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과 이별, 애도 후 비밀 찾기

■가족관계 특이사항 있음/마민지
코로나19로 갑자기 돌아가신 모친
유품 정리는 고인 애도하는 시간
엄마 메모에서 가족 비밀 알게 돼
변화무쌍하고 흥미진진한 논픽션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 2026-10-01 15:3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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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가진 가장 오래된 가족 사진. 이 사진은 출생 비밀을 추적하는데 단서가 된다. 출판사클 제공 저자가 가진 가장 오래된 가족 사진. 이 사진은 출생 비밀을 추적하는데 단서가 된다. 출판사클 제공

저자 생일에 부모님은 항상 케이크를 사서 딸을 찾았다. 출판사클 제공 저자 생일에 부모님은 항상 케이크를 사서 딸을 찾았다. 출판사클 제공


부모님을 모신 납골당을 딸은 의미있는 물건들로 꾸몄다. 출판사클 제공 부모님을 모신 납골당을 딸은 의미있는 물건들로 꾸몄다. 출판사클 제공



한국 사회에서 가족은 저마다 삶의 배경과 경험에 따라 다른 의미가 되기도 한다. 가족이라는 단어 앞에 ‘지긋지긋한’ ‘안전한’ ‘폭력적인’ ‘따뜻한’ 같은 복합적이고 모순적인 수식이 동시에 붙기도 한다. 하지만 가족에 대해 솔직하게 드러내고 말하는 것은 유교 정신에 배반되기에 불온해진다. 저자는 자신이 불온해지는 만큼 가족의 다양한 모양에 대해 함께 상상할 수 있다면 기꺼이 자신의 이야기를 투명하게 털어놓겠다고 선언한다.

저자의 가족 이야기를 담담히 적은 에세이지만, 빠르게 전개되는 소설처럼 느껴질 정도로 긴장감, 몰입감이 대단하다. 작가의 말에서 저자는 자신의 가족 이야기는 지독히도 특이사항이 많아서 때론 막장 드라마처럼 신파적이고 황당하며 사랑이 많아서 애틋하고 귀엽다고 밝힌다.

사실 저자는 영화감독이자 작가이다. 책을 출간한 적도 있고, 장편 데뷔작으로 한국 영화 최초로 EBS 다큐멘터리 영화제 대상을 받았다. 이 영화제는 세계적인 인지도를 자랑할 정도로 유명하며, 작품 수준이 엄청나게 높다. 데뷔작으로 국제영화제 대상을 받더니 두 번째 작품은 2025년 부산국제영화제에 초대받았다. 그만큼 뛰어난 이야기꾼이라는 걸 입증한다. 뛰어난 이야기꾼이라는 자신의 재능은 이 책에서 확실히 느낄 수 있다. 이토록 슬픈데,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는 게 신기했다. 책을 읽는 동안 몇 번을 울었고 책을 놓을 수 없었다. 마음을 졸이며 마지막 장까지 읽어치운 뒤, 이 많은 사건과 시련을 혼자 버틴 저자에게 “고생했다”며 등을 토닥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은 저자가 어머니의 전화를 받으며 시작된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코로나19에 감염돼 집에서 격리 중인데 아버지가 집을 나가려고 하니 딸에게 아버지를 말려달라는 요청이었다. 평소 점심에 뭘 먹었는지, 집 앞 산책을 하는 사진을 보내는 등 시시콜콜한 일상의 안부를 보내던 어머니가 정작 이렇게 중대한 사실은 딸에게 알리지도 않은 것이다.

부모님은 일주일 전 확진 통보를 받았지만, 딸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아버지와 통화해 외출은 막았지만, 어머니의 호흡이 헐떡이고 있다는 걸 눈치챈다. 병원에 도착하자 어머니는 격리 병동을 거쳐 중환자실로 향한다. 폐가 이미 심하게 망가졌고, 산소호흡기에 의지해 생을 이어가게 되었다. 모든 걸 내려놓고 5달간 어머니를 간병했지만, 의사는 결국 어머니와 이별 준비를 하라고 통보한다.

정신없이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저자는 일주일에 한 번씩 부모님 집을 방문해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한다. 아버지는 죽은 사람의 물건을 빨리 치워야 한다고 채근하지만, 일부러 천천히 살펴본다. 유품을 정리하는 건 저자에게 갑자기 떠난 엄마와 제대로 이별하는 과정이자 애도의 시간이었다. 일기장 같은 어머니의 가계부를 비롯해 딸과 함께 떠난 여행 기록, 요리 레시피 노트, 사진을 보는 저자에게 독자는 자연스럽게 감정이 이입된다. 딸이라면 더 깊이 공감할 애틋한 감정이 올라와 눈물이 나기도 한다.

유품을 정리하다가 저자는 자신의 존재와 가족이 통째로 흔들리는 단서를 발견하고 진실을 찾기로 한다. 사실을 말해 줄 어머니는 죽었고, 아버지는 대화를 거부한다. 정보 공개 청구를 했지만, 돌아가신 어머니의 개인 정보라서 본인의 동의가 필요하다며 정보를 받을 수 없었다. 탐정이 된 것처럼, 작은 단서라도 나오면 지방까지 내려가 확인하며 진실을 찾아다닌다.

가족은 태어날 때 정해지고 한번 만들어지면 변하지 않는다는 통념은 이 책을 읽으며 무너진다. 저자의 사연을 보며 우리가 당연하게 믿어온 가족에 대한 기준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가족은 고정된 모양이 아니라 유동적인 관계로 바라볼 때 좀 더 폭넓게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가족은 나를 낳은 사람일까, 키운 사람일까, 아니면 끝까지 서로를 돌본 사람일까. ‘정상가족’이라는 테두리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보이는 가족의 맨얼굴이 있다. 이 책은 그 얼굴을 대면한 저자의 고백을 담고 있다.

코로나19 시절의 눈물겨운 간병기로 시작해 어느 순간 출생의 비밀을 좇는 스릴러로 변하고 돌봄과 부양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목소리로 연결된다. 마민지 지음/출판사클/280쪽/1만 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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