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 2025-02-17 11:21:16
지난해부터 2030세대 사이에서 유행하던 ‘텍스트힙’(text-hip) 열풍이 새해 들어 태풍급으로 더욱 거세지고 있다. 텍스트힙은 ‘읽는 것은 멋지다’는 의미다. 독서 인증샷을 찍어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행위가 그 세태를 반영한다. 특히 연예인을 비롯한 유명인이 방송이나 SNS에서 특정 책을 언급하면서 해당 책의 판매량이 급증하는 현상이 자주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서점가 베스트셀러 흐름에서 그룹 아이즈원 장원영의 추천작이 판매 부수에서 한강 작품을 앞서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예스24의 2025년 2월 2주간(8~14일) 베스트셀러 종합 1위는 장원영의 추천서 <초역 부처의 말>이었다. 지난주 2위까지 치고 올라온 기세로 지난해 10월 노벨문학상 수상자 발표 이후 14주 연속 정상을 지키고 있는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를 2위로 밀어낸 것이었다. 교보문고를 비롯한 다른 서점들도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부처의 가르침을 현대어로 재해석한 <초역 부처의 말>은 지난해 5월 발간되어 장원영이 언급하기 전까지 주간베스트 국내도서 부문 100위권 대에 있었다. <초역 부처의 말>은 장원영이 지난달 tvN ‘유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해 언급하며 주목받은 이후 바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는 장원영이 추천한 뒤 지난해 상반기 베스트셀러 종합 1위를 차지했고, 지금까지 20위권에 머물고 있다.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에 이어 <초역 부처의 말>까지 베스트셀러 정상을 차지하면서 서점가에서는 장원영의 영향력이 입증됐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최근에는 부산의 한 독립 출판사와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아름다운 사연도 더해졌다. 2022년 임윤찬이 유튜브에 자신이 좋아하는 구소련의 피아니스트 유리 예고로프의 음악을 올리면서 이야기가 시작됐다. 안목 출판사 박태희 대표는 이 유튜브에서 음악을 듣다가 낯선 피아니스트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유리 예고로프의 이탈리아 일기 1976>을 지난해 5월 직접 번역 출간한다. 이 책은 구소련을 대표하는 피아니스트가 1976년 이탈리아 현대국제음악축제에 초청받은 뒤 망명을 요청하고, 수용소에서 갇혀 있던 지옥 같은 한 달을 담은 일기장이다. 임윤찬이 지난달 인스타그램에 ‘안목 출판사 감사드립니다’라고 언급한 직후 한 달에 한 권도 안 나가던 책이 이틀간 350부나 판매되었다고 한다.
출간하자마자 14~15일 부산에서 북토크를 개최한 장재열 작가의 <리커넥트>는 ‘빅뱅’ 멤버 겸 솔로가수 지드래곤의 든든한 지원을 받고 있다. 지드래곤은 “저의 음악 또한 누군가에게 손길이 돼 닿기를 바라듯, 이 책 또한 그 손과 닮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세상에 고립이 퍼지는 대신 사랑과 평화가 퍼져나가기를 바라며 이 책을 권한다”라고 추천사를 썼다. 게다가 지드래곤이 명예 이사장을 맡고 있는 ‘저스피스 재단’은 이 책이 재단이 추구하는 가치와도 맞다면서 <리커넥트>를 직접 출판했다. <리커넥트>는 출간과 동시에 관련 기사가 쏟아지며 바로 재판에 돌입해 지드래곤의 영향력을 실감케 했다. 배우 한소희가 추천한 철학서 <불안의 서>는 800페이지가 넘는 분량에도 불구, 출간 10년 만에 품귀 현상을 겪기도 했다.
이에 대해 출판계에서는 “연예인 추천 도서의 판매량 증가는 출판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지만, 이들 도서에만 관심이 집중되면서 다른 좋은 책들이 주목받지 못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을 긍정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출판사, 서점, 독자 모두가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글·사진=박종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