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 2024-11-19 20:30:00
부산 해운대구 반여동 일원에 조성되는 센텀2지구 도시첨단산업단지(이하 센텀2지구)는 2조 원이 넘는 사업비를 투입해 스마트 선박, 로봇·지능형 기계, 정보통신(IT) 등 부산의 미래 먹거리를 책임질 제조업 혁신 공간을 조성하는 사업이다.
이달 초에는 국토교통부가 센텀2지구를 도심융합특구로 지정하고 특구기본계획을 승인하면서 절차적으로 순항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가장 큰 걸림돌인 방산업체 (주)풍산의 이전 문제에 발목을 잡혀 실질적인 사업 추진이 답보 상태다. 매년 500억 원이 넘는 금융 비용에다 보상비, 공사비의 급등으로 조성원가가 판교 수준으로 치솟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19일 부산시와 부산도시공사 등에 따르면 풍산 공장의 면적은 102만여㎡로 센텀2지구 전체 사업 면적(191만 2440㎡)의 절반이 넘는다. 반여농산물시장(15만 8400㎡)과 석대화훼단지(8만 9000㎡) 이전도 센텀2지구 개발의 발목을 잡는 요소지만, 풍산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차지하는 풍산 비중이 높다.
도시공사는 2조 411억 원의 사업비 중 약 40%인 8300억 원가량을 풍산 공장의 이전·보상을 위한 비용으로 책정해 둔 상태다. 하지만 이는 사업이 2027년에 완성된다는 청사진 아래 책정된 예산이다. 풍산 이전이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매년 공사채 이자로만 500억 원이 넘는 비용이 지출되고, 급증하는 보상비와 공사비를 반영한다면 얼마나 많은 비용이 더 들지는 섣불리 계산하기 힘들 정도다.
앞서 풍산은 2021년 공장을 기장군 일광면으로 이전하는 내용의 투자의향서를 시에 제출했지만, 주민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결국 무산됐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2021년 9월 풍산 이전 문제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후에도 2년 넘게 표류하던 풍산 이전 문제와 센텀2지구 조성 사업은 올 2월 새로운 전기를 맞는 듯했다. 시와 도시공사, 풍산이 공장 이전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면서 문제 해결이 속도를 낼 것으로 기대를 모았기 때문이다.
시와 도시공사는 풍산 공장 이전을 위한 인허가 등 행정 절차를 적극 지원하고, 풍산은 사업장 이전과 지역 사회를 위한 공공 기여에 적극 노력하겠다는 것이 양해각서의 내용이었다. 풍산이 투자의향서를 제출하면 시는 특례법을 적용해 이전 절차를 조속히 이행하기로 합의했었다.
양해각서 체결 이후 9개월이 지났지만 사실상 아무런 소득이 없는 실정이다. 시는 최근 후보지를 2곳으로 압축해 풍산에 제시했지만 협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센텀2지구 1단계 조성 공사는 곧 시작할 예정이지만 전체 사업의 9% 규모에 불과해 첫 삽을 뜬다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의미가 없는 공정이다.
풍산 이전이 본격 추진되려면 이전 대상지의 주민 반발은 물론이고 수천억 원에 달하는 부지 매각 차익 특혜 논란도 넘어야 한다. 지난해 7월 기준으로 풍산의 부지 매입 예상가는 8300억 원인데, 센텀2지구 1단계 개발 착수 등 조성 사업이 진척될 때마다 땅값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시간이 흐를수록 부지 매입 비용이 커지는 탓에 시는 마음이 급하지만, 풍산은 군수산업의 까다로운 이전 조건 등을 내세우며 급할 게 없다는 모양새다. 차일피일 이전 시기가 늦어질수록 땅값 상승으로 인한 이익을 보는 건 풍산이다. 이런 상황임에도 정부나 지자체가 매각 차익을 공공 차원에서 회수할 구속력 있는 방안은 사실상 없다.
모든 비용은 고스란히 산단의 조성원가에 스며든다. 제1판교 테크노밸리의 분양 가격은 평당 740만 원, 제2판교는 960만 원, 제3판교는 1870만 원 정도로 추정된다. 센텀2지구의 조성 작업이 이렇게 지체된다면 제3판교 수준까지 높아질 것이라는 우려마저 나온다.
서울과의 접근성이 탁월하고 대기업이 밀집해 규모의 경제를 구축해 놓은 판교와 조성원가가 비슷해진다면 IT 기업 등이 애써 센텀2지구를 찾을 유인이 현격히 줄어든다. 부산의 한 IT 업체 관계자는 “수도권 중심으로 짜인 판을 뒤집을 혁신적인 정책이 나와도 모자란 마당에 산단 조성 시기가 차일피일 미뤄진다는 점이 안타깝다”며 “센텀2지구가 부산의 새로운 원동력이 될 수 있도록 지자체나 정부의 보다 전향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