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진 기자 onlypen@busan.com | 2025-04-07 17:36:56
고교 1학년에 재학 중인 A군은 수업 도중 갑자기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고 가슴을 찌르는 듯한 고통을 겪었다. 학교 보건교사의 조언대로 인근 병원 응급실을 찾은 A군은 ‘기흉’ 진단을 받았다.
갑작스럽게 숨이 가쁘고 가슴 한쪽이 찌르는 듯 아프다면 기흉을 의심해볼 수 있다. A군처럼 마르고 키가 큰 10대 남학생에게서 흔히 발생하는 기흉은 청소년층에서 꾸준히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는 대표적인 흉부 질환이다. 평소 건강하던 학생이 갑자기 흉통을 호소하거나 숨쉬기 어려워한다면 단순한 피로나 감기 증상으로만 넘기지 말고 정확한 진단을 받아야 한다.
■특별한 외상 없이 발생
기흉은 폐에 공기 누출이 생겨 가슴 안쪽의 공간(흉강)에 공기가 차면서 폐가 수축되고 호흡에 어려움이 생기는 질환이다. 이로 인해 가슴 통증이나 호흡곤란, 마른기침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으며 심한 경우 산소 공급이 부족해 어지럼증이나 피로감을 느끼기도 한다.
기흉 중 가장 흔한 형태는 별다른 외상이나 사고 없이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자연기흉’으로, 청소년기에 발생하는 기흉의 대부분이 이에 해당된다. 폐 표면에 생긴 작은 공기주머니가 파열되면서 공기가 흉강으로 새어 나오는 것이 원인이다.
특히 마르고 키 큰 체형의 청소년 남성에게서 잘 발생한다. 키가 크면 폐 윗부분에 상대적으로 압력이 높아져 공기주머니가 더 쉽게 생기고 파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부산대병원 안효영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는 “사춘기 급성장으로 폐 조직과 폐 주변 혈관의 성장 속도에 불균형이 생기는데, 이로 인해 폐 표면에 약한 부위가 형성돼 소기포 형성을 유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스트레스, 사춘기 호르몬의 영향, 운동 중 압력 변화, 흡연 습관 등도 기흉 발생률을 높이는 요인으로 꼽힌다.
■초기 증상 거의 없어 문제
기흉의 대표적인 증상은 한쪽 가슴을 찌르는 듯한 흉통, 숨이 차는 느낌, 마른 기침, 피로감 등이다. 하지만 공기 누출이 적은 경우에는 별다른 증상이 없거나 일시적인 불편감만 있어 자칫하면 질환 자체를 놓치기 쉬운 게 문제다. 안 교수는 “청소년의 경우 폐 기능이 전반적으로 좋아 회복이 빠르지만, 치료 시기를 놓치거나 반복적으로 발생할 경우 생활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재발 위험까지 고려해 정확한 진단과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진단은 주로 흉부 X선 검사로 확인하며, 필요에 따라 CT 촬영으로 작은 기흉이나 공기주머니의 위치, 크기 등을 정밀하게 파악해 수술 여부를 판단한다.
기흉은 초기에 증상이 적고 회복이 빠르다 해도 재발률이 높아 경과 관찰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일반적으로 첫 발생 이후 재발률은 약 30~50%, 청소년 남성의 경우 이보다 더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기 누출이 적고 증상이 경미한 경우에는 산소 투여 및 보존적 치료만으로도 회복될 수 있다.
하지만 공기가 계속 빠져나오거나 기흉량이 많고 기낭이 클 경우, 재발한 경우, 양측성 기흉일 경우에는 흉관 삽입이나 수술적 치료가 필요해 전문가 소견을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 수술은 대부분 흉강경 수술로 진행되며, 손상된 부위를 절제하고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폐 표면을 특수 재료로 덮는 ‘흉막 보강술’도 함께 시행한다.
■치료 후에는 일상생활 복귀 가능
기흉은 완치보다는 재발을 억제하고 현재 폐 기능을 유지하는 것이 치료의 주된 목표다. 의학적으로는 수술 후 다음날 복귀가 가능하며, 대부분의 경우 학교 생활이나 가벼운 운동은 문제 없다. 하지만 치료 후 일정 기간 동안은 무리한 운동이나 흉부 압력을 높이는 활동은 자제하는 것이 좋다. 기압차로 재발이 가능한 만큼 수술 등 치료 후 회복될 때까지는 해외여행도 삼가는 것이 좋다.
성장기 기흉을 앓은 적이 있는 청소년은 흡연을 반드시 금하고, 역도·마라톤·격투기 등 고강도 운동은 피해야 한다. 헬륨 풍선 흡입이나 과도한 기침 역시 기흉 재발 위험을 높일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청소년기는 아직 성장하는 시기인 만큼 남아있는 부위에서 기낭이 다시 생길 수 있다. 재발률은 낮지만 수술을 받았다고 해서 안전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증상이 나타나면 가까운 병원에 즉시 방문하는 것이 좋다.
기흉은 치료가 어렵고 재발이 잦아 걱정하는 보호자와 환자가 많지만, 관리만 잘하면 건강한 일상을 보낼 수 있다. 안 교수는 “기흉은 평생 조심해야 하는 병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잘 치료하고 생활 습관만 잘 관리하면 대부분의 청소년은 평소처럼 건강한 일상을 보낼 수 있다”며 “이 병은 잠시 멈춰가는 신호일 뿐, 다시 뛰고 웃고 꿈꿀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