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 2025-07-11 09:00:00
지난 2011년 인터뷰했던(본보 2011년 6월 3일 자) 김재환 감독을 14년 만에 재회했다. 처음 만났을 때는 김 감독이 지상파 방송 3사 맛집 프로그램의 실상을 고발한 다큐멘터리 영화 ‘트루맛쇼’로 큰 관심을 받고 있을 무렵이었다. 이번에는 대패삼겹살 논란 때문에 만났다.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는 1993년에 대패삼겹살을 개발했다고 주장해 왔다. 백 대표는 그 뒤 유사 브랜드들이 생겨나자, 상표권을 보호하기 위해 1998년에 상표 등록을 마쳤다고 말했다. 그런데 김 감독이 이미 1992년 고향인 부산에서 대패삼겹살을 먹었다는 영상을 자신의 유튜브 채널 ‘스튜디오 오재나’에 올려 버린 것이다. 이 영상으로 일찍부터 대패삼겹살을 먹어왔던 부산 시민들의 원성이 둑 터진 물처럼 백 대표를 향해 쏟아지고 있었다. 지난달 29일 서울 마포구 사무실에서 김 감독을 만나 뜨거워진 대패삼겹살 이야기부터 꺼냈다.
-‘백종원과 대패삼겹살의 추억’ 영상에 부산 사람들의 댓글이 쏟아지더라.
“이 영상에 댓글이 7200개가 달렸는데, 부산 사람이라고 밝힌 분들의 댓글이 가장 많았다. 대부분 1993년 이전에 초량, 부산대, 경성대 앞에서 대패삼겹살을 먹었다는 증언이다. 1993년 백종원이 대패삼겹살을 처음 개발했다는 주장에 대해서 그동안 참았던 부산 시민들의 분노가 터져 나온 것이다. 나도 군대 가기 전인 1992년 고향인 부산에서 대패삼겹살을 먹은 기억이 있다. 지금과 똑같은 형태였고, 메뉴 이름도 대패삼겹살이었다. 1990년대 초반에 부산에서 널리 유행하던 대패삼겹살을 자기가 개발했다고 주장하니 부산 사람들이 화가 날 수밖에 없다.”
-‘트루맛쇼’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영화 개봉을 앞두고 MBC는 상영 금지 가처분 신청까지 냈던 걸로 기억한다. MBC PD 출신이 MBC를 비판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그 뒷이야기가 궁금하다.
“당시 회사 매출의 90% 이상이 지상파 3사에서 나왔다. 개봉 후 방송 일은 다 사라졌고 오랫동안 소송에 시달렸다. MBC에는 여전히 저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친정에 칼을 꽂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았다. 자연스럽게 인간관계의 다이어트가 되었다. 예상했던 괴로움이라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너무 재밌는 이야기라 즐겁게 만들었고, 괴로웠지만 재밌었다.”
-얼마 전 옛 동료 PD가 김 감독에 대한 일화를 페이스북에 올려 화제가 되었다. 김 감독이 자기 휴가와 돈을 써서 몇 주에 걸쳐 참치잡이 어선을 탄 뒤, 그걸 다시 자기 시간을 써서 편집하고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방영했다는 내용이다. 보통 사람으로서는 쉽게 이해하기 힘든 행동인데….
“친구 아버지 중에 원양어선을 타는 분이 많았다. 그 집에 가면 배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 벽에 하나씩 걸려 있었는데 멋져 보였다. 내게도 큰 배를 타고 바다만 보이는 대양을 가로지르겠다는 로망이 있었다. MBC 입사 후 한 원양 선사에 찾아가 원양어선에 태워 달라고 몇 년을 졸랐다. 어느 날 그 회사로부터 마셜군도에 가면 헬기로 배까지 데려다주겠다는 연락이 왔다. 휴가 내서 일하러 갔지만 행복했다. 추석 특집으로 90분에 걸쳐 방송했고 시청률도 좋았다. 과정과 결과가 즐거웠고, 처음으로 PD가 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지난해 7월부터 백종원 씨 관련 콘텐츠가 ‘스튜디오 오재나’에 많이 올라오는 것 같다. 귀국길의 백 씨가 공항에 갑자기 나타난 김 감독에게 “나한테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왜 그러시냐”라고 말하던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우연히 MBC ‘질문들’에 연돈볼카츠 사태로 출연한 백종원을 보게 됐다. 백 씨는 “나머지 매장 점주들은 신났다. 매출이 더 올랐다. 화제가 되니까 와서 먹어보고 단골이 더 생겼다”라는 말을 했다. 80개가 넘었던 연돈볼카츠 매장 중에서 단기간에 수십 개가 폐업하고 31개만 남았다. 수십 가정에 경제적으로 줄초상이 난 것이다. 그때 트루맛쇼를 찍으며 만났던 수많은 프랜차이즈 피해자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백종원은 그날 방송에서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세상에 널리 알리라고 저에게 버튼을 누른 것이다. 그 과정에서 세상이 조금 더 좋아지면 좋겠다.”
