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준 기자 casiopea@busan.com | 2025-04-21 09:10:39
재건축·재개발 사업이 다 끝나고 입주도 마무리됐는데, 마지막 단계인 청산과정이 마무리되지 않아 운영비를 계속 지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 347개 미청산 조합에서 청산 과정 중 9000억원이 쓰였으며, 일부 조합은 10년 넘게 청산을 마무리하지 않고 운영비를 지출하고 있었다.
21일 국토교통부가 더불어민주당 김영호 의원실에 제출한 ‘17개 시도 미청산 조합 현황’에 따르면 현재 조합 해산 이후 청산 단계에 들어가 있는 아파트 단지는 전국에 347곳 있다.
이들 미청산 조합의 해산 당시 잔여자금은 1조 3880억원 규모였다. 올해 1월 기준으로 남아 있는 잔여자금 4867억원이다. 청산을 진행하며 9013억원을 쓴 것이다.
청산이란 재건축·재개발 조합을 해산한 이후 자산·부채를 정리하고 남은 돈을 배분하는 최종 정산과정이다.
조합은 아파트 소유권 이전이 끝나면 1년 내 해산 총회를 열고 청산인을 선임해 재산 관계를 정리해야 한다. 해산 때 남은 돈은 조합원들에게 1차 환급하고 소송 대응, 세금 납부와 채권 추심·변제 등을 위한 유보금을 남기고서 청산 체제로 들어가게 된다. 청산인은 통상 기존 조합장이 맡는다.
그런데 상가·아파트 소송이 끝나지 않았다거나, 세금 납부 및 환급 문제가 정리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청산인이 차일피일 청산을 미루며 조합원들과 갈등을 빚는 사례가 많다.
청산인 월급과 운영비로 많게는 매월 수억 원이 지출되면 그만큼 조합원들이 환급받을 돈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전국에서 미청산 조합이 가장 많은 곳은 서울이다. 156개(46%) 미청산 조합이 잔여자금 9593억원을 갖고 청산 절차에 돌입했으나 현재 남은 자금은 2831억원이다. 6752억원이 소진된 것이다.
부산도 46개 미청산조합이 623억원을 가지고 청산절차에 돌입했으나 현재는 171억원에 불과했다. 청산과정에서 451억원이 사용된 것이다.
서울 서대문구 A재개발조합은 2016년 10월 해산 이후 10년째 청산 작업을 진행 중이다. 청산인은 월 500만원, 사무장은 350만원을 꼬박꼬박 급여로 받는다. 이 조합은 하자 보수 등을 둘러싸고 5건의 소송을 벌이고 있으며, 해산 때 257억원이었던 잔여재산이 이제 13억원 남았다.
전국 327개 미청산 조합 중 60개는 잔여 자금 확인마저 어려운 상황이다. 부산은 19개 조합이 잔여자금 확인이 불가능했다.
정비사업을 전문으로 하는 한 변호사는 “일단 입주를 시작하면 조합원들의 관심이 확 줄어들기에 이를 악용하는 청산인들이 있다”며 “조합원들이 해산총회 때 청산법인에 권한을 얼마나 줄 것인지와 잔여재산을 얼마 남길 것인지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도시정비법 개정으로 지난해 6월부터는 재건축·재개발 청산 절차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감독할 수 있게 됐다. 특별한 이유 없이 청산을 미룬다면 정부·지자체가 청산인을 수사기관에 고발할 수 있다.
국회에서는 해산·청산 단계에서 조합원들의 정보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입법이 추진되고 있다.
민주당 김영호 의원은 정비사업이 끝난 이후에도 조합원이 관련 자료를 열람할 수 있도록 하고, 자료 보관 기간을 현행 5년에서 10년으로 연장하는 내용의 도시정비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김 의원은 “소송을 지연시키는 등 고의로 청산을 미루며 부당하게 쓰인 조합원들의 돈을 환수해 다시 돌려줄 수 있는 제도적 방안을 정부가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