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 2024-12-25 13:54:44
‘저출생’ ‘인구 소멸’ ‘지방 소멸’. 대한민국의 미래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단어이다. 3개의 단어를 썼지만, 사실상 비슷한 의미와 뜻으로 이해된다. 관점에 따라 다가올 미래가 아니라 현재 대한민국에서 펼쳐지는 위기이기도 하다. 예술가는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하고 싶은 말을 전달한다. 부산 작가, 정안용은 부산이라는 도시가 겪고 있는 지역 소멸, 인구 소멸에 대한 위기감, 두려움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선명하게 드러낸다.
29일까지 부산 해운대구 카린갤러리 지하 3층에서 열리는 정안용 개인전 ‘그대, 지금 어디에 살 것인가’는 지역 소멸의 위기를 사진, 영상, 설치 미술로 느끼게 한다. 거친 콘크리트 바닥과 벽을 그대로 드러낸 지하 3층의 독특한 전시 공간마저 메시지를 더욱 강렬하게 전달한다.
천정에서 배너처럼 떨어지는 족자형 작품은 뿌연 연기에 파묻힌 아파트를 표현하고 있다. 마치 아무도 살지 않는 빈집 같다. 정 작가 작품 세계에서 연기(煙氣)는 가장 눈에 띄는 장치다. 이전 작업에서 인물, 동물, 화폐 등 형태를 가진 것도 연기를 중첩해 묘사했다. 검은 바탕 위에 자유롭게 피어나는 연기는 몽환적인 느낌을 준다. 사라질 수밖에 없는 연기는 결국 정 작가가 이번 전시에서 말하는 인구 소멸, 지방 소멸을 가장 잘 이야기하는 소재가 된 셈이다.
전시장 바닥에는 쌀을 깔아 부산 지형을 표현했다. 그 위로 푸른 물결의 영상이 겹치고 관객은 바닥의 쌀을 밟고 걸어 다닌다. 관객의 발걸음 때문에 쌀은 자연스럽게 흩어지고 곧 부산의 지형은 알아볼 수 없게 된다. 인간에게 귀중한 주식, 쌀로 부산의 지형을 만든 생각은 기묘하면서도 창의적이다. 쌀의 흩어짐 효과를 ‘부산 소멸’에 대입시켜 추상적인 콘셉트를 관객에게 직접 체험하게 만들었다.
한쪽 벽에는 부산 시민들의 인터뷰 영상이 투사된다. 영상 속 대다수는 부산에서 태어나서 줄곧 부산에서 산 노인들이다. 그들은 한결같이 예전의 기억과 대비되는 지금의 부산을 말한다.
정 작가는 인구 소멸, 지방 소멸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맘 먹었지만, 전시로 표현하기까지 굉장히 힘들었다고 한다. 너무 익숙한 주제라서, 예술이라는 도구로 드러내는 게 오히려 어려웠던 모양이다. 카린갤러리 대표를 비롯해 큐레이터들과 몇 차례 회의하며 전시를 준비하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온 자체만으로도 칭찬해 줘야 할 것 같다.
정 작가는 “부산이 겪고 있는 변화의 순간을 포착하고, 이를 통해 우리 사회가 마주하고 있는 터전의 문제를 직시하며, 그 안에서 새로운 가능성의 씨앗을 찾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온 국민을 걱정시킨 비상계엄 사태로 인해 미술계에선 “12월 전시는 망했다”는 말이 돌았다. 실제로 2주 가까이 갤러리에는 관객이 거의 없었고, 몇 년을 준비한 작가의 전시들이 조용히 사라졌다. 이 전시도 시끄러운 정국 때문에 조명받지 못한 채 끝을 향해 간다. 며칠 남지 않았지만, 미술 팬이라면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 부산의 미래를 향한 질문이자, 지역이 잃어가는 것들에 대한 기록이며, 그 속에서 발견되는 희망과 재생의 메시지를 많은 이들이 확인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