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영화를 넘어 '읽는' 영화… 맥락 짚는 탐독의 길잡이

신간 <불온한 영화를 위하여>
오동진 평론가 2년간 리뷰 엮어

이자영 기자 2young@busan.com 2025-03-13 11:10:32


책 <불온한 영화를 위하여> 표지. 썰물과밀물 제공 책 <불온한 영화를 위하여> 표지. 썰물과밀물 제공

영화는 시대상을 반영한다. <불온한 영화를 위하여>는 왜 이런 시점에 이런 영화가 나왔는지를 살피는 평론서다. 오동진 평론가가 지난 2년간 다양한 매체에 기고한 영화 리뷰를 엮었는데, 사회성 짙은 작품이 대부분이다.

저자는 오랫동안 영화에 대한 글을 쓰면서 ‘어느덧 내가 영화를 보기 보다는 읽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대부분의 관객은 영화를 ‘보는’ 데서 그치지만, 평론가인 그에게 영화는 ‘탐독해야 할 대상’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좋은 영화들을 보기만 하고, 그 의미를 곱씹어 보는 일은 자꾸 미루기만 했던 게으른 관객들에겐 그의 리뷰가 꽤 도움이 될 것 같다.

영화 ‘다음 소희’에 대해서 저자는 ‘모든 건 다 그놈의 퍼센티지(%) 때문’이라고 꼬집는다. 시청률, 청취율, 지지율, 취업률 등 모든 걸 다 정량 평가하는 우리 사회의 모순을 짚는다. 그래서 이 영화는 ‘정량 평가가 된 사회가 자행하는, 그 안에서 기생하는 무한대의 관료주의가 빚어내는 비극과 참사에 대한 이야기’로 해석된다. 취업 준비생 소희(김시은)의 이야기와 형사 유진(배두나)의 이야기가 순서대로 이어 붙이듯 편집된 것도 정주리 감독의 의도라는 점을 강조한다. 사건의 원인을 자세히 보여 주고, 앞일에 대한 책임을 뒤에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다루는가를 명료하게 보여 주기 위해 일부러 긴장감이 떨어질 수도 있는 이야기 구조를 밀어붙였다는 것이다.

일부 관객들에게서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다’는 불만이 터져 나왔던 일본 애니메이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선 ‘인터스텔라’와 ‘백 투 더 퓨처’를 뒤섞은 영화라고 풀어놓는다. 우주 평행 이론과 시간 여행, 가족사를 키워드로 하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지 않은 서사의 불편함을 조금 덜 수 있다는 힌트를 던져 준다. 일본 제국주의를 미화했다는 비판에 대해선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편을 들기도 한다. 저자는 이 영화가 주인공 마히토의 눈을 통해 2차 세계대전 당시 군수업체 사장인 아버지를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다만 그 톤 앤 매너가 적극적이고 전투적이지 않을 뿐’이라고 부연하면서 말이다.

좋은 영화인 줄은 알겠는데 ‘폭삭 망한 수준’이 된 영화 ‘원더랜드’. 그 원인을 놓고선 김태용 감독의 사심(?)을 비판한다. 네 개의 이야기 축 중 그 중심을 아내인 탕웨이 쪽으로 기울여 놓은 것이 ‘이 영화의 결정적 패착’이라는 것이다. 영화 전체를 이끄는 수지와 박보검의 에피소드, 현대인이 지닌 정체성의 근본 문제에 집중했다면 상업적 성공에 더 가까워졌을 거란 견해를 내놓는다. 대중 관객은 늘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영화가 한 걸음 처진 행보를 보인 데서 실패의 원인을 찾는다.

B급 영화임에도 100만 명을 넘는 관객을 모은 ‘핸섬 가이즈’의 성공에선 시대의 불안을 읽기도 한다. 이 영화가 일부러 궁색하고 못나게 구는 ‘의도된 가벼움’을 가졌다는 것이다. 작정하고 사람을 웃기려고 하거나 넘어지고 자빠지는 것은 ‘사회의 불길한 징조’라고 역설한다. 시절이 어려울 땐 ‘이렇게라도 웃고 넘어가자며 허허실실로 일관’한다는 것. 반어적 제목을 가진 영화의 주인공들은 실제론 못생겼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못생겼다는 것은 못 가졌다, 계급이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저자는 이 영화를 ‘무산 계급과 유산 계급의 갈등, 그 대립을 유쾌한 소동’으로 그려냈다고 풀이한다. 그러면서 이 영화의 흥행 포인트는 ‘그 일시적 반란이 주는 기묘한 쾌감’이라는 점을 확인시킨다. ‘사람들은 지금 웃으면서 혁명을 하고 싶어 한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오동진 지음/ 썰물과밀물/ 440쪽/ 1만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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