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경륜 기자 takk@busan.com | 2025-05-05 15:58:01
국민의힘이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을 제21대 대통령선거 후보로 확정하며 본선 체제를 꾸렸지만, 이번 대선의 핵심 변수로 떠오른 한덕수 예비후보와의 단일화 협상은 시작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단일화의 명분과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시점과 방식, 주도권을 둘러싼 양측의 미묘한 신경전이 수면 위로 떠오른 모습이다.
국민의힘은 3일 경기 고양 킨텍스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김 후보를 최종 대선 후보로 선출했다. 당원 투표와 여론조사를 각각 50% 반영한 결과, 김 후보는 56.53%를 얻어 한동훈 전 대표(43.47%)를 제쳤다. 김 후보는 선출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뭉쳐야 이긴다”며 한덕수 후보와의 단일화 추진 의사를 재차 강조했다.
하지만 단일화 실무 논의에선 미묘한 온도차가 감지됐다. 김 후보와 한 예비후보는 5일 서울 종로 조계사 ‘부처님오신날’ 행사에서 대면했다. 한 후보는 “오늘 중 편한 장소에서 만나자고 세 차례 제안했고, 김 후보도 ‘네’라고 답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후보는 행사 직후 “오늘은 그냥 말씀만 들었다”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고, 캠프 측도 “단순한 덕담 수준의 인사”라고 선을 그었다.
정치권에서는 이를 두고 단일화 신경전이 본격화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민의힘은 지난 4일 선거대책위원회 산하에 ‘단일화 추진기구’를 신설했다. 김 후보가 비공개 회의에서 “의지는 분명하지만 절차 없이 서두를 순 없다”며 직접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 거론되던 ‘7일 단일화 시나리오’는 사실상 무산된 분위기다. 기구 구성과 인선, 여론조사 룰 협상까지 감안하면 현실적으로 시간이 부족하다는 평가다.
정당 추천 후보 교체가 가능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후보 등록 마감일은 오는 11일 오후 6시다. 후보 기호 배정과 공보물 제작 일정 등을 고려하면, 단일화가 늦어질수록 선거 전략에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그럼에도 김 후보는 단일화 논의보다는 현장 행보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선대위 회의를 마친 직후 경기 포천의 한센인마을을 찾아 현장 행보를 시작했고, 기자들과 만나 “가급적 넓은 폭으로 모든 분이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까지 포괄하는 통합 구상을 언급했다.
이에 따라 단일화 일정이 더 늦춰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김 후보 캠프 김재원 비서실장은 단일화와 관련해 “(단일화의) 시기나 방식 등 과정에는 김 후보가 주도해야 하는 것”이라며 “김 후보가 자기희생적 결단에 의해 단일화 작업에 나서는 것이기 때문에 김 후보가 단일화를 주도하는 것이 맞는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김 후보의 태도 변화에 최근 대법원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점이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경선 승리를 발판 삼아 완주 가능성을 열어두려는 전략이라는 해석이다.
반면 한 후보 측은 초조한 기색이 역력하다. 무소속 후보로 등록하면 기호 2번을 얻을 수 없고, 선거비용도 전액 자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 후보 측은 “하루라도 빨리 실질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며 빠른 단일화를 강조하고 있다.
김 후보의 반응에 당내 긴장감도 높아지고 있다. 지도부와 중진 의원들은 단일화의 시급성을 여러 차례 강조해왔다. 김 후보 측은 공식적으로 단일화 의지에 변화는 없다는 입장이지만, 일정과 방식 조율에서 주도권을 놓지 않겠다는 기류가 뚜렷하다. 단일화 협상이 본선 경쟁력뿐 아니라 보수진영의 향후 구도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조율 실패 시 파장은 작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