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유정 기자 honeybee@busan.com | 2025-10-30 15:33:17
배우 박지환이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 ‘탁류’로 시청자를 만나고 있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무덕은 인간의 밑바닥에 살지만, 사람 냄새 나는 인물이에요.”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 ‘탁류’에서 마포 왈패 무덕을 연기한 배우 박지환은 이렇게 말했다. 그가 연기한 무덕은 가진 건 없지만, 눈치 하나로 세상에 맞서며 버텨온 존재다.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박지환은 “무덕은 청룡인 척하다 지네 다리 하나 훔치고, 호랑이인 척하다 하이에나 이빨 하나 훔친, 동서남북의 영물들을 허접하게 꿰맨 인간 같다”고 소개했다.
극 중 무덕은 강자에게는 비굴하고 약자에게는 거칠지만, 그 속엔 이상하게 인간적인 온기가 느껴진다. 박지환은 “인생이 갑자기 바닥으로 떨어져야 비루하다고 느껴지는 거지, 매일 그렇게 사는 사람에게는 그게 평범한 것”이라며 “무덕의 비애는 그 평범함에 있다”고 말했다. 이어 “무덕은 자신이 악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누군가에게는 악의 축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든든한 사람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무덕 캐릭터를 완성하는 과정은 단순하지만 치열했다. 박지환은 “복잡하게 생각하면 멋있는 게 안 나온다”며 “동료를 믿고, 감독님의 말을 따르다 보면 제가 도달할 수 있는 지점보다 더 멀리 갈 수 있다”고 말했다. 무덕이의 눈빛을 찾기 위해선 동물 영상을 반복해서 봤다고 했다. “강아지나 고양이가 혼났을 때의 눈빛, 눈치 보고 꼬리를 말고 흔드는 모습을 참고했어요. 그런 순간에서 무덕의 본능적인 두려움과 생존 욕구를 느꼈거든요.”
디즈니플러스 ‘탁류’ 스틸컷.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디즈니플러스 ‘탁류’ 스틸컷.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이번 작품을 연출한 추창민 감독은 그에게 지휘자 ‘카라얀’ 같은 존재다. 박지환은 “감독님이 매 장면을 손바느질하듯 잘 만들어주셨다”며 “그 덕분에 제가 표현한 것보다 훨씬 깊은 인물이 완성됐다”고 말했다. 그는 “작품을 하면서 1분 1초마다 성장하는 게 느껴졌다”면서 “감독님이 캐릭터를 살아 숨 쉬게 만들어줬고, 저는 그 말을 성실히 수행하는 경주마의 자세로 임했다”고 했다.
연기를 바라보는 박지환의 철학은 명확하다. 그는 “내가 생각하는 연기는 밀려난 사람들의 이야기”라며 “화려한 판타지보다 적나라한 패배와 무너짐이 더 인간답게 느껴진다”고 설명했다. 박지환은 “사람은 집에서는 엉망이지만 밖에서는 괜찮은 척하며 살아가지 않나”라면서 “그게 우리의 삶의 기술이고, 그걸 꺼내는 게 배우의 일”이라고 웃었다. 그러면서 조용히 덧붙였다. “작품 하나가 잘 됐다고 해서 거기에 취해있지 않으려고 해요. 지나간 작품은 그냥 지나간 일이거든요. 앞으로가 더 중요하죠. 좋은 사람들과 만나서 최선을 다하는 게 제 길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