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돈 기자 happyi@busan.com | 2025-08-10 14:55:07
생명과 환경을 중시하던 부산 출신 연극인이자 춤꾼이 장기기증으로 5명에게 새 생명을 안기고 세상을 떠났다.
지난 7일 오후 부산 동아대병원에서 뇌사 판정을 받은 박현덕(60) 씨의 심장과 폐, 간, 양쪽 신장(콩팥) 장기 적출 수술이 진행됐다. 박 씨의 신체에서 적출된 장기는 서울과 부산 등의 병원 4곳에서 5명의 수혜자에게 이식됐다.
평소 건강에 큰 이상이 없었다던 박 씨는 지난 1일 경북 경주시의 한 수영장에서 강습받던 중 뇌내출혈로 의식을 잃고 쓰려져 동국대학교 경주병원에서 응급 수술을 받았으나 끝내 깨어나지 못했다.
유족은 고인이 장기기증을 서약한 사실을 떠올리고 관련 기관에 기증 의사를 전달했다. 부인 김혜라 씨는 “남편이 평소 가족 모임 때마다 장기기증을 하겠다고 했다”라며 “특히 불교 정토회에서 나눔과 봉사 활동에 참여하면서 생을 마감할 때 다른 생명 살릴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말을 줄곧 해 왔다”라고 전했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KODA) 직원과 상담하던 유족은 장기뿐만 아니라 나머지 인체 조직도 기증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고인의 뜻에 부합한다고 판단, 장기와 인체 조직을 모두 기증하기로 결심했다.
이에 따라 장기를 떼어 낸 박 씨의 몸은 곧바로 인체조직은행이 있는 양산부산대병원으로 옮겨져 뼈, 혈관, 근육, 연골판 등 20여 개의 인체 조직 기증 절차가 진행됐다. 채취된 박 씨의 인체 조직은 추후 질병 치료나 장애 예방에 필요한 이들에게 이식될 예정이다.
경남 남해군 상주면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부산에서 자란 박 씨는 동아대에서 풍물패로 활동하다 대학 졸업 후 극단 자갈치에서 연기와 탈춤, 마당놀이 등을 익혔다. 극단을 나온 후로는 객원 배우와 예술강사로 활동하며 극단 일터의 ‘철로역정’과 ‘팔칠전’ 같은 노동극 공연에 참여했다.
박 씨는 이후 거처를 경주시로 옮겨 최근까지 지역 시민단체 등과 연대하며 생명과 환경 살리기, 탈춤 등 민속 예술 계승 및 확산에 정성을 바쳤다. 장애인과의 연대에도 뜻을 둬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서울 극단 함께걷는사람들의 연극 ‘3일만 볼 수 있다면’과 ‘막차 탄 동기동창’에 배우와 무대감독으로 참여했다. 부산민예총 회원이기도 한 박 씨는 부산에서 진행된 일본군위안부해원상생굿과 남북협력기원예술제 등에 춤꾼과 진행요원으로 참여하며 지역 예술인들과 교류를 이어 왔다.
고귀한 생명을 나누고 떠난 고인의 유해는 10일 부산 영락공원에서 화장된 뒤 경남 김해시 낙원추모공원 장기기증자 봉안당에 모셔졌다. 고인의 형인 박주섭 씨는 “동생이 죽고 나서야 그의 열정적이고 대단했던 생을 알게 됐다”라며 “개인적으로 너무 안타깝고 아쉽지만, 이런 동생의 삶이 잊히지 않길 바란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