 시드니를 선택했고, 1년간 어학연수를 하면서 서핑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됐다. 그다음에는 호주에서 눌러 앉고 싶더란다.

“영주권을 얻을 수 있다고 해서 시드니공대(UTS)에서 회계학을 전공했는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스포츠 매니지먼트를 복수로 전공했습니다. 호주에서 많은 서퍼와 교류하면서 한국서도 서핑을 할 수 있고, 한국말로 대화할 수 있는 곳이 부산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 부산까지 오게 됐습니다.”

그런데 갤러리는 왜 갑자기 열게 되었을까. “이번 개관전은 단지 어떤 작가를 소개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온 시간과 서핑을 바라보는 태도, 그리고 예술이라는 렌즈로 세상을 해석해 온 방식을 함께 공유하는 자리입니다. 토마스 캠벨과 레이 바비와 함께 이 여정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 참 감사하고 벅찹니다.”

토마스 캠벨의 'Growth plate #4736'(2025). 김은영 기자 토마스 캠벨의 'Growth plate #4736'(2025). 김은영 기자
유니온 갤러리 송민 디렉터가 토마스 캠벨의 'Growth plate' 작품 '리버스 디테일'을 설명하고 있다. 김은영 기자 유니온 갤러리 송민 디렉터가 토마스 캠벨의 'Growth plate' 작품 '리버스 디테일'을 설명하고 있다. 김은영 기자

지난달 31일부터 7월 31일까지 유니온 갤러리 개관 기념으로 여는 첫 전시의 주인공은 미국의 대표적인 서핑 아티스트 캠벨이다. 캠벨은 회화, 드로잉, 조각, 사진, 영상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드는 다재다능한 예술가이자 영화 감독으로, 서핑을 단지 스포츠가 아닌 예술적 행위와 삶의 태도로 확장한 인물이다. 그의 첫 번째 장편 서핑 영화인 ‘The Seedling’은 1999년 개봉되었고, 두 번째 작품은 2004년 개봉된 ‘Sprout’이고, 세 번째 서핑 영화인 ‘The Present’는 2009년 개봉됐다.

토마스 캠벨의 'Recycled swallowtail sleds'(2025). 김은영 기자 토마스 캠벨의 'Recycled swallowtail sleds'(2025). 김은영 기자
토마스 캠벨의 'Framed Sewn Flowers'(2025). 김은영 기자 토마스 캠벨의 'Framed Sewn Flowers'(2025). 김은영 기자

​부산에선 처음 소개되는 이번 전시는 캠벨 작가의 시각적 언어뿐 아니라 그의 창작 세계 전반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전시 제목 ‘KOOK IN, KOOK OUT’은 서핑 용어인 ‘Kook’(초보자)을 캠벨 특유의 유머와 철학으로 비튼 표현으로, 중심과 비주류, 규범과 자유의 경계를 유연하게 풀어낸다는 의미라고 송 디렉터는 전했다.

개관 기념 오프닝 리셉션에는 캠벨뿐 아니라 그의 절친한 친구로 유명한 스케이터이자 뮤지션 그리고 포토그래퍼로도 잘 알려진 바비가 함께했다. 캠벨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바비는 LA에서 날아왔다. 바비는 특유의 재즈와 포크 감성의 기타 연주로 국내에서도 팬층이 두터운 인물이다. 공연은 전시장 내 특별 공간에서 두 차례 진행하면서 부산의 젊은이들과 함께했다.

“캠벨은 저희가 감히 부를 수 없는 작가인데, 무작정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한국, 부산에서 갤러리를 여는 의미를 설명했지요. 우리가 갤러리를 여는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분이라고 생각했지만, 너무나 흔쾌히 전시하겠다고 해서 저희도 깜짝 놀랐습니다. 준비 기간은 두 달밖에 안 걸렸지만, 부산에 맞춘 전시입니다.”

토마스 캠벨의 'Wading'(2025). 김은영 기자 토마스 캠벨의 'Wading'(2025). 김은영 기자
토마스 캠벨의 'Sing Ding Aling'(2024). 김은영 기자 토마스 캠벨의 'Sing Ding Aling'(2024). 김은영 기자

나중에 알고 보니 캠벨은 이메일을 받은 뒤 거기에 언급된 송 디렉터의 서핑 스승 톰 와그너(호주)에 직접 연락을 취했고, 그 후 일사천리로 전시를 진행하게 되었다. 사실, 송 디렉터는 서핑 문화 확산 차원에서 갤러리를 열 생각을 했지만, 관련 지식은 부족했다. 그래서 서울의 유명 갤러리 A 대표의 도움을 받았다. A 대표도 “판매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라고 이야기하면서도 도움을 줬고, 급기야는 서울 전시라도 추가해서 판매를 도울까 싶었지만, 캠벨 작가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는 후문이다. “서울 전시를 하면 판매는 더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번 전시는 철저하게 부산이라는 서핑 도시에 맞춘 전시여서 취지에 맞지 않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대신, 부산 전시를 애초 이달 29일까지에서 한 달 더 늘린 7월 31일까지로 연장했다.

부산 기장군 기장읍 유니온 갤러리 개관 기념 '토마스 캠벨-Kook in, Kook out' 전시를 앞두고 작업 중인 작가 모습 영상. 김은영 기자 부산 기장군 기장읍 유니온 갤러리 개관 기념 '토마스 캠벨-Kook in, Kook out' 전시를 앞두고 작업 중인 작가 모습 영상. 김은영 기자

“우리 갤러리는 사전적 의미의 갤러리뿐 아니라, 그동안 해 왔던 일, 지금 하고 있는 일, 앞으로 할 일을 아카이빙 해서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당장 다음 전시가 정해진 건 아니지만, 언젠가는 숀 스투시(1954년생) 전시를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젊은 친구들이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이 많이 생겨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송 디렉터는 2017년부터 국가대표 서핑팀 감독을 맡고 있으며, 1년에 서너 차례 국제대회에도 이들을 데리고 출전한다. 서핑이 많이 대중화되었다고는 해도 여전히 외국만큼은 아니어서 선수층이 얕고, 좋은 성적을 내는 단계는 아니어서 힘든 면도 없지 않다. 특히 지난해까지는 100% 자비로 국제대회에 출전했다면, 올해는 대한서핑협회가 대한체육회 준회원 단체로 등록돼 그나마 일부 지원을 받고 있다. (주)배럴도 스폰서 기업으로 나서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들려주고 싶은 말을 물었다.

부산 기장군 기장읍 유니온 갤러리 개관 기념 '토마스 캠벨-Kook in, Kook out' 전시 전경. 김은영 기자 부산 기장군 기장읍 유니온 갤러리 개관 기념 '토마스 캠벨-Kook in, Kook out' 전시 전경. 김은영 기자

“우리는 서핑이 단지 스포츠를 넘어서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예술 안에 삶이 깃든다는 것을 처음 배웠습니다. 캠벨 작품 속 서퍼들은 단순히 기술 좋은 라이더가 아니었어요. 그들은 파도 위에서 자신만의 리듬과 세계관을 표현하는 아티스트였고, 그들의 삶과 감정을 고스란히 화면 위에 펼쳐 보였죠. 우리는 그걸 보며 ‘언젠가는 우리도 저런 걸 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고, 그 질문은 결국 우리의 삶을 움직이는 방향이 되었습니다.” 전시 관람 오전 11시~오후 6시(수·목요일 휴관). 문의 051-731-518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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