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경륜 기자 takk@busan.com | 2025-10-26 16:42:48
전세 끼고 집을 사 이른바 '갭투자' 논란에 휩싸인 이상경 국토교통부 1차관이 23일 국토부 유튜브 계정을 통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있다. 이 차관은 최근 방영된 한 유튜브 채널에서 '정부 정책을 통해 시장이 안정되면 그때 집을 사면 된다'는 취지로 발언해 논란을 일으켰다. 연합뉴스
“집값 떨어지면 사라”는 발언과 ‘갭투자 논란’으로 비판이 거세진 이상경 전 국토교통부 1차관이 결국 사퇴했지만,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둘러싼 정치권의 공방은 계속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야당 대표를 겨냥해 ‘부동산 부자’ 프레임으로 국면 전환을 시도하자, 국민의힘은 대통령실의 내로남불 행태를 겨냥하며 맞불을 놨다. 이재명 정부 부동산 정책의 핵심 인물로 꼽히던 이 전 차관의 퇴진을 계기로, 정책 신뢰를 둘러싼 여야의 충돌은 한층 격화될 전망이다.
26일 대통령실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이상경 전 차관이 사의를 밝힌 지 하루 만인 지난 25일 사표를 수리했다. 정치권에서는 이 전 차관을 둘러싼 논란으로 부동산 정책 추진 동력이 약화될 것을 우려한 대통령실이 신속히 결단한 것으로 보고 있다. 부동산 규제 강화에 따른 중도층 반발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정책 설계자의 도덕성 논란까지 겹치며 정부 신뢰가 흔들릴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이 전 차관은 정부가 부동산 규제 강화를 핵심으로 내세운 ‘10·15 부동산 대책’을 발표한 직후 한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시장이 안정화돼 집값이 떨어지면 그때 사면 된다”고 발언해 정책 담당자로서 부적절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후 ‘갭투자’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여론은 급속히 악화됐고, 이 전 차관은 지난 23일 유튜브를 통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여론 지형이 크게 변하지 않자 끝내 사퇴했다.
야당이 이 전 차관에 대한 책임론을 제기하며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정조준하자,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오히려 야당 대표를 겨냥해 공세에 나섰다. 민주당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향해 “장 대표 가족은 아파트만 4채, 오피스텔과 단독주택, 토지까지 가진 부동산 부자”라고 비판했다. 이에 장 대표는 “보유 주택 6채의 총액이 약 8억 5000만 원 상당”이라며 실거주용이라는 취지로 해명했지만, 대통령실 측은 “부동산 여섯 채가 모두 실거주용이라면 머리와 발이 따로 사는 것이냐”고 비꼬았다.
이 전 차관의 사퇴 이후 부동산 정책을 둘러싼 논란이 정면 충돌 양상으로 번지자, 국민의힘은 대통령실을 정조준하며 역공에 나섰다. 국민의힘은 이날 발표한 논평에서 “대통령실 고위공직자 30명 중 절반 가까이가 다주택자고, 20여 명은 토지거래허가제 지역 내 주택을 보유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국민에게는 ‘투기와의 전쟁’을 외치면서 자신들은 부동산 특권열차에 올라타 있는 이중 행태가 국민을 분노케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도 여권의 태도를 비판했다. 그는 지난 25일 SNS에 “마이바흐 타고 벤틀리 타는 사람들이 집에 중형차 한 대, 경차 한 대, 용달 한 대, 오토바이 한 대를 가진 사람에게 ‘차가 4대나 있다’고 공격하는 느낌”이라며 여권의 논리가 옹색해 보인다고 꼬집었다.
정치권에서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부동산 정책을 둘러싼 갈등이 장기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전 차관의 사퇴가 이재명 정부의 정책 신뢰에 균열을 낸 데다, 향후 부동산 개혁 추진 동력에도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대통령실이 야당 공세에 맞서 국면 전환을 시도하고 있지만, 정치권 일각에서는 국민 눈높이보다 정치적 계산에 치중한 대응이 오히려 사태를 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여론의 비판을 의식한 듯 민주당도 한발 물러선 태도를 보였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부동산 정책은 매우 민감하고, 국민이 예의주시하고 있기 때문에 개별 의원들의 돌출적 발언은 가급적 자제해 달라”고 당부했다. 최근 복기왕 의원의 “15억 원 정도면 서민 아파트”라는 발언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