-프랜차이즈 중에는 더본코리아보다 못하고, 더 심한 곳도 있지 않는가.
“프랜차이즈 가운데 시가 총액 1위인 기업이 이 수준이면 다른 데는 어떨지 생각해야 한다. 한국의 프랜차이즈 본사와 점주의 관계는 중세 시대 영주와 농노 같은 곳이 상당수다. 그런데도 누구나 다 할 수 있도록 방치를 해왔다. 우리 인구의 6배가 넘는 미국의 프랜차이즈 브랜드는 3000여개인데, 우리 프랜차이즈 브랜드 숫자는 미국보다 4배나 많다. 전세 사기는 많은 사람이 피해를 보니 표시가 나는데, 프랜차이즈는 한 명씩 망하니 뉴스에도 안 나온다. 사회적·경제적 살인이 계속되고 있다.”
-한류와 K-푸드 열풍이 거센데도 세계적인 수준의 한국 프랜차이즈 브랜드가 생기지 않는 것도 관계가 있다고 보나.
“한국 프랜차이즈 산업은 중국 축구와 같다. 중국 축구 선수들은 국내 리그에서 돈을 엄청나게 버니까 유럽 리그에 진출해 세계적인 선수가 되겠다는 꿈을 꾸지 않는다. 중국에서 땅 짚고 헤엄치기 식 축구를 하고 있다. 국내에서 프랜차이즈로 손쉽게 돈 벌 수 있으니, 세계에 나가 힘들게 경쟁할 필요가 없다. 국내 프랜차이즈 시장은 방송에 나와서 가맹점만 모으면 가장 빨리 부를 축적할 수 있는 황금어장이다. 그러니까 세계 경쟁력이 안 생긴다.”
-김 감독은 가맹사업법을 잘 개정하면 프랜차이즈로 인한 사회적·경제적 참사를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어떤 방향으로 개정이 되어야 하나.
“지금은 가맹본부와 점주 사이에 힘의 균형이 너무 차이가 난다. 첫째는 가맹점주의 권리나 협상권을 보장하고, 본사에는 의무를 부과해 기울어진 운동장을 어느 정도 수평에 가깝게 만들어야 한다. 둘째는 본사가 되기 위한 진입장벽을 높여야 한다. 어중이떠중이가 본사를 하면 피해가 크게 확산된다. 미국 프랜차이즈 시장도 1960년대 혼탁하던 시절이 지나고 나서 규제가 생기며 정비됐다. 지금은 마케팅으로 브랜드를 띄워서 신규 계약자만 많이 모으면 본사는 빠르게 성장한다. 프랜차이즈 본사를 함부로 시작했다가는 자칫 패가망신하겠다고 생각하게 만들어야 한다. 프랜차이즈로 사기 치기 좋은 나라가 되어서는 안 된다.”
-‘트루맛쇼’ 때나 유튜브를 운영하는 지금이나 음식이란 소재를 통해 미디어를 비판하는 것으로 읽힌다.
“미디어의 속성은 증폭으로 방송은 공범이다. 양심적으로 하던 많은 식당들을 몰아내는 역할을 미디어가 하고 있다. ‘김재환이 트루맛쇼 시즌 2를 하고 있다’라고 이야기하는 분들이 있는데, 정확하게 보고 계신 것이다. 대한민국 프랜차이즈를 대표하는 기업이 어떤 방식으로 영업하고 성장했는지를 보면, 다른 회사들이 앞으로 어떻게 할지를 알 수 있다. 백종원만큼 미디어의 속성을 잘 보여주는 사람이 없다.”
-현재 가맹사업법 개정은 잘 진행되고 있는가.
“대형 가맹본부가 신규 브랜드를 내기 위해서는 최소 직영점을 3곳 이상 운영하고 시장 검증을 마쳐야 한다는 이른바 ‘백종원 방지법’이 국회에 발의된 상태다. 하지만 나는 그것도 약하다고 생각한다. 가맹점이 100개 있으면 5개는 직영을 해야 하는 ‘5%룰’이 적용되어야 한다. 그래야 진짜 실력 있는 젊은이들이 도전할 공간이 생긴다. 지금은 시장이 혼탁해서 양심적으로 해도 구분도 쉽지 않고 주목 받기도 힘들다.”
프랜차이즈 생태계를 이대로 방치하면 어떻게 될까. 브랜드 숫자는 늘어나고, 퇴직금을 털어 넣은 더 많은 가정이 망가질 수밖에 없다. 프랜차이즈 협회는 힘이 세기에 가맹사업법이 어떤 식으로 개정되는지도 끝까지 지켜볼 일이다. 설사 하더라도, 프랜차이즈의 속성을 알고 시작해야 한다. 김 감독은 “가짜가 판치는 트루맛쇼 세상에서 속지 마시고 잘 헤쳐나가시길 빈다”라고 당부했다. 글·사진=박종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