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들은 민중의 스포츠를 어떻게 오염시켰나

■스포츠워싱, 축구를 집어삼킨 자본과 국가들/미겔 딜레이니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2026-09-17 13:45:55

스포츠워싱, 축구를 집어삼킨 자본과 국가들/미겔 딜레이니 스포츠워싱, 축구를 집어삼킨 자본과 국가들/미겔 딜레이니

2026 북중미 월드컵 앞선 경기에서 레드카드를 받은 미국 선수 폴라린 발로건은 다음 경기인 벨기에와의 16강전에도 출전했다. 원칙대로라면 한 경기 출전 정지 처분이 내려져야 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FIFA 잔니 인판티노 회장에게 전화한 결과였다. 인판티노는 급조한 FIFA 평화상을 트럼프에게 수여했고, 트럼프는 인판티노가 유엔 사무총장이 되기를 원한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FIFA는 월드컵 등 주요 대회를 관리할 자회사를 설립해 트럼프 사돈 집안에 매각하려다 반발에 부딪히자, 일단 철회한 상태다. FIFA, 나아가 축구는 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가.

축구의 가장 큰 매력은 예측 불가능성에 있다. 하지만 유럽 국내 리그 절반이 지난 10년 동안 역사상 유례없는 독주의 시대를 경험하고 있다. 상당수 리그는 사실상 한 팀을 위한 리그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 같은 독주 체제는 러시아 석유 재벌 로만 아브라모비치의 첼시 인수부터 시작해 UAE의 맨체스터 시티, 카타르의 PSG, 사우디아라비아의 뉴캐슬 인수와 깊은 연관성이 있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은 월드컵 역사상 가장 논란이 많았다. 카타르 월드컵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폭염 속 장시간 노동과 안전 미비로 수천 명의 이주 노동자가 사망했다. 대회 기간에는 이슬람 율법으로 인해 성 소수자 팬들의 안전 우려가 제기됐다. 갑작스러운 주류 판매 전면 금지로 축구 팬들은 맥주조차 마시지 못했다. 무더위로 제대로 뛰기 힘든 중동에서 월드컵을 연 지 얼마나 되었다고, 2034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또 월드컵인가.

<스포츠워싱…>은 축구 전문기자인 저자가 축구의 인기를 이용한 ‘스포츠워싱’ 사례들을 짚었다. 세계 최고의 부자와 국가가 뒤를 받치는 기업, 석유 부국의 특권 계층이 축구를 어떻게 장악하고 오염시켰는지 꼼꼼하게 기록했다. 스포츠워싱은 기업들이 환경 문제를 내세워 비판을 희석시키는 ‘그린워싱’에서 파생됐다. UAE의 맨체스터 시티에 대한 투자가 실추된 국가 이미지를 스포츠워싱하려는 첫 번째 시도였다. 걸프 지역에서 이 같은 스포츠워싱 전략이 잇따른 이유는 막대한 부와 절대적인 권력이 결합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축구계는 신자유주의에 물들고 말았다. 레알 마드리드의 플로렌티노 페레스 회장은 축구단을 영화 스튜디오와 같은 반열로 간주했다. 모든 사람이 보고 싶어 하는 스타 선수들이 모든 것을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천문학적인 이적료는 브랜딩의 일부였고, 반드시 봐야 할 무언가라는 느낌을 만들어 냈다. 초특급 슈퍼스타들을 대거 영입해 별이 빛나는 은하수를 이루겠다는 ‘갈락티코스’ 정책이 여태 이어지고 있다.

두꺼운 책 속에 든 축구공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자본과 권력의 한복판에 서 있게 된다. 민중의 스포츠 축구가 어쩌다 의심스러운 세력에 의해, 의심스러운 목적에 이용당하게 되었을까. 축구는 본래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았다. 축구의 본질은 공동체를 대표하기 위해 행해지는 단순한 경기 그 자체에 있다. 한 분야에 천착한 기자를 언론사가 성심껏 지원해 값진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 미겔 딜레이니 지음/박태인,정효웅 옮김/한준희 감수/한즈미디어/688쪽/3만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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