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철 기자 euncheol@busan.com | 2024-12-25 18:10:42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이재명은 안 된다’는 현수막 게재와 관련해 결정을 번복하는 등 오락가락하면서 이번 사태의 시발점인 부산에서는 각 정당 현수막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거대 양당뿐 아니라 군소 정당들까지 합류해 상대 진영을 향한 비난하거나 지지층의 집회 참석을 호소하는 등 메시지 정치에 총력전을 쏟고 있는 모습이다.
25일 부산 곳곳에서 ‘선관위 인정 현수막, 그래도! 이재명은 안 됩니다’는 내용의 현수막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이는 국민의힘 부산시당 차원에서 각 당협에 공문을 보내 해당 현수막 게첩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박수영 부산시당위원장 “계엄과 탄핵소추로 국민의힘이 어려운 상황인 것을 틀림없지만 국민들 사이에서도 ‘차기 대통령은 이재명은 안 된다’는 기류가 있는 것 같다”며 “우리는 이를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당의 이 같은 결정은 최근 선관위가 ‘그래도 이재명은 안 됩니다’라는 내용의 현수막을 ‘게시 불가’ 판정을 내린 뒤 번복한 것과 무관치 않다. 국민의힘은 지난 14일 탄핵안 가결 직후까지만 하더라도 ‘책임을 피하지 않고 혼란을 막겠습니다’는 내용으로 집권 여당 책임성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지난 16일 선관위가 이재명 대표 관련한 현수막이 부산 수영에 걸리는 것에 대해 “조기 대선 가능성이 있는 만큼 낙선 목적의 사전선거운동으로 공직선거법 위반이 될 수 있다”며 불허하면서 기류가 달라졌다. 선관위는 같은 지역에 조국혁신당이 신청한 ‘내란 수괴 윤석열 탄핵 불참, 정연욱도 내란 공범이다’는 현수막은 허가했다. 이에 국민의힘은 형평성 문제를 제기했고 파장이 계속되자 선관위는 지난 23일 “단순한 정치 구호”라며 허용으로 입장을 선회했다.
이같은 부산 국민의힘 각 당협위원회가 내건 현수막 근처에는 여당 소속 부산 의원들의 이름과 함께 사퇴를 촉구하는 민주당 지역위원회 현수막이 맞대응하고 있다. 또한 일부 지역에서는 ‘국민과 함께 내란 극복! 국정 안정!’ 등의 내용을 담아 대안 정당으로서의 면모를 강조하는 전략도 엿볼 수 있었다. 민주당 이재성 부산시당위원장은 국민의힘의 이재명 대표 관련 현수막에 대해 “지금 국정 안정 민생경제 회복에 힘을 모아야하는데 정치 구호가 도움이 되겠나”라며 “특히 부산은 글로벌 허브도시 특별법 제정 등 국회 협조가 필요한 마당에 부적절한 현수막이다”고 평가절하했다.
정치권의 현수막 싸움에는 국민의힘과 민주당에서 그치지 않는다. 진보 성향 제3지대 정당들은 보다 강경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는데, 진보당 부산시당은 ‘내란 수괴 윤석열 구속·파면, 공범 국민의힘 해체’, 새미래민주당 부산시당은 ‘내란 수괴 윤석열 하야!’ 등의 현수막을 내걸었다.
이 밖에 보수 계열 정당이자 윤석열 대통령 퇴진 반대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자유통일당은 ‘오라! 광화문으로! 가자! 탄핵 저지!’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통해 차별화를 꾀했다.
탄핵 정국을 거치며 각 정당의 현수막 정치가 활성화되면서 시민들의 평가도 엇갈리는 분위기다. 정치 고관여층에서는 “속 시원하다”는 평가다. 최근 윤 대통령 퇴진 집회에 여러 차례 참석했다는 30대 한 직장인은 “부산 여당 의원들이 탄핵 표결과 관련해 어떤 입장도 밝히지 않는데 이는 시민 목소리를 외면하는 것”이라면서 “현수막을 통해 조금이라도 압박을 받지 않겠냐”고 말했다. 반면 국민의힘 지지자라고 밝힌 60대 남성은 “계엄과 별개로 차기 대통령으로 이재명이 맞는가에 동의하는 시민들은 적을 것”이라며 “보수도 움츠리지 말고 맞서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정치 현안에 관심이 적은 이들은 피로감을 호소한다. 한 시민은 “정치 뉴스는 죄다 정쟁뿐”이라며 “거리에서도 현수막 문구로 싸우니 머리가 아프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