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영 기자 key66@busan.com | 2025-04-24 09:31:12
“모든 생명은 하나의 별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별들은 견딜 수 없는 절대고독에 시달려 노래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천마 페가수스가 달려간 허공의 말발굽 자국에 눈길을 던지고 깊어가는 밤하늘을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었다. 모든 별들이 내는 음악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해서였다.” 윤후명 소설 <모든 별들은 음악 소리를 낸다>에 나오는 구절이다.
강원도 정선(부제:내 빛깔 내 소리로)에서 시작해, 경남 거제(부제: 팔색조의 섬)를 거쳐 1년여의 여정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순회 전시 도시 부산에서 ‘윤후명 문학과 미술의 만남전’이 열리고 있다. 도시마다 달리한 부제 ‘모든 별들은 음악 소리를 낸다’ 부산 제목은 거기서 나왔다.
전시는 윤후명의 대표 소설, 시집 한 권씩을 선정해서 읽고 11명의 작가가 완성한 작품을 선보이는 자리이다. ‘광부 화가’로 유명한 황재형 작가, 경남 합천 출신으로 부산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이재효 조각가, 한국 미디어아트의 거장 이이남 외에도 고석원 부산대 교수, 한중 아트프로젝트팀 사야, 위세복 조각가, 이인 한국화가, 장태묵 계명대 교수, 추니박 한국화가, 한생곤 서양화가 등이다. 회화, 조각, 미디어아트 등을 두루 망라한 전시인데, 사실상 주인공은 소설이고 시였다.
올해로 팔순을 맞은 윤후명 작가도 지난 14일 부산 부산진구 갤러리범향에서 열린 전시 개막에 참석했다. 허택·유연희 소설가 등 십수 명의 부산 제자와 남송우 문학평론가, 김형석 문화기획자, 이재용 배우, 참여 작가 등이 자리를 빛냈다.
강원도 강릉 출신의 윤후명 소설가 겸 시인은 부산, 거제와도 인연이 깊다. 그는 군법무관이던 부친을 따라 부산에 살면서 부산진초등학교와 개성중학교를 졸업했다. 팔색조의 섬 거제에서도 1년간 산 적이 있다. 그 경험이 소설 ‘팔색조의 섬’을 창작했다.
윤 작가는 “내게 완성이란 없다. 끊임없이 걸어갈 뿐”이라고 말했다. 자기 안으로의 탐구는 외로움, 바깥으로 탐구는 그리움, 외로움과 그리움의 완성은 사랑이란 말도 들려줬다. 또한 법은 인간을 구속하지만, 문학은 인간을 자유롭게 해방하는 거라고도 했다. 한마디 한마디 힘주어 말하는 모습에, 그보다 젊은 대부분의 후배 작가와 관람객은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요새 사람들은 돈만 밝히고 책은 왜 안 밝히는지 모르겠어요. 제 주변에 소설가들이 꽤 있는데 다들 악전고투 해요. 시인, 화가도 마찬가지로 사는 게 형편없고요. 그래도 계속해서 씁니다. 왜냐고요? 다른 길이 없으니까요.”
그는 지금도 소설창작론을 강의하고, 다시 시를 쓰고 있다고 전했다. 1967년 시인으로 먼저 등단했지만, 1979년 이후 소설가로 더 오래 살아왔다. 소설로 등단할 때 심사를 맡았던 고 이어령 선생이 그에게 “시와 소설, 둘 다 욕심 내면 자기처럼 이것도 저것도 안 될 거라면서 하나를 선택하라”고 조언한 것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시인의 속성은 버리지 못했다. 그는 시적인 소설, 아름다운 문체로 손꼽히는 소설을 썼다.
메세나 차원으로 부산 전시를 주최한 갤러리범향 박성진 대표는 “윤후명 작가는 모교 연세대에서 소설창작론을 가르칠 때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도 수업을 들었다고 한다. 한국의 명문대 국문학과, 문예창작과보다 많은 신춘문예 출신 소설가를 등단시킨 스승으로도 유명하다. 갤러리범향에서 여는 ‘문학과 미술의 만남’ 전시가 부산문학, 부산미술의 꽃을 피우는 작은 마중물이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전시는 다음 달 16일까지 이어진다. 운영 시간 오전 10시~오후 6시. 토·일요일, 공휴일 휴관. 무료 관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