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돈 기자 happyi@busan.com | 2025-10-29 09:00:00
나다소극장 무대에 오르는 극단 판플의 개막작 '아버지와 살면' 연습 장면. 부산소극장연극협의회 제공
유명 배우의 연극을 보러 갔는데, 눈빛은 고사하고 배우가 웃는지 우는지조차 알아보기 힘들었던 기억은 없는가? 주머니 사정으로 싼 좌석을 구매했다면 ‘그럴 수도 있지’하며 넘어갈 수 있다. 그런데 최고 등급 자리에서도 눈에 잔뜩 힘을 주고 봐야 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감동 대신 스트레스만 받는 공연을 다시 찾을 관객은 아마 없을 것이다.
중대형극장에서 느낀 배신감을 달랠 소극장 연극 축제가 열린다. 부산소극장연극협의회가 주최하고 부산시가 후원하는 ‘제13회 부산소극장연극페스티벌’이 오는 31일 개막해 내달 15일까지 이어진다. 배우와 눈빛을 주고받으며 소통하고 공감하는 무대가 될 축제에서는 협의회 소속 8개 소극장에서 8편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공연 날짜순으로 소개한다.
나다소극장 무대에 오르는 극단 판플의 개막작 '아버지와 살면' 연습 장면. 극단 판플 제공
① 10월 31일~11월 2일 대연동 나다소극장에서 극단 판플의 개막작 ‘아버지와 살면’이 선보인다. 원폭 투하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3년, 일본 히로시마도서관 직원 미쓰에는 전쟁에서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어느 날 도서관을 찾은 기노시타와 마주하며 설렘을 느끼지만, 스스로 행복을 누릴 자격이 없다며 마음을 닫는다. 그때, 딸의 굳게 닫힌 마음을 열어주기 위해 아버지 다케조가 나선다.
일본의 반전 극작가 이노우에 히사시의 작품을 판플 양재영 대표가 연출했다. 양재영 대표는 “전후 8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전쟁이 일상화된 세상에 살고 있다”며 “청춘의 연애사마저 집어삼키는 전쟁의 아픔을 표현하려 했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이 작품에서는 부산 연극계 최고령-최연소 배우를 동시에 만날 수 있다. 아버지 다케조 역의 박찬영 배우는 2011년 부산시립극단에서 정년 퇴임한 70대 원로배우. 반면 딸 미쓰에를 연기하는 유시화 배우는 1999년에 태어난 신예로 지난해 부산연극제 U섹션 연기상을 받은 유망주이다. 양재영 대표는 “50살에 가까운 나이 차이를 뛰어넘는 두 배우의 연기 호흡을 보는 재미도 클 것”이라고 말했다.
소극장 6번출구에서 선보이는 극단 맥의 '새들의 회의' 공연 장면. 부산소극장연극협의회 제공
② 11월 2~4일 남천동 소극장 6번출구에서는 극단 맥이 올리는 ‘새들의 회의’를 만날 수 있다. 새들이 새 지도자 ‘시모르’를 찾기로 하고 여정에 나선다. 탐욕과 사랑, 지식, 자유, 통일, 경이로움, 죽음을 의미하는 일곱 개의 계곡을 통과하며 포기하거나 죽음을 맞기도 한다. 살아남은 새들이 마주한 건 거울 속의 자신들 모습. 이들의 여정은 결국 자기 발견의 과정이었던 셈이다.
레모트리소극장에서 만날 수 있는 극단 데일리드라마의 '티끌 모아 티끌' 연습 장면. 부산소극장연극협의회 제공
③ 11월 3~5일 남천동 레몬트리소극장에서는 극단 데일리드라마의 창작극 ‘티끌 모아 티끌’이 초연된다. 세상의 모든 인간군상과 정보가 모이고 흩어지는 구두 가게를 무대로 현대 사회를 날카롭게 풍자하는 블랙코미디극이다. 이영섭 연출가는 “특정 시대나 정치 체제를 떠나 국민이 제대로 정신을 차리고 권력자를 감시하지 않을 때 벌어질 수 있는 비상식적인 상황을 가상의 드라마로 만들었다”고 소개했다.
하늘바람소극장 무대에 오르는 극단 아센의 '웨딩드레스' 공연 장면. 부산소극장연극협의회 제공
④ 11월 6~8일 대연동 하늘바람소극장은 극단 아센의 ‘웨딩드레스’를 준비하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름인 엄마와 그 엄마의 가슴속에 언제나 아련한 이름인 딸. 모녀의 일상 속 다툼과 각기 다른 사랑 방식을 통해 가족의 의미, 진정한 이해와 사랑의 가치를 되돌아보게 한다.
공간소극장 무대에 서는 공연예술집단 어니언킹의 ‘ㅋㄷㅋㄷ’ 연기 장면. 부산소극장연극협의회 제공
⑤ 11월 7~9일 대연역 공간소극장은 공연예술집단 어니언킹의 ‘ㅋㄷㅋㄷ’을 올린다. 오랜 세월 잊고 지내던 남녀가 노인이 되어 다시 만나는 과정을 그린다. 좁다란 골목길을 걷고 또 걸으며 지나온 시간을 회상하는 두 노인의 이야기를 통해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윤병조의 작품을 전상배가 연출했다.
용천지랄소극장에서 만날 수 있는 극단 벅수골의 '봄이 오면' 공연 모습. 부산소극장연극협의회 제공
⑥ 11월 11~12일 대연동 용천지랄소극장에서는 지역교류 공연으로 통영시 극단 벅수골의 ‘봄이 오면’ 초청 무대가 마련된다. 치매를 앓는 노부부의 애틋한 사연을 통해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는 자연의 섭리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작품이다. 김선율 희곡을 벅수골 장창석 대표가 연출했다.
열린아트홀 무대에 오르는 극단 줏대잡이의 '먼지 위의 글자' 연습 장면. 부산소극장연극협의회 제공
⑦ 11월 12~14일 온천동 열린아트홀은 극단 줏대잡이의 ‘먼지 위의 글자’를 선보인다. 2025 여름창작낭독무대 우수 작품으로 선정된 박소민 작가의 작품이다. 고독사라는 독창적이고 논쟁적인 소재로 눈길을 끈다. 죽은 사람과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특수청소부 성남이 신문 인터뷰를 계기로 책을 내자는 제안을 받으며 고민에 빠진다.
액터스소극장에서 선보이는 부두연극단의 폐막작 '어항속 물고기' 연습 장면. 부산소극장연극협의회 제공
⑧ 11월 13~15일 남천동 액터스소극장에서 만날 폐막작은 부두연극단의 ‘어항속 물고기’이다. 프랑스 극작가 레오노르 콩피노의 작품(원작 벨기에 물고기, 번역 임혜경)을 이성규 대표가 연출했다. 소년 같은 소녀와 여성 같은 중년 남성이 호숫가에서 우연히 만나 한 공간에서 지내며 서서히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는다. 남과 다르다는 이유로 본성을 숨긴 채 고통 속에서 사는 이들의 이야기이다.
모든 공연은 평일 오후 7시 30분, 주말 오후 5시 시작한다. 관람료는 3만 원이며 사전 예매 시 50% 할인이 적용된다. 자세한 정보는 협회 홈페이지(blta.c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문의 051-723-2013.
제13회 부산소극장연극페스티벌 공식 포스터. 부산소극장연극협의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