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다시 기억하는 부마민주항쟁 그날의 현장

■ 시월/곽영화

김희돈 기자 happyi@busan.com 2025-10-30 17:03:43

곽영화의 <시월>에 실린 그림. 1979년 10월 16일 부산 남포동 극장가 시위 장면이다. 호밀밭 제공 곽영화의 <시월>에 실린 그림. 1979년 10월 16일 부산 남포동 극장가 시위 장면이다. 호밀밭 제공

“부산에서 작품 활동을 하는 사람으로서 그동안 제 역할을 못 한 것 같은 마음이었는데, 늦게나마 책을 내면서 어느 정도는 짐을 던 것 같습니다.”

‘곽영화의 부마민주항쟁 그림일지’라는 부제를 단 책 <시월>을 낸 곽영화 화백의 말이다. <시월>은 1979년 10월 부산과 마산에서 일어난 부마민주항쟁 당시의 거리 상황을 그림으로 생생히 되살린 책이다. 책에서는 10월 16일부터 19일까지 나흘간의 항쟁 과정을 마치 현장에서 목격하는 것처럼 시각적으로 복원했다.

책은 ‘항쟁의 배경’부터 시작된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수많은 사람이 전쟁을 피해 부산으로 몰려들었다. 부산과 마산에는 공장이 생기고 건물이 들어섰다. 1972년 박정희의 유신헌법으로 장기 집권이 시작되고 도시에는 공장 노동자들을 태운 출근 버스가 아침을 열었다. 수채화 물감으로 부분 채색한 펜화마다 짧고 간단한 설명이 더해져 페이지가 술술 잘도 넘어간다.

<시월> 책 표지. <시월> 책 표지.

그리고 마침내 1979년 10월 16일. 유신헌법의 부당성을 알리는 ‘민주투쟁 선언문’을 밤새 다락방에서 만든 부산대 학생들이 캠퍼스에서 구호를 외치며 시위에 나섰다. <시월>은 이후 남포동 등 시내에서 펼쳐진 시민 저항과 경남대 학생들을 중심으로 마산(현 창원시)으로 확산한 항쟁의 기록을 마치 사진처럼 선명하게 보여주는 그림 다큐멘터리이다.

“부마민주항쟁은 1980년대 5·18 민주화운동과 6월항쟁을 촉발한 역사적 사건인데도, 역사적으로 덜 주목받거나 저평가된 면이 있습니다.” 저자는 2년 전 전주시에서 열린 동학농민혁명미술전 참여를 계기로 미뤄둔 부마민주항쟁 그림일지 작업에 착수했다. 기초 자료조사를 통해 200여 장면을 화폭에 재현하기로 했다. 당시 항쟁 참여자 등의 도움을 받고 연구서와 기록물을 꼼꼼히 살폈다. 부산과 마산의 주요 현장을 여러 차례 답사하며 영감을 얻기도 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모두 166장의 그림에 짤막한 설명 문구를 더해 책으로 엮었다.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박상도 이사장은 <시월>이 단순한 그림책이 아니라고 말한다. 박 이사장은 추천사를 통해 “항쟁의 전모를 한 호흡으로 포착할 수 있는 솜씨 좋은 기록물이자 미적 가치가 뛰어난 예술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사)부산민예총 이사장인 곽영화는 대학에서 서양화와 미학을 공부한 화가로,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과 민족미학연구소 이사이기도 하다. <시월>에 실린 그림 중 20여 점은 부산근현대역사관 금고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부마민주항쟁 기념 기획전 ‘ㅂㅁ’에서도 만날 수 있다. 곽영화 글·그림/호밀밭/168쪽/2만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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