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읽기] 야간 택시에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

■밤의 사람들/이송우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2025-04-24 17:17:26

20여 년 마케팅 분석가로 일하던 저자는 2023년 삼성 반도체 사태로 일감이 확 줄어들었다. 15년 전 우연히 택시 운전사 자격증을 땄고, 그 자격증을 써야 할 순간이 온 것이다. 지난해 택시 운전을 시작했고 야간에 만난 승객들은 저마다 사연을 가지고 있었다. 이 책은 당시 택시를 운행하며 만난 사람의 이야기와 그들과 대화를 통해 달라진 자신에 대한 고백이다.

서울구치소에 있는 남자 친구 면회 시간에 늦을까 싶어 속도를 재촉하던 여성을 통해 ‘인혁당재건위 사건’ 수형수인 아버지를 면회가기 위해 새벽부터 서둘렀던 어머니를 떠올린다. 이제는 야근하지 않는다는 광고회사 국장에게선 과거 대기업에서 겨우 몇 시간 잠을 자며 일에 몰두했던 자신의 옛 모습이 겹친다.

대기업 임원으로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던 대리기사도 있다. 이태원 참사로 자식을 잃고 밤에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어 대리기사가 된 그는 자식 같은 손님들을 태우고 밤과 새벽을 질주했다. 손님을 통해 자식을 느꼈고, 동시에 자식의 죽음을 추모하며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 외에도 아이들이 걱정할까 봐 몰래 병원을 가는 중년의 여인, 콜을 부르지 못해 손을 들어 택시를 잡는 노인들, 미대 입시를 준비하며 늦은 밤 학원을 나서는 학생, 승진 회식을 마치고 만취한 채 집으로 가는 가장 등 각기 다른 사연을 가졌지만, 그들은 모두 열심히 버티며 삶을 살고 있었다.

저자는 인혁당재건위 사건 피해 생존자의 아들로 어릴 때부터 견디는 삶에 익숙했다. 빨갱이 자식이라는 낙인 때문에 가까운 친구조차 만들지 못했고, 처음 직장 생활을 시작할 때 누군가와 함께 일하는 것이 힘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협업의 구조를 통해 마음을 열었고, 야간 택시를 운행하며 좀 더 성숙해진 자신을 새롭게 마주할 수 있었다. 이송우 지음/빨간소금/216쪽/1만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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