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현수 기자 songh@busan.com | 2026-10-01 10:07:17
한국형 원전인 APR1400 노형으로 지어진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4호기 전경. 한국전력 제공
한국 기업이 웨스팅하우스의 파트너로서 원전 종주국인 미국 현지에 한국형 대형 원전 건설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1978년 웨스팅하우스의 기술로 한국의 첫 번째 원전인 고리 1호기(부산 기장군 소재)가 지어진 지 약 50년 만이다. 한국형 원전 수출의 걸림돌로 작용해온 미국 원전기업 웨스팅하우스와의 기존 타협협정(SA)을 개정하기로 합의한데 따른 것이다.
1일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한미 양국은 대미투자펀드 2000억 달러 가운데 최대 1200억 달러를 투입해 미국에 대형 원전 8기를 건설하는 내용의 '한미 원전 프레임워크'에 합의했으며, 양국 정부와 웨스팅하우스, 한국전력(한전),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프레임워크에 서명할 예정이다.
건설 대상은 한국형 원전인 APR1400 2기와 웨스팅하우스의 AP1000 6기 등 대형 원전 총 8기다. 1단계 AP1000 2기 착공을 시작으로 2단계 APR1400 2기와 AP1000 2기 건설, 3단계 AP1000 2기 추가 건설 순으로 추진된다.
한국은 지난해 1월 웨스팅하우스와 한전·한수원이 체결한 SA로 인해 원전 1기 수출마다 1조 원이 넘는 규모의 기술사용료 부담을 떠안았다. APR1400의 미국 내 건설도 불가능했다. 웨스팅하우스는 자사 노형과의 경쟁을 우려해 SA 개정에 반대했으나, 원전 확대에 한국의 시공 역량이 필수적이라고 판단한 미국 정부가 개정을 요구하며 돌파구가 열렸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프레임워크에 APR1400 2기를 미국에 짓기 위해 SA를 개정한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며 "서명해 놓고 개정하지 않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지난 9월 22일 국회 산업통상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서 '대한민국과 미합중국 간 전략적투자의 운영 및 관리를 위한 특별법'에 따른 대미투자 사전보고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APR1400 2기의 미국 진출을 계기로 제3국 시장 수주전에서 한국형 노형의 수주 가능성도 높아질 전망이다.웨스팅하우스의 AP1000 6기 건설에도 한국의 시공사와 기자재 업체가 참여하게 된다.
정부는 웨스팅하우스와의 불평등한 계약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지분 인수도 함께 추진한다.
김 장관은 "지분율은 5∼10% 수준으로 조율 중"이라며 "한전과 한수원은 재무 부담을 고려해 상징적 수준으로 참여하고 국내 사기업들이 함께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분율을 10% 미만으로 조율하는 것은 웨스팅하우스 측이 한국의 이사회 진입을 부담스러워하기 때문"이라며 "국내 기업들은 미국뿐 아니라 서유럽 등 웨스팅하우스가 쥐고 있는 제3국 시장 진출까지 염두에 두고 전략적 투자 관점에서 적극적"이라고 말했다.
웨스팅하우스 지분은 캐나다 사모펀드 운용사 브룩필드가 51%, 캐나다 우라늄 광산업체 카메코가 49%를 보유하고 있다. 한국이 이사회에 직접 참여하지 않더라도 현 지배구조 특성상 10% 미만의 의결권 지분만으로도 주요 경영 의사결정에서 상당한 발언권을 확보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정부는 대형 원전의 사업 리스크를 막기 위해 전체 사업비 1200억 달러 중 200억 달러를 별도의 예비비로 책정했다. 공사비 초과 시에는 귀책 사유를 따져서 분담한다는 방침이다. 김 장관은 "우리 기업들이 공사를 잘 마무리해 200억 달러를 온전히 세이브해 회수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다만, 최종 추진 여부는 신중히 결정할 방침이다. 김 장관은 "총론에는 찬성했지만 지반과 냉각수 접근성, 수요처와 전력망 연결 등 구체적인 프로젝트 조건에 따라서 사업비와 상업적 합리성이 갈린다"며 "미측이 제시할 세부 프로젝트를 두고 올해 4분기(10~12월)에 면밀한 검증 작업을 거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