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영 기자 key66@busan.com | 2025-04-21 11:38:35
부산현대미술관(부산MOCA)이 다양성과 실험성을 중요한 가치로 삼는 ‘다원예술’을 집중 조명하는 전시를 처음으로 시도한다. 국립현대미술관과 공동 기획·협력한 이번 전시는 지난 12일 개막해 오는 6월 15일까지 두 달간 계속될 ‘초록 전율’이다.
부산MOCA 이다솔 학예연구사는 “다원예술에 대한 본인만의 성찰과 실험적 태도를 갖고 있는 국내외 작가 5명을 초청했다”면서 “세계적인 연출가이자 예술가인 하이너 괴벨스의 신작을 비롯해 국내 다원예술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곽소진, 김익명, 이수진, 임고은의 신작 등 21점을 선보인다”고 밝혔다. 이 중 하이너 괴벨스, 곽소진, 임고은은 국립현대미술관과 공동 초청했고, 김익명, 이수진은 부산MOCA에서 단독 초청했다. 전시는 특히 △자연 △생태 △숲 △지층을 주요 키워드로 삼아, 전 지구적인 생태 위기 속에서 부산현대미술관이 위치한 을숙도를 기반으로 주변을 새로운 관점으로 살펴볼 것을 제안한다.
임고은 작가의 영상 설치 ‘그림자-숲’(50분)을 맨 먼저 만날 수 있다. 여러 점의 설치, 영상, 사운드가 서로 유기적으로 관계를 맺는 특별한 공간에서 관람객은 마치 영화 안에 들어가 있는, 상상력이 가득한 공간에 들어가 있는 느낌을 얻는다. 서울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영화감독이자 시각예술가로 활동하는 임고은은 과거와 현재, 진실과 허구를 넘나드는 상상력을 기반으로 다양한 종류의 영상 설치와 공연, 워크숍을 진행해 왔다. 이번 전시에는 인간이 아닌 야생의 관점에서 주변을 바라보는 ‘그림자-숲’과 ‘세 개의 고래-인간 동그라미’를 공개한다. ‘세 개의 고래…’는 하얀 모래 위에 투사되는 영상과 고래 소리가 자동 세팅돼 있으며, 안전과 몰입감 있는 감상을 위해 회차별(오전 10시부터 1시간 간격으로 입장)로 8명 인원 제한을 실시한다. 온라인 사전 예약(부산시 통합예약시스템) 및 현장 참여가 가능하다.
이어지는 전시는 곽소진 작가의 ‘무빙 그라운드’(8분 24초)이다. 지난해 ‘한국 시슬리 젊은 작가상’ 수상자인 곽소진은 영상, 퍼포먼스, 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활동한다. 작가는 산책 중에 우연히 만난 장면을 단초 삼아 주변 세계에 대한 리서치를 진행하고, 그 과정과 결과를 토대로 삶의 태도와 방식을 고민한다. 출품작 ‘무빙 그라운드’는 작가가 화산, 채석장, 석재상을 직접 찾아가 촬영한 풍경을 수직의 탑 형태로 구성한 3채널 영상 작업이다. 고정되고 단단하다고 여겨져 온 지표가 영상 속에서 확대와 축소를 거듭하며 액체처럼 유동적인 성질을 띠게 되고, 이를 통해 작가는 우리가 당연하게 인식해 온 땅의 이미지를 새롭게 바라볼 것을 제안한다.
다음은 이수진 작가의 ‘폴리포니 클럽: 바람에 피와 살을 입히기’(23분 36초) 작업이다. 을숙도와 부산현대미술관 일대를 배경으로 무용수들과 협업을 통해 촬영한 신작 영상이다.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이수진은 일상의 경계에 나타나는 빛, 기억, 소리와 같은 비가시적인 징후와 감각에 주목하며, 설치, 퍼포먼스, 내레이션, 영상 등을 제작해 왔다. 전시장에 비치된 긴 의자에 앉으면 머리 위 스피커에서 들리는 내레이션이 눈앞에 펼쳐지는 영상과 어우러지면서 묘한 공감각적인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작가는 또 이전에 제작한 조각 시리즈 여러 점도 함께 선보인다. 이 조각 작품은 모닥불이 타들어 가는 듯한 소리가 들리는 푸른색 커튼 사이를 걸으면서 보고, 듣기를 권한다.
하이너 괴벨스의 신작 ‘물고기는 땅 위에서 걷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20분)도 상영된다. 하이너는 2019년 콜롬비아에서 선보였던 장소 특정적 설치를 부산현대미술관 환경에 맞추어 재편집한 신작을 선보인다. 콜롬비아 마그달레나강의 흐름과 지형 변화에 대한 비판적, 철학적 내용을 담고 있는 영상이 전시장에 투사되면서 인간이 자연에 개입하며 발생하는 문제들을 재고하게 만든다. 작품 제목은 콜롬비아의 대문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말에서 비롯되었다.
마지막은 한국과 네덜란드를 오가며 활동하는 김익명 작가가 준비한 ‘깊은 곳’ 시리즈이다. 작가는 특정 장소의 사회적, 생태적 맥락을 고려하는 사운드 아티스트다. 최근에는 여러 명의 예술가, 큐레이터, 연구자로 구성된 콜렉티브 ‘갯벌 랩’ 멤버로 활동하면서, 한국의 갯벌과 습지를 연구한 워크숍을 진행했다. 이번 시리즈는 고래의 이동이나 소통을 탐지하는 하이드로폰을 사용해, 낙동강의 수심 깊은 곳에서 발생하는 초저주파를 탐지, 수집한 후 이를 우리가 감각할 수 있도록 시각, 청각, 촉각적으로 재구현했다. 김 작가는 “직접 만난 따개비나 물길 움직임을 점자로 변환하는 등 작가로서 깨달음을 시청각적으로 구현하면서 우리가 들어갈 수 없는 ‘깊은 곳’이라는 제목으로 상상했다”고 설명했다.
강승완 부산현대미술관 관장은 “현대미술관의 정체성은 첨단의 현대미술을 다루는 것으로, 공연을 해야만 완성되는 다원예술을 설치를 통해서 보여주는 독특함이 있다”면서도 “본 전시 외에 퍼포먼스 14회, 워크숍 1회 등 총 15회로 진행되는 연계 프로그램도 주목해 달라”고 당부했다.
한편 부산현대미술관 도슨트 양미희 씨는 “지금까지 보던 전시와는 많이 다를 것이다. 미디어 설치처럼 전자기기를 떠올리면 속도전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다 감상하기에는 속도를 내려놔야 하고, 자연한테 몸을 맡겨야만 하기 때문에 3시간 정도는 잡아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화~토요일 KTX부산역~미술관~KTX부산역 셔틀버스를 하루 한두 차례 운행한다. 무료 관람. 문의 051-220-7347